[김병수의마음치유] 최고의 자기계발서는 소설이다

- 2021. 8. 26. 23:12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선생님, 제 상황에 도움이 될 만한 자기계발서나 심리 책을 추천해주세요." 상담 말미에 종종 이런 질문을 받는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누구나 인정하겠지만 고전을 읽다 보면 '그래, 인간의 마음은 이렇게 움직이는 것이로구나'하고 저절로 터득하게 된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우울과 불안 껴안고 살아가는 것이 인생
타인이 거쳐간 길, 내 것이 될 수 없어
“선생님, 제 상황에 도움이 될 만한 자기계발서나 심리 책을 추천해주세요.” 상담 말미에 종종 이런 질문을 받는다. 다른 훌륭한 정신과 선생님들은 권장 도서 목록을 갖고 계시던데, 부끄럽지만 나는 그런 준비가 미흡하다. 그러다 보니 이렇게 대답하곤 한다. “노자의 도덕경을 저는 좋아해요. 성경이나 불경을 읽으시는 것도 좋아요”라고. 그리고 제일 자주 하는 대답은 이거다. “문학 작품을 읽으세요. 심리를 이해하고 자기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꼭 심리서적을 읽을 필요는 없어요. 저는 소설책이 최고의 자기계발서라고 생각해요.”

실망하는 눈빛을 보이기도 하지만 수긍하는 이도 있다. 마음의 문제가 자기계발서로 쉬이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분들은 내 말의 속뜻을 이해하는 듯했다. 심리서적을 아무리 읽어도 우울과 불안은 사라지지 않고, 그것을 껴안고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란 걸 알게 된 이들도 나의 대답에 동의할 거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누구나 인정하겠지만 고전을 읽다 보면 ‘그래, 인간의 마음은 이렇게 움직이는 것이로구나’하고 저절로 터득하게 된다. 허구를 통해 “진실한 삶이란 이런 거야”라고 보여주는 게 소설이다. 지혜와 영감은 시 속에 담겨 있기 마련이다. 문학으로 심리를 익히면 정서적으로도 충만해진다. 딱딱한 이론서나 웅변적인 자기계발서로 감성은 못 채운다.

상담 장면을 그럴듯하게 구성한 서적은 마음 치유의 원리를 제대로 담지 못한다. 서로 다르게 생긴 톱니 두 개가 삐걱거리며 돌아가는 것이 현실의 상담이고, 그러다 보니 성공만큼 실패하는 사례도 많다. 그렇다고 실패가 나쁜 것만도 아니다. 만족스럽지 않게 흘러간 상담 안에서도 의도하지 않았던 깨달음을 얻어가는 이도 있다.

실존주의 정신과 의사이자 스탠퍼드대학 교수였던 어빈 얄롬은 이렇게 말했다. “교과서, 논문, 강의는 상담의 단계, 전략적인 기법, 전이와 그 해결책, 대상관계의 분석과 통찰로 심리치료를 묘사한다. 그러나 치료의 진정한 핵심은 다른 사람에게 보이지 않을 때 환자에게 불어넣어진다.” 그는 자신이 요리 강습을 받았을 때의 경험을 가지고 비유적으로 설명했다. 양고기 요리에 쓰일 양념을 요리사가 알려준 대로 따라 만들었지만 맛이 제대로 나지 않아 의아했는데 어느 날 우연히 그 이유를 찾았다고 한다. 다른 사람들이 보지 않은 곳에서 요리사가 조미료를 한 움큼 뿌려 넣고 있는 것을 목격한 것이다. 심리치료에서도 이와 같은 일들이 늘 일어난다고 그는 말한다.

마음의 문제를 푸는 선명한 해법이나 단순한 원리는 없다. 마음 치유 효과는 이론이나 기술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현존, 공감, 돌봄, 그리고 헌신’에서 비롯된다. 이런 요소는 묘사하기도, 정의 내리기도 힘들다. 체험으로 스미듯 얻게 되는 통찰을 활자 속에서 건져내기란 쉽지 않다. 실천 없이 글로만 익히는 건 아무런 소용이 없다.

어쩌면 자기계발서는 소설과 같을지도 모른다. 이런 책들이 지향하는 인간의 모습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럴듯해 보여도 이상화된 자아상은 허구다. 저자가 몸소 증명했더라도 그(녀)가 이룩한 성취의 진짜 비결이 책에 온전히 담기기란 불가능하다. 무엇보다 타인이 거쳐 간 길은 그것이 아무리 좋고 옳아 보여도 내 것이 될 수는 없다. 자기계발서를 읽는 것도 좋지만 우리가 인생에서 추구해야 할 최종 목표가 우상을 따라 하거나 완벽해지기 위함이 아니라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고유한 나를 완성해나가는 것이란 걸 절대로 잊어선 안 된다.

김병수 정신건강전문의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