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삼성이 개입한 에버랜드 노조 설립은 무효"

이혜리 기자 2021. 8. 26. 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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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서울 서초동 삼성 사옥 앞 깃발. 경향신문 자료사진


삼성그룹이 무노조 경영 방침 아래 만든 ‘에버랜드 노동조합’은 어용노조로 설립 자체가 무효라는 1심 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26일 수원지법 안양지원 민사2부(재판장 김순열)는 민주노총 금속노조가 에버랜드 노조를 상대로 낸 설립 무효 확인 소송에서 금속노조 승소로 판결했다.

재판부가 인정한 사실관계에 따르면, 무노조 경영 방침을 고수하던 삼성그룹은 2011년 7월 복수노조 설립 허용 전후 노조 대응 비상상황실 운영·단체협약 지연을 통한 노조 고사화 등을 담은 ‘그룹노사전략’을 시행했다. 그러다 에버랜드 일부 직원들이 ‘삼성노조(금속노조 경기지부 삼성지회)’를 설립하려고 하자, 삼성은 이 노조를 와해시키기 위해 주동자들을 해고 등 징계하고 대항노조로 에버랜드 노조를 설립하기로 계획했다. 직원 임모씨를 노조 위원장으로 정하고 설립신고를 하게 했으며 이들과 단체협약을 맺었다. 삼성은 어용노조라는 비판이 나올 것에 대비해 ‘어용노조, 알박기 노조 비난 대응 교육’도 한 것으로 나타났다.

노동조합법은 노동자가 주체적·자주적으로 단결해 근로조건의 유지·개선 등 지위 향상을 목적으로 하는 단체를 노조라고 규정한다. 사용자 쪽의 참가를 허용하거나, 경비 대부분을 사용자로부터 원조받는 경우 등은 노조로 보지 않는다.

에버랜드 노조 측은 재판에서 삼성에 대한 자주성과 독립성을 갖춰 설립됐고, 설령 설립 당시 자주성과 독립성을 갖추지 못했더라도 최소한 2015년부터는 삼성의 개입 없이 자주적·독립적 활동을 했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에버랜드 노조가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에 의해 설립됐고, 이후 특별히 사정이 변경되지 않아 현재까지도 어용노조로 유지되고 있다고 봤다. 지난 2월 대법원은 유성기업의 어용노조 설립이 무효라는 판결을 하면서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에 의해 노조가 설립됐거나, 그 과정에 노조가 적극적으로 통모·합의했다면 그러한 점이 해소되지 않는 한 노조 설립은 무효라고 했다.

재판부는 구체적으로 2014년 노조 집행부로 활동한 적이 없고 노조위원장 업무도 모르던 김모씨가 위원장으로 선출됐고, 사용자 측 주도 하에 위원장 업무 인수인계가 이뤄진 점을 어용노조로 보는 근거로 댔다. 또 그해 사용자 측이 노조 간부들과 만나 삼성노조에 대한 대응방안을 전달하고 에버랜드 노조가 삼성노조보다 많은 수의 노조원을 유지하도록 관리한 점, 에버랜드 노조가 사용자 측에 대립하는 노조활동을 전개한 적이 없는 점도 감안했다.

재판부는 “에버랜드 노조가 현재 사용자의 개입에서 벗어나 스스로 자주성과 독립성을 갖춘 노동조합으로서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부족하다”고 밝혔다.

강경훈 부사장(당시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노사파트 총괄 임원) 등 삼성 관계자들은 노동조합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2심까지 유죄 판결을 받은 상태다.

이혜리 기자 lh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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