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미술품 의사..이중섭 그림 '상처'도 말끔히 치료하죠"

전지현 2021. 8. 26.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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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품 복원 전문가 김문정 인터뷰
미술품 투자 열풍 불면서
작품 보존 의뢰 고객 급증
여름철 곰팡이가 그림 공격
치명적인 손상 입힐 수도
적정 온도·습도 유지하고
색깔 바래게 하는 햇빛 피해야
서울 금천구 에이엔에이보존 연구소에서 현재 복원 중인 배운성의 1930년대 작품 `귀가`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김문정 대표.
서울 금천구 미술품 복원 연구소 에이엔에이보존에 들어가자 신발이 바닥에 '쩍' 달라붙었다. 외부 먼지와 세균 등을 제거하기 위한 스티키 매트(Sticky Mat)였다. 손상된 그림이나 조각을 '치료'하는 이곳에서 곰팡이균(사상균)은 치명적이다. 캔버스 천과 종이, 목재의 주성분인 셀룰로이드를 분해해 작품 일부를 파괴하거나 다양한 색깔의 얼룩을 남긴다. 유리 액자 틈새까지 파고들기에 안심할 수 없다.

김문정 에이엔에이보존 대표(52)는 "고온에 습도 70% 이상이면 곰팡이가 발생하니까 7~8월 여름철에 특별히 주의해야 한다"며 "곰팡이를 빨리 발견하면 더 이상 번지지 않게 제거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미술품 보관 공간에선 섭씨 18~24도, 상대습도 50~55%, 조도 150~200룩스를 유지하면서 습도 70% 이상이면 제습기를 사용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이쯤 되면 '그림이 상전(上典)'이라는 푸념이 나오지만 오랫동안 방치하면 수십억 원대 미술품 자산이 '쓰레기'가 될 수 있다.

김 대표는 "가능하다면 어둠 속에서 그림을 보관하는 게 가장 좋다. 주요 미술관도 수장고 조명을 꺼놓는다"며 "환기를 자주 하고 특히 작품 재질을 약화시키고 탈색을 일으키는 자외선을 피해야 한다. 햇빛은 미술품 표면을 건조하게 만들어 균열을 일으킨다"고 설명했다. 그는 가을이 오면 소장품 먼지를 터는 '더스트 데이(Dust day)'를 정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부드러운 인조털로 만든 백붓(납작붓)으로 액자에 쌓인 먼지를 살살 털어주는 게 좋다. 찬바람이 부는 11~3월에는 건조해서 그림 물감층에 균열이 생기기 때문에 그 전에 점검해야 한다.

김 대표는 "겨울철 아파트 난방이 과해서 작품에 균열이 생긴다"며 "봄이 오면 먼지를 털어내고 전문가에게 진단받는 게 좋다"고 강조했다.

올해 들어 미술품 구입 열풍이 일어나면서 그림 보존을 맡기는 고객이 급증했다. 현재 국내에 민간 근현대미술품 보존·복원연구소가 10곳 내외여서 하루 24시간이 모자랄 지경이다. 김 대표는 김환기, 이중섭, 이우환, 박서보, 배운성, 유영국, 이승조, 최욱경, 권옥연, 김창열, 이응노 등 국내 주요 작가들뿐만 아니라 피에르 술라주, 알렉스 카츠, 게오르크 바젤리츠, 줄리언 오피, 아르망 등 세계적 작가들의 작품을 보존 처리한 베테랑이다. 프랑스 파리시립복원학교에서 회화·도자 보존처리사 자격증을 취득한 후 대전시립미술관과 이응노미술관에서 학예사로 일하다가 2017년 에이엔에이보존 연구소를 설립했다. 그는 "보존처리사는 '미술품 의사'다. 상처 난 그림의 원형을 최대한 찾아주는 일에 책임감을 느끼며, 이게 최선인지 해가 되는 게 아닌지 머릿속에서 수십 번 시뮬레이션해보고 사전 테스트를 거친 후 손을 댄다"고 했다.

그동안 복원 미술품 중 최악의 상태였던 작품은 배운성 그림과 1967년 정창섭·문학진 등이 참여한 대형 민족기록화였다. 액자 없이 둘둘 말린 상태로 오랜 기간 방치된 작품들이었다. 2001년 프랑스 파리에서 온 배운성 그림은 물감층이 떨어져 나가 접착제로 안정시키고 증류수와 유기용제로 이물질과 곰팡이를 제거하는 등 복잡하고 지난한 작업을 해야 했다. 2019년 복원한 민족기록화 물감층 상태도 너무 열악해 10개월 정도 보존·복원 과정을 거친 후 충남 아산 현충사에서 전시할 수 있도록 했다.

김 대표는 "작업할 때 긴장의 연속이다. 하루도 마음 편할 날 없지만 가슴 뛰는 일이어서 한다. 그림이 회복돼서 연구소를 나갈 때만큼 기쁜 일도 없다"고 말했다.

[전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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