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번방 취재 1년 후.. 그들은 제대로 처벌받고 있을까[플랫]

플랫팀 twitter.com/flatflat38 2021. 8. 26.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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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속보]n번방 ’갓갓’ 문형욱 1심 징역 34년형’.

지난 4월 어느 날, 노트북 오른쪽 아래 알람 팝업창이 떴다. ‘조주빈은 몇 년이었더라….’ 기사를 쓰다 말고 생각했다. 2020년 세상은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으로 떠들썩했다. 사회부에서 ‘박사방’과 ‘n번방’의 공범들의 얽히고설킨 관계도를 그리며 그들의 범죄 행각을 취재해 ‘n번방 리와인드, 성범죄 되감다’를 기획했던 것이 벌써 1년 전이다.

그 사이 경제부로 발령이 났다. 서울 아파트값이 일 년 내내 숨 가쁘게 오른 배경을 취재하고, 끝을 모르게 우상향하는 집값 그래프를 그리고 있다. 수도권 아파트 가격 주간 상승률이 역대 최고라는 기사를 여섯 번쯤 썼다. 세상은 부동산과 주식으로 돈을 번 소식으로 뒤덮였고 ‘n번방’에 대한 이야기는 사라졌다.

“잡혔다고 끝난 건 아니다.” “n번방은 판결을 먹고 자랐다.” 지난해 취재원들이 수없이 외쳤던 이 말이 떠올랐다. ‘부따’, ‘태평양’, ‘잼까츄’, ‘와치맨’, ‘코태’…. 언제 봐도 낯설고도 익숙한 닉네임들. 텔레그램 성착취 공범들은 대다수가 1심 판결에 불복했다. “반성한다”고는 말했지만 어떻게든 죗값을 깎아보려는 노력이 전국 곳곳 법원에서 펼쳐진다. 끝나지 않은 ‘n번방’의 그 후 이야기를 모았다.

📌 [인터랙티브] n번방 리와인드, 디지털 성범죄를 되감다

📌 '빨간 비디오'가 'n번방'이 되기까지…눈감아준 'n번의 순간'들이 '성착취' 만들었다



뉘우치지만 죗값은 과하다는 그들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은 검찰이 무기징역을 구형했으나 1심에서 45년을 선고받았다. 2심에선 3년 더 줄어든 42년이 선고됐다. 항소심 최후 진술에서 조씨는 “재판부가 저를 혼내주길 바란다” “반성의 전례로 거듭날 수 있도록 현실적인 시간을 부여해달라”고 했다. 그 후 3년 감형을 받고도 상고장을 냈다. 그러니까 반성은 하지만, 반성의 시간치고 42년도 너무 과하다는 것이다.

피해자들 개인정보를 빼내 조주빈의 범죄를 도운 거제시청 공무원 천모씨(30)는 항소심에서 2년 줄어든 13년을 선고받았다. 그는 박사방과 별개로 미성년자를 포함한 여성들을 상대로 성착취 영상을 제작하고 유포한 혐의도 받는다. 재판을 받으며 천씨는 “일부 피해자는 동의를 얻어 촬영했다” “아청법 조항은 위헌” 등을 내세우며 1심 형량이 과하다고 했다.

n번방을 만든 ‘갓갓’ 문형욱도 1심에서 징역 34년을 선고받고 불복했으나 항소심에서 형량이 유지됐다. n번방은 조직화·체계화된 디지털 성범죄의 시초 격으로 꼽힌다. 그는 조주빈보다 훨씬 낮은 형량을 선고받았지만 “새로운 시작을 위해 지난 1년간 반성과 후회를 했다”며 선처를 구했다. 조주빈의 핵심 공범으로 꼽히는 ‘부따’ 강훈, ‘이기야’ 이원호도 각각 1심에서 15년, 12년을 선고받고 항소했으나 모두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가해자의, 가해자를 위한 사과




재판을 거치는 동안 가해자들은 “미안하다” “진심으로 사죄한다” 같은 말을 서슴없이 반복한다. 피해 회복에 진심을 담은 사과가 필요하다지만, 재판 상황을 보면 이들의 사죄는 ‘진지한 반성’보단 자신을 위한 전략에 가깝다.

조주빈은 사죄의 뜻을 담은 수많은 반성문을 냈다. 그러나 정작 재판에선 “피해자에게 협박이나 강요하지 않았다”고 주장해 굳이 피해자를 증인으로 불러내고는 했다. 재판을 모니터링하는 시민들은 피해 사실을 다시금 진술하도록 하는 이런 행위가 피해자에게 추가 피해를 줄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가해자들은 ‘합의’에도 애쓴다. 여전히 양형 결정에 중요한 요인이 된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조주빈은 합의에 나서 2심에서 형량을 낮춰 받았다. 당시 변호인을 통해 입장을 전한 피해자는 “잘 지내지 못하고 있다. 힘들어하는 많은 피해자들을 잊지 말아 달라. 형량을 낮추지만 말아달라”고 했지만, 재판부는 “피고인 아버지의 노력으로 일부 피해자와 합의했다” 등 양형 이유를 밝혔다.



문형욱도 누구보다 합의에 힘을 쏟는다. 문씨 변호인은 항소심에서 “피해자와 합의 중이니 선고기일을 늦춰달라”고 요청했다. 성범죄에서 ‘합의’는 요구 자체가 2차 가해가 될 수 있다. 또 재판부가 합의기일을 여유롭게 주는 것은 마치 합의를 종용하는 것처럼 인식된다는 비판이 있음에도 기일은 한 달 가까이 미뤄졌다.

피해자가 일상으로 회복하는 데 합의가 도움이 될 수는 있다. 그러나 어떻게든 감형을 받고자 선고기일까지 늦춰가며 “피해 복구를 위해 노력하겠다”는 문씨의 사과를 피해자들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문씨는 피해 회복이 어려운 디지털 성범죄 특성을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악용해 범죄를 저질렀다. “인터넷에 한 번 올리면 삭제하기 힘든 거 알지 않느냐”며 피해자를 협박했다. 자신이 퍼뜨린 영상을 완전히 삭제하는 것이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로 어렵다는 점을 인식하고 합의를 애원하고 있을지 의문이다.



고3이라, 반성해서, 초범이라…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을 계기로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강화된 디지털 성범죄 양형기준을 마련했다. 하지만 여전히 감형과 참작은 여전히 쉽게 이뤄진다. 개정 전 사건에는 새 기준이 적용되지 않아 ‘솜방망이’ 처벌도 반복된다.

조주빈이 2심에서 형량이 3년 낮아진 데는 ‘초범’이란 점이 양형이유에 포함됐다. ‘초범’은 성범죄 사건에서 단골 감형 사유로 등장해 비난을 받지만 여전히 가해자에게 유리하게 작용한다. 문형욱 역시 항소심에서 “초범인 점을 감안해 선처를 부탁한다”고 했다. 그는 21명으로부터 1275차례 성착취물을 전송받고, n번방에서 3762건을 유포했지만 ‘처음 잡혔다’는 이유로 ‘초범’이다.

상대적으로 여론의 관심에서 벗어난 수많은 유료 회원들은 더 관대한 처벌을 받았다. 수험생이라서, 반성해서, 자백해서, 초범이라서, 추가 유포하지 않아서…. 갖가지 사유로 형량은 줄어든다. 돈을 내고 성착취물을 소비하는 행위는 텔레그램 성착취 범죄를 지탱한 것과 마찬가지나, 이들은 지나치게 가벼운 죗값을 받고 일상으로 돌아온다.

2019년 12월 텔레그램 성착취 대화방에서 성착취물 4758개를 내려받은 이모씨(20)는 지난 2월 징역 2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범행 당시 만 18세 수험생이었고 수시 전형에 실패하자 불안감과 중압감으로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보인다”며 양형 이유를 밝혔다. n번방 성착취물 4785개를 구매해 재판에 넘겨진 경우도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텔레그램 성착취 공동대책위원회에 따르면 ‘n번방’ 등 가담자 판결에서 벌금형이 159건(50.5%)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집행유예 131건, 실형 16건이었다. 피해자들은 아직까지도 피해 촬영물 유포로 인한 추가 피해를 겪고 있다. 지난해 ‘엄벌’을 외쳤던 시민들은 여전히 “가해자가 엄중한 처벌을 받을 수 있도록 끝까지 지켜봐달라”고 말한다.

어떤 이들은 수많은 가해자들의 닉네임이나 이름이 제목으로 뽑힌 재판 결과가 [속보]로 연이어 보도되는 것에 지겨움을 느낄지도 모른다. 그러나 n번방은 사라졌어도, n번방을 가능케 했던 사회구조는 여전히 존재한다. 피해자를 탓하면서 플랫폼을 바꿔 또다시 반복되는 성착취물 소비는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초범’과 ‘합의’ 등을 내세워 가해자를 단호하게 처벌하지 않는 법은 언제 또 이들을 다시 범죄의 현장으로 돌려보낼지 알 수 없다.

어떻게 해야 ‘n번방’의 재현을 막을 수 있을까. 가해자의 재판 상황을 끝까지 지켜보는 것이 하나의 방법이 될 수도 있다. 텔레그램 성착취 공대위는 지난 19일 항소심에서도 34년형이 선고된 문형욱의 재판 결과를 두고 “이번 판결로 모든 것이 끝난 게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며 “피해자들이 일상을 회복하고 온라인 공간에서 모든 여성이 안전할 수 있도록 우리는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여전히 수많은 시민들이 자신의 시간을 쪼개 가해자들이 심판받는 법정을 찾아 결과를 지켜본다. 엄벌 탄원서와 연대 서명을 낸다. 더 엄격한 처벌이 필요하다고 끊임없이 말한다. ‘n번방’을, ‘n번방’을 만들어냈던 구조적인 문제를 끊어내겠다는 외침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김희진 기자 hjin@kh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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