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잇] 코로나 우울, 그리고 자해..위기의 대한민국

2021. 8. 25.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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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재열|비영리단체 청춘상담소 '좀놀아본언니들'을 운영 중인 상담가 겸 작가

얼마 전, 한 지자체의 청년센터를 방문했을 때의 일입니다.


마음건강 사업 담당자가 난색을 표하며 어려움을 토로하더군요.


"재열님, 저희 요즘 큰일이에요. 상담프로그램 1년 간 600명 계획해 뒀는데, 상반기에만 자리가 다 차서 조기 마감됐어요"


어느 지역을 가도 비슷한 이야기들을 합니다. 2020년에는 1년 간 총 500명의 청년들이 상담을 받았는데, 올해는 3개월 만에 750명이 신청을 해서, 250명을 탈락시켜야만 했다거나 하는 그런 얘기들을요. 전년도와 비슷하게, 또는 조금 더 늘려서 마련한 청년 대상의 마음 건강 프로그램들이 상반기에 모두 소진되어 버리는 현상이 전국 각지의 지자체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지요. 상담을 요청하는 양도 많아졌지만, 내용 역시 깊고 어두워집니다. 그 지표 중 하나가 바로 '자해'인데요.

저 역시도 상담을 하면서 자해의 흔적을 보는 일들이 점점 잦아지고 있습니다. 코로나 이전부터 온라인 상담 게시판을 운영해왔지만, 상담을 신청하면서 자해 사진을 같이 업로드 하는 청년 사례는 일 년에 두세건 남짓했었습니다. 그러한 상담 글을 발견하면 '긴급 상황이다!'라고 판단하여 부리나케 가까운 정신의학 전문의를 찾아 인계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요즈음에는 긴급 상황이 아니라, 일상적 상황이라고 말할 만큼 여러 번, 또 다양한 자해의 흔적을 봅니다. 청년들의 마음 건강에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기에, 이런 현상들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요?

국회 이수진 의원실에서는 최근 주목할 만한 내용을 공개했습니다. 올해 상반기 20대가 자해 등을 통해 상담치료를 받게 된 사례가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 상반기보다 2.4배 증가하고, 심리상담 건수는 지난해 상반기 대비 72%나 증가했다는 내용이었지요. 작년 매 월별 심리상담 건수는 평균 10만 건대 였지만, 올해 초에는 한 달에만 20만 건을 넘기고, 4월부터는 줄곧 40만 건을 넘어섰다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즉, 작년 이맘때보다 한 달에 상담 받는 인원이 네 배 이상 늘었다는 것이지요.

전년도에 코로나가 시작된 이후, 제가 이 지면을 통해서 언급했던 이야기 중 하나는 '20대 여성 자살 시도율'입니다. 2019년보다 2020년에 20대 여성 청년의 자살 시도율이 4배 늘어났다는 서울시정신건강복지센터의 발표 이후, 일대 파란이 일었지요. 코로나 때문일까? 왜 유독 20대 여성 청년일까? 다양한 전문가들이 그 이유를 분석했었습니다. 어떤 분들은 '20대 여성이 대화와 유대감 속에서 가장 위로를 받는 성별이고, 세대이기 때문이다.'라는 분석을 내어놓았지요. 그러니까 '젊은 여성들은 만나서 대화하고 해소하는 타입이 많은데, 코로나로 못 만나기 때문 아니냐' 라는 의견이었는데요. 이 의견에 대해 저를 비롯한 많은 정신건강 전문가들은 절대적으로 반대의견을 내었습니다. 특정 성별의 '성격유형'으로 치부해서는 젠더 이슈밖에 안 된다는 거죠. 그렇다면 이유가 무엇일까요?

뜻밖에도 그 힌트는 통계청 고용동향 지표에서 찾을 수 있었습니다. 2020년 9월 고용동향에서, 전년 대비 가장 많이 실업률이 증가한 그룹이 20대 여성이었습니다. 실업률의 증가와 자살 시도율의 증가 폭이 거의 비슷한 결을 보여준 것인데요. 이를 통해서 20대 여성이 유독 감정적이어서 쉽게 자살을 택하는 것이 아니라, 코로나 상황으로 인해 경제적, 환경적 안전망이 가장 먼저 무너진 세대라서 자살 시도율 역시 동반 견인되었다는 분석을 할 수 있었습니다.

즉, 코로나가 장기화될 수록, 20대 여성 외에도 다음 순서로 차례차례 고용 및 경제 지표들이 무너지는 세대가 뒤이어 자살 시도율 증가를 할 것으로 예측했는데요. 실제로 2021년에 접어들며 불안한 예측은 점점 사실로 되어가고 있습니다. 즉, 20대 여성이 '유독 극단적 시도를 많이 한 것'이 아니라, '가장 먼저 무너진 도미노의 첫 블록'이었던 것이라고도 볼 수 있겠지요.

이제는 더 이상 청년들의 정신건강 위기 앞에서 '나약해서 그렇다, 고생을 안 해서 그런다, 장년이나 노년이 더 힘들다' 라는 이야기와 함께 청년들에게 '알아서 극복해라'라고 할 때는 아닌 것 같습니다. 국가적 차원에서 논의하고, 긴급한 대응이 필요한 시점일겁니다. 이러한 상황을 지금 잘 케어하지 못하면, 청소년으로, 장년으로 이 위기의 도미노는 이어질지도 모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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