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미산의마음을여는시] 책

- 2021. 8. 23. 2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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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희
노을이 여자를 읽고 있는 저녁 어스름
언제부터 그 여자
도서관에 꽂혀 있었는지 몰라
세상 어디쯤에 꽂아둔지도
언제 끼워둔지도 몰라
세상, 성게처럼 헤매던
한 여자
몇 페이지 넘기지도 못했는데

아무도 그 여자 처음부터 끝까지 읽은 적 없고
자신조차 다 읽어내지도 못했는데
폐관 시간은 점점 가까이 다가오네
붉게 노을이 지는 저녁 어스름,

부고가 도착했습니다.

아! 뜻밖이었습니다.

그녀의 시집을 찾기 위해 책장을 뒤졌습니다.

언제 책장에 끼워두었는지,

어디에 두었는지,

책장에 얄팍하게 꽂혀있는 그녀 시집을 겨우 찾아냈습니다.

세상을 성게처럼 가시를 두르고 산 한 여자.

이승에선 아무도 그녀를 읽지 않았습니다,

나도 그녀 시를 몇 페이지 넘기지도 못했는데

그녀조차 자신을 다 읽어내지도 못했을 텐데

그 여자는 노을을 따라 하늘나라로 갔습니다,

저세상으로 간 다음에야 한 여자의 생애를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 내려갑니다.

박미산 시인, 그림=림지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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