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로 언론인들도 나섰다.."언론중재법 개정안 강행처리 중단해야"

이혜리·박용필 기자 2021. 8. 23.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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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자유언론실천재단 원로 언론인들이 23일 서울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언론중재법 강행 처리를 중단하고, 사회적 합의에 나서라고 촉구하고 있다. 김영민 기자


원로 언론인들이 더불어민주당이 강행 추진하고 있는 언론중재법(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에 우려를 표명했다.

자유언론실천재단은 23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회가 언론중재법 개정안 강행 처리를 중단하고 사회적 대화에 나서야 한다’는 내용의 원로 언론인들의 입장을 발표했다. 개정안은 허위·조작 보도를 한 언론사에 손해액의 5배에 달하는 징벌적 배상책임을 지울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재단은 “언론의 허위보도로 인한 폐해를 방지하기 위한 것임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그 해결책이 꼭 이 법안이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공감하기 어렵다”고 했다.

재단은 “언론피해의 심각성과 피해자 구제에 대해 반대할 사람은 없다”면서도 “이 법안이 1987년 이후 기나긴 군부독재의 터널을 뚫고 어렵게 얻어진 언론자유에 심각한 제약과 위축효과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법안을 그대로 통과시키는 것은 심각한 후유증을 야기할 게 명약관화하다”고 했다. 구체적으로 허위·조작 보도의 고의·중과실이 언론에 있다고 추정하는 기준이 모호하고, 입증책임을 지나치게 언론사에 부과하는 점 등을 짚었다. 언론계·학계 등에서는 기존의 언론중재 제도나 사법절차를 통해 언론 보도로 인한 피해를 구제할 수 있는데도, 추상적·포괄적으로 규정된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도입하는 것은 언론의 권력 감시 역할을 위축시킨다고 비판하고 있다.

재단은 민주당이 국회 본회의 처리 시한으로 정한 25일까지 개정안의 여러 문제점이 조정되기 어렵다면서, 강행 처리를 하지 말고 시민사회와 학계, 언론현업단체 등이 공동으로 참여해 사회적 합의를 할 수 있는 국회 내 특별위원회를 구성해야 한다고 밝혔다.

자유언론실천재단 원로 언론인들이 23일 서울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언론중재법 강행 처리를 중단하고, 사회적 합의에 나서라고 촉구하고 있다. 김영민 기자


재단은 “현 법안은 교각살우의 우를 범할 수 있고 실익보다 부작용이 더 크다”며 “특히 언론 관련법은 정치권 입맛대로 정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이어 “충분한 숙려기간을 거쳐 지금까지의 논의에서 나타난 여러 쟁점들을 조율·정리해야 한다”면서 “시민의 피해구제를 중요 과제로 두며 현재 나타나고 있는 극심한 상업주의, 정파주의 저널리즘을 타파하고 공영언론의 역할, 건강한 언론시장, 신뢰받는 언론 등을 위한 언론개혁을 완성해나갈 것을 촉구한다”고 했다.

자유언론실천재단은 1974년 동아일보 기자 등 180여명이 유신독재에 맞서 언론 자유를 요구한 자유언론실천선언 등 해직 언론인과 언론노동운동의 정신을 기리고,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언론 자유를 지키기 위해 활동하는 단체다. 해직 언론인과 언론노동운동 관련 연구와 지원을 하며 16개 언론단체 대표들이 이사로 참여한다. 1974년 동아일보에서 해직된 후 민주화운동을 주도한 이부영 전 국회의원이 이사장을 맡고 있다. 기자회견에는 이 이사장과 유숙열 80년해직언론인협의회 공동대표, 성한표 조선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조선투위) 위원장, 신홍범 조선투위 위원이 참석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도 이날 성명을 내고 “지금이라도 민주당은 개정안의 세부사항을 수정·보완하고, 사회적 합의를 통한 법안 의결을 도모하라”고 밝혔다. 민변은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으로 언론 피해 구제를 강화한다는 개정안 취지는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면서도, 허위·조작 보도의 고의·중과실이 언론에 있다고 추정하는 사유를 예시하는 규정은 삭제하고 열람차단청구권 도입은 보류해야 한다고 했다. 민변은 “민주당의 유례 없는 입법 속도전으로 국민의 여론 수렴이 상대적으로 미흡한 반면 가짜뉴스 피해구제법이라는 민주당의 자평이 더해졌다”며 “개정안 취지가 오해받고 퇴색될 것을 우려한다”고 했다.

한국법학교수회는 입장문을 내고 개정안이 기존 법리에도 맞지 않고, 자칫 중소형 언론사들의 씨를 말려 언론의 자유를 훼손할 수 있다며 충분한 토론을 먼저 거쳐야 한다고 했다. 교수회는 “언론중재법은 언론의 자유와 독립을 보장하는 데 주된 목적이 있는 법률임에도 이번 개정안은 징벌적 손해배상, 고의·중과실의 추정 등과 같이 언론사 등의 책임을 매우 강화하는 규정을 신설하고 있다”며 “이는 법 제정 목적에 정면으로 반한다”고 했다.

교수회는 특히 “징벌적 손해배상은 권리침해가 다수인에게 발생해 기업에게 사회적 책임을 물어야 할 정도에 이르렀거나, 권리침해가 명백하고 지속될 가능성이 있는 경우 예외적으로 도입할 수 있는 것”이라며 “과실의 추정을 넘어 고의·중과실을 추정하는 것 역시 법리적으로 쉽게 수용하기 어렵다”고 했다. 이어 “최대 5배의 징벌적 손해배상을 하게 되면 대형 언론사를 제외한 중소형 언론사 대부분이 문을 닫게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경제정의실천연합도 성명에서 “개정안이 사회적으로 충분한 숙의와 합의가 없이 강행된다면 어떤 권력자이든 언론을 길들이려한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며 “표현의 자유와 국민의 알 권리를 침해하는 제도로 전락할 우려가 있다”며 강행 처리를 중단하라고 밝혔다.

언론의 자유를 과도하게 침해한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은 오는 25일 국회 본회의에서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통과시킨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이혜리·박용필 기자 lh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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