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 시원한 풍자·판타지.. 떴다 '조선 뮤지컬'

박성준 2021. 8. 22. 2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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퓨전 사극 뮤지컬 2편 화제
전통과 현대 어우러진 '금악'
아티스트 원일 다양한 음악적 시도
통일신라부터 전해 온 금지된 악보
'금악' 둘러싼 조선왕실 사건 다뤄
음악가·소리꾼·연극배우 등 총출동
해학·풍자 일품인 마당극 '판'
주막에 들어가기 위해 인증 받고
고층 탑 쌓는 장면에선 "역세권"
코로나·LH 사태 생생하게 반영
전통연희 양식에 서양음악 입혀
전통음악이 뮤지컬 무대에서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고 있다.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창작 뮤지컬 ‘금악:禁樂’은 통일신라 때부터 내려온 금지된 음악을 둘러싼 이야기를 들려준다.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 제공
조선뮤지컬이 흥행 가도를 달리고 있다. 대중에게 익숙한 뮤지컬 문법을 따르면서도 판소리와 전통악기 등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새로운 무대를 선보이는 작품들이다.

◆‘소리가 악령을 부른다’, 금악

‘금악:禁樂’은 걸출한 아티스트 원일이 한국 음악의 새로운 가능성을 타진하는 작품이다. 그가 예술감독으로서 이끄는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를 통해 전통음악의 다양한 음악적 시도를 보여준다. 원일은 정통 국악연주자 출신으로 인디 록밴드 ‘어어부 프로젝트’에서 활동하다가 영화 ‘꽃잎’ 등으로 대종상 음악상을 네 번 받았으며 평창동계올림픽 개·폐막식 음악감독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했다. 이번엔 뮤지컬 ‘니진스키’의 작곡가 성찬경, 창극 ‘패왕별희’의 작곡가 손다혜, 국악과 재즈 등에서 활동 중인 음악감독 한웅원과 함께 ‘금악’의 음악을 만들었다.
역시 ‘니진스키’의 신예 김정민 작가가 맡은 극작은 조선 왕실에서 전해 내려오는 음악의 비밀을 풀어나가는 내용이다. 무대는 강렬한 조명 아래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진 다채로운 음악으로 채워진다. 조선 순조 말기 효명세자가 대리청정하던 시기를 배경으로 통일신라부터 전해져 온 금지된 악보인 '금악'을 둘러싸고 펼쳐지는 기묘한 사건을 그린다. 지리산 깊은 골짜기에 사는 성율은 세상의 소리가 음악이다. 그는 자신만의 소리로 음악을 만들고 싶어 궁중에서 음악과 무용을 담당하는 장악원에 들어간다. 하지만 오랫동안 비밀리에 전해진 금지된 음악을 해독하라는 명을 받고, 마침내 욕망을 먹고 사는 존재인 갈과 마주한다.
원일 연출은 언론 인터뷰에서 ‘소리가 악령을 부른다’로 작품을 설명했다. “(작품 구상은)뮤지컬 ‘니진스키’의 김정민 작가를 만나면서 구체화됐죠. 효명세자는 예술적인 것에 천재적인 재능을 지녔어요. 종합예술인 정재(궁중무용)를 만들고, 시를 썼죠. 그 시대를 배경으로 한 판타지인데 금지된 음악이 인물의 비극적 이야기와 만나면서 ‘현대적인 빌런’(갈)이 탄생하게 됩니다. ‘반지의 제왕’ 골룸처럼 분노와 욕망이 너무 커지면 존재가 변하잖아요. 성율의 분노부터 괴물이 현현하는데, 그건 일종의 아바타 같아요. 이런 아바타적 소재는 ‘해변의 카프카’ 등 문학에도 꾸준히 등장한 소재죠.”
여느 뮤지컬과 다르게 음악가, 소리꾼, 연극배우 등 각기 다른 영역에서 활동하는 다양한 예술가들이 출연한다. 만능 뮤지션 추다혜는 뮤지컬 배우 윤진웅과 함께 욕망을 먹고 자라는 갈 역을 맡았다. 추다혜는 갈의 매력에 대해 “사람이 아닌 캐릭터라서 사람보다 자유자재로 움직이거나 말하는 부분이 많아 외적인 움직임을 통해 내면을 완성해가려고 했다”고 말했고, 윤진웅은 “사람의 갈증으로 만들어진 캐릭터이기 때문에 움직임이나 걸음걸이에 중점을 두고 해석하려고 했다”고 설명했다. 경기아트센터 대극장에서 8월 29일까지.
신명나는 마당극을 떠올리게 하는 ‘판’은 시원한 풍자로 쉴 새 없이 웃게 만든다. 국립정동극장 제공
◆시원한 풍자, 뮤지컬을 만난 마당극 ‘판’

개막 직후부터 재밌다고 소문난 뮤지컬 ‘판’은 해학과 풍자가 일품이다. 조선 후기 활약했던 한 이야기꾼이 ‘사또 인형’을 들고 ‘고층 탑’을 쌓는 장면에선 “역세권”, “똘똘한 한채” 등 요즘 익숙한 단어가 튀어나온다. 그걸 지켜보던 다른 등장인물은 “뭔 냄새 안 나요”라며 “엘에이치(LH)~!!”라고 재채기를 하는 식이다.

특히 이번 무대에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등 시대상이 반영된 ‘현실’을 생생하게 그렸다. 온 나라에 역병이 퍼져 외출이 자유롭지 않다는 배경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또 주막에 들어가기 위해 인증을 하는 등 코로나19 속의 일상을 무대 위에 녹여냈다.
19세기 말 조선 서민들 사이에서 흉흉한 세상을 풍자하는 패관소설들이 퍼지자 세책가를 중심으로 소설들을 모두 거둬 불태워버리라는 명령이 떨어진다. 그런데 과거 시험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던 부잣집 도련님 달수가 어느 날 우연히 보게 된 이득에 반해 그녀를 따라가다 매설방 앞에 당도하게 된다. 시대를 읽는 눈을 가진 밝은 여성, 춘섬이 운영하는 매설방에서 이덕은 이야기를 읽는 이들을 위해 소설을 필사하고 있다. 달수는 그곳에서 금지된 이야기의 맛에 빠져들고 ‘낭독의 기술’까지 전수받게 된다.
극은 전통연희 양식과 서양 음악을 중심으로 구성된다. 국악 퍼커션과 함께 대금 등 우리 소리를 기반으로 스윙, 보사노바, 클래식, 탱고 등 서양 음악 요소를 추가해 색다른 연출을 선보인다. 여기에 양주별산대놀이, 꼭두각시놀음, 판소리, 가면극 등을 활용해 사람과 사람 사이의 생동감 넘치는 이야기를 풍자와 해학으로 재치 있게 풀어내며, 현실의 어려움을 이겨내고 살아가게 하는 이야기의 힘을 담았다.
2017년 CJ문화재단이 발굴한 작품으로 2018년 초연됐다. 2015년 한국예술종합학교의 20분 공연 때부터 정은영(35) 작가와 박윤솔(36) 작곡가가 키워온 씨앗이 맺은 열매다. 초연 배우인 김지철, 류제윤, 김지훈, 최유하, 김아영, 박란주, 임소라 배우와 산받이 최영석이 이번에도 무대에 오른다. 원종환, 최수진, 류경환, 이경욱, 김지혜가 새로 합류했다. 원안연출은 변정주, 협력연출은 송정안이다. 국립정동극장에서 9월 5일까지.

박성준 기자 alex@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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