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경원의 지식카페>곡면의 조형미·자연미 추구.. 미래를 여는 독보적인 예술성

기자 2021. 8. 20.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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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노의 콘셉트카 ‘트윈즈’
로스 러브그로브

■ 최경원의 세상을 바꾼 디자인 - ⑨ 로스 러브그로브

‘고 체어’, 직선 하나 없이 흐르는 곡면으로만 디자인…‘BD 러브’ 벤치, 앉는 바닥·등받이 유기적 조형성 돋보여

‘티 난트’ 생수병, 자연 중시한 미학적 가치 담아내… 콘셉트카 ‘트윈즈’,연두색 휠 캡에 앞뒤 문 열리는 방향 ‘강렬한 인상’

디자이너 중에는 앞으로 다가올 세상을 미리 보여주는 듯한 사람들이 있다. 영국의 산업디자이너 로스 러브그로브(Ross Lovegrove)가 그렇다. 그가 디자인한 ‘고 체어(Go Chair)’를 보면 미래의 세계를 미리 엿보는 기분이 든다. 온통 알루미늄 금속으로만 만들어진 질감도 그렇지만, 직선이 하나도 없고 흐르는 곡면으로만 디자인된 형태가 매우 초현실적으로 보인다. 이 의자에 앉으면 미래로 날아갈 것 같다.

그가 디자인한 ‘슈퍼내츄럴 체어(Supernatural Chair)’는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것임에도 그런 느낌이 들지 않는다. 방석 같은 사각형 모양의 바닥과 둥근 타원형 모양의 등받이가 기존 의자와 비슷한 듯하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낯선 구조다. 그런데 그러면서도 유연하게 흐르는 모양이 보는 사람의 눈 안으로 마치 미끄러지듯이 들어온다. 미래적인 인상 이전에 러브그로브는 이렇게 곡면 형태를 아름답게 만드는 데에 있어 워낙 독보적이어서 ‘캡틴 오르가닉(Captain Organic)’이라는 닉네임이 붙었다.

그런데 이처럼 하나의 형태에 수많은 곡면과 곡선의 흐름을 무리 없이, 그리고 아름답게 조율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이런 유기적인 곡면을 가진 형태들은 보는 방향에 따라 형태의 어울림이 달라 보이기 때문에 디자인할 때 그 모든 방향에서 아름답게 보이게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디자인은 디자인을 시작할 때 이미 수만 가지의 시점과 수만 가지 부분의 어울림을 입체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어느 한 부분, 어느 한 방향만 잘못돼도 전체적인 아름다움이 파손된다. 대신 전체적으로 완벽한 흐름을 구성했을 때는 대단한 수준의 아름다움을 얻게 된다. 러브그로브는 바로 그런 점에서 뛰어난 실력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의 디자인은 다양한 시점에서 살펴봐야 한다.

공공 벤치로 많이 사용하는 ‘BD 러브(Love)’와 같은 디자인은 크기가 큰 편이어서 그런 조형성을 감상하기에 좋다. 앉는 바닥과 등받이의 유기적인 곡면이 아름답다. 어느 쪽에서 봐도 흐르는 곡선과 곡면이다.

그런데 러브그로브의 디자인은 단지 곡면 형태를 아름답게 잘 디자인하기 때문에 뛰어난 것이 아니다. 그의 디자인에서 미래를 엿보게 되는 것은 곡면의 조형적 아름다움 때문이 아니다.

러브그로브는 21세기로 접어드는 초반기에 희한하게 생긴 생수병 디자인을 내놓으면서 세계 디자인계에 큰 충격을 불러일으켰다. 그가 내놓은 ‘티 난트’ 생수병은 물을 기능적으로 담기에 유리해 보이지도 않고, 다른 럭셔리한 생수병들이 갖는 그런 우아한 아름다움을 찾아보기도 어렵다. 앞의 유기적인 디자인들이 보여주는 아름다운 곡면, 곡선과는 또 다른 느낌의 형태다. 원기둥이나 육면체와 같은 다듬어진 조형적 질서는 전혀 볼 수 없고, 게다가 유연하게 흐르는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것도 아니다. 이 생수병 디자인은 그냥 막 만들어진 덩어리로 보인다. 근본적으로 불규칙한 형태의 디자인인 것이다. 그런데 이 생수병이 불량품이나 추한 형태로 보이는 것도 아니다.

생수병이 아니라 흐르는 물이 그냥 그대로 멈춘 것처럼 보인다. 불규칙한 형태가 생수병의 플라스틱 냄새를 완전히 벗겨내고 맑고 깨끗한 물로 만들어 버리고 있다. 기하학적인 형태들이 대체로 인간의 이성으로부터 나온다면, 이런 유기적인 형태들은 자연으로부터 나온다. 이 생수병은 말하자면 단지 물을 담는 플라스틱병이 아니라 하나의 자연으로 다가온다. 그 덕분에 본래 재질인 플라스틱은 뒤로 숨고 물이 앞으로 나온다.

이것은 수천 년 동안 동아시아 사회가 향했던 미학적 가치였다. 이 세상에 가장 좋은 것은 물이라고 한 사람은 춘추전국시대의 노자였고, 그의 가르침은 동아시아의 아름다움이 항상 자연을 향하게 만들어 왔다. 이런 노자의 가르침이 영국 웨일스 출신의 디자이너에게서 발견되니 그의 디자인에서 미래가 엿보이는 것이다.

이렇게 자연을 향하는 불규칙한 형태는 만들기가, 그것도 기계적 대량생산체계에서 실현하는 것이 상당히 어렵다. 실제로 이런 생수병을 만들려면 유기적인 형태로 금형을 파내는 기술이 뛰어나야 한다. 겉으로 보기에 물처럼 보이는 불규칙함을 규칙적인 기계로 생산한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모순이다.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서 러브그로브는 최첨단 테크놀로지를 동원하지 않을 수 없었고, 그것 때문에 오히려 그의 디자인이 미래적으로 보이기도 한 것이다. 러브그로브의 이 생수병 디자인은 그래서 미학적으로, 기술적으로 간단치 않다. 겉으로 보면 그의 디자인은 하이테크놀로지가 만든 것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자연을 목표로 하는 지극히 불규칙한 미학적 관점이 작용하고 있다. 러브그로브가 그저 그런 디자이너가 아니라 세계적인 디자이너로 평가받는 데에는 이런 이유가 있으며, 그의 이 생수병 디자인은 21세기 현대 디자인의 흐름을 근본적으로 바꿔 놓게 됐다.

유기적일 뿐만 아니라 강력한 불규칙함을 통해 자연을 실현하고자 했던 것은 앞에서 살펴봤던 그의 디자인에서도 사실은 깊게 표현돼 있었다. 가령 슈퍼내추럴 체어의 등받이에 뚫린 구멍을 보면 마치 강에서 볼 수 있는 자갈돌 모양처럼 불규칙해 보이는데, 그렇기 때문에 이 대칭 형태의 의자는 딱딱하지 않고 자연스러워 보인다. BD 러브 벤치의 등받이도 산맥을 연상시키는 곡선을 통해 매우 간접적으로 자연을 표현하고 있다.

그가 디자인한 욕실용품 중 스테인리스스틸로 만들어진 샤워기를 보면 생수병에서 한 단계 더 앞으로 나아간 듯해 보인다. 샤워기가 벌집 모양이면서도 비정형적이어서 아주 자연스러워 보인다. 그런데 재료를 보면 플라스틱보다도 훨씬 더 자연적이지 않은 금속 재료로 만들어져 있다. 번쩍거리는 금속은 청결해 보이기는 하지만 딱딱하고 차가운 질감 때문에 편안한 자연성을 느끼게 하기에는 한계가 많다. 그런데 이 샤워기에서 금속의 차가운 반자연적 성격은 한 발 뒤로 물러서고 나무와 자갈돌 같은 이미지가 앞으로 바짝 다가선다. 따지고 보면 참으로 대단한 디자인 솜씨다. 이 디자인에서 러브그로브가 무엇을 추구하고 있는지를 확실히 알 수 있다. 그는 단지 기능적이고 아름다운 디자인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을 만들고자 하는 것이다. 조물주를 흉내 내는 것일까? 아무튼 그래서 그의 디자인들은 우리의 눈을 자극하기보다는 온몸을 포근하게 감싸고 들어온다. 실제로 러브그로브는 디자인할 때 항상 자연을 모티브로 하고 있으며, 자연에 해가 되지 않는 재료나 가공방법 등에 대해 상당히 많은 연구를 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2013년에 디자인한 르노의 콘셉트카 트윈즈(TWIN’Z)에서는 그의 미래적인 경향을 좀 더 중점적으로 표현해서 눈에 띈다. 이 자동차에서는 불규칙하거나 유기적인 형태보다는 색상이 두드러져 보이는데, 자동차에는 잘 쓰지 않는 휘황찬란한 파란색과 형광 빛으로 눈을 파고드는 연두색의 휠 캡이 사람의 눈을 사로잡는다. 완만한 선들과 평범한 구조를 가지고 있는 차의 형태는 콘셉카로서는 다소 평범해 보인다. 그런데 이런 형태 위에 강렬한 인상을 자아내는 것은 앞문과 뒷문이 열리는 방향이다. 앞뒤 문이 실내 공간을 완전히 개방하도록 열리게 돼 있어서 차의 안과 바깥 공간이 매우 개방적인 관계를 이룬다. 그래서 차를 타고 내리는 방식뿐 아니라 편리성에 있어서도 기존의 자동차와는 획기적으로 다르다. 그가 철학적인 측면뿐 아니라 기능적인 측면에 있어서도 뛰어나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우주선을 연상케 하는 실내 모습도 인상적이다. 러브그로브 특유의 부드럽게 흐르면서도 반복되는 유기적인 형태의 패턴이 앞문, 뒷문, 차 몸체의 차이를 무시하고 하나의 면으로 흐른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지는 이미지도 보는 사람의 눈을 파고드는데, 파이프 구조에 그물망처럼 등받이와 바닥이 만들어진 좌석의 심플한 모양 역시 러브그로브의 뛰어난 감각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이런 특징들이 전체적으로 어울려 이 콘셉트카 트윈즈는 마치 우주에서 방금 도착한 것처럼 보인다.

이처럼 유기적인 조형성과 자연의 실현, 그리고 미래적인 이미지 등을 추구하고 있는 러브그로브는 지금도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으며, 항상 새로운 디자인을 내놓으면서 미래를 창조하고 있다.

현디자인연구소 대표

■ 로스 러브그로브

- 1958년 영국 웨일스 카디프에서 출생

- 1980년 맨체스터공대 산업디자인과 졸업(학사)

- 1983년 로열 칼리지 오브 아트(Royal College of Art) 디자인 석사

- 1980년대 초반 소니 워크맨, 애플 컴퓨터 디자인 작업

- 크놀 인터내셔널(Knoll International) 컨설턴트 맡아 파리로 이주

- 장 누벨(Jean Nouvel), 필립 스타크(Phillipe Stark)와 함께 ‘아틀리에 드 님’(Atelier de Nimes)에 초대돼 까샤렐, 루이비통, 에르메스, 듀퐁 등 컨설팅

- 1986년 런던으로 돌아와 유수의 기업들과 디자인 프로젝트 진행

- 뉴욕 현대미술관(MOMA)과 구겐하임미술관, 파리 디자인박물관, 런던 디자인박물관, 퐁피두센터, 엑시스센터 재팬 등에 작품 전시. MOMA, 런던 디자인박물관, 바젤 비트라 디자인박물관 등에 작품 영구 소장

- 2002년 국제 디자인 연감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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