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스 베버와 마르크스, '더럽게 어렵지만' 읽어야 하는 이유

홍기빈 2021. 8. 20. 0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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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 엥겔스 전집〉과 〈막스 베버 선집〉의 출간이 시작됐다. 마르크스와 베버가 누구인가. 독일 사회과학을 창시한 두 대마왕이다. 현재의 사회과학을 극복하기 위해 읽어야 한다.
길 출판사가 펴낸 〈마르크스 엥겔스 전집〉(왼쪽 두 권)과 〈막스 베버 선집〉. ⓒ도서출판 길 제공

길 출판사에서 〈마르크스 엥겔스 전집(Marx-Engels-Gesamtausgabe·MEGA)〉과 〈막스 베버 선집(전 10권)〉의 출간을 시작했다. 마르크스와 베버가 누구인가. 저 찬란했던 100년 전 독일 사회과학을 창시한 두 대마왕이 아닌가. 책장을 장식해 있어 보이게 만들기에 더없이 좋은 ‘굿즈’라고 볼 이들이 있을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흠잡을 데 없이 제작된 책의 외관은 그런 용도를 훌륭하게 충족시킬 수 있다. 하지만 이 짧은 글은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자 한다. 이번에 비로소 한국어로 본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두 거장의 책들은 책장 보관용이 아니다. 지금 온갖 위기에 휩쓸려 있는 산업사회에서 무지와 무능을 드러내는 현재의 사회과학을 반성하고 극복하기 위해 계속 정독하고 숙고해야 할 책이라고 말하고자 한다.

‘엄밀한 학문’으로서의 사회과학을 정립하고자 했던 마르크스. ⓒTASS

‘사회과학’은 19세기 초 프랑스 사상가 생시몽의 제창으로 시작되었다. 그의 주장은 야심차고도 낙관적인 것이었다. 인류 문명이 ‘산업사회’(그가 고안한 용어다)로 들어선 오늘날 인간 사회를 예전과 같이 도덕이나 종교의 원칙으로 조직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또 그릇된 일이다. 공학자와 과학자들을 통해 생산 활동에서 끝없는 혁신이 벌어지듯, 인간 사회 또한 ‘과학적으로’ 연구해 법칙을 찾아내고 그에 따라 조직·관리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사회과학’의 꿈은 그의 제자들은 물론이고 비서였던 오귀스트 콩트와 그들에게 영향받은 존 스튜어트 밀을 거쳐 허버트 스펜서에 이르기까지 이른바 ‘실증주의’라는 이름으로 유럽 지성계를 풍미했다. 요컨대 사회도 자연과 다를 바 없는 ‘법칙’에 따라 작동하는 존재이니, 이를 자연과학과 마찬가지의 ‘경험적·과학적’ 방법으로 연구하면 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런 사회과학을 통해 사회를 과학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이들은 믿었다.

하지만 이런 낙관주의는 금방 무너지기 시작한다. 사회는 자연과 다르며, 자연과학의 방법을 그대로 가져다 사회과학을 구성할 수 없다는 것이 곧 드러났기 때문이다. 과학적 방법에 가장 초석이 되는 ‘데이터’부터 문제였다. 자연과학에서는 어떤 데이터가 유의미한 것인지의 논란이 비교적 적지만, 인간 사회는 다르다. 빈민의 증가, 실업, 전쟁 발생과 같은 사회현상을 설명하려면 도대체 어떤 데이터를 뒤져야 하는가? 사회과학은 자연과학과 달리 실험이 불가능하므로 ‘가설 수립-통제된 실험을 통한 검증’이라는 방법을 사용할 수가 없다. 따라서 그 사회현상을 설명하는 ‘가설’은 그 현상의 전후 인과관계를 나타내는 이런저런 ‘내러티브’로 머물기 쉬우며, 이렇게 검증되지 않는 내러티브는 걸핏하면 종교적 교조 같은 맹목적인 ‘이데올로기’로 전락해버린다.

카를 마르크스와 막스 베버는 바로 이러한 위험을 넘어서 각자가 목표로 삼은 인간 사회의 개조에 유의미한 ‘엄밀한 학문’으로서의 사회과학을 정립하고자 몸부림쳤던 진정한 의미의 과학자들이다. 하지만 어이없게도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 자신이 새로운 ‘이데올로

‘마르크스주의’를 창시한 엥겔스. ⓒTASS

기’의 선전 도구로, 심지어 ‘괴수’로 희화화되었던 것이 20세기 지성사에 벌어진 일이었다. 게다가 언어적 장벽으로 일본어나 영어를 통해 한번 굴절된 형태로 두 거장을 접할 수밖에 없던 한국의 지성계에서는 이런 희화화가 더욱 심하게 벌어졌고, 결국 ‘누구나 이야기하지만 아무도 읽지 않으며, 그러면서 모두 아는 것으로 치부되는’ 모호한 유령처럼 떠돌아온 면이 있었다. 이번에 길 출판사와 번역자들이 공들여 두 거장의 제대로 된 번역본을 내놓은 것은 이런 우리 지성계의 치부를 덮어줄 만한 큰 의미가 있는 사건이라 본다.

먼저 이번에 우선 출간된 ‘MEGA’ 두 권의 의미를 음미해보자. 마르크스의 저작은 그의 천재성을 활용해 강력한 이데올로기를 구축하려 한 이들의 손을 거쳐 출간돼왔고 그 과정에서 왕왕 왜곡되는 일까지 벌어졌다. 이 때문에 최근까지도 마르크스의 본래 생각과 그 발전 과정을 제대로 이해하는 일이 막혀 있었다. 〈자본론〉도 마르크스 자신의 손으로 출간한 1권을 빼면 제2인터내셔널의 공식 이념인 ‘마르크스주의’를 창시한 엥겔스와 카우츠키가 유고를 정리·편집해서 낸 책이었다. 러시아 혁명 이후 소련에서 전집 발간이 시작되었지만(MEGA 1), 이미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1940년대부터 역사의 운동법칙을 밝혀낸 ‘역사적 유물론’의 체계를 완성했다는 공산당의 신화에 부응하기 위해 편집되었고, 그 과정에서 실제 존재하지도 않은 〈독일 이데올로기〉라는 책을 짜깁기로 날조하기까지 했다.

주목해야 할 ‘포섭’의 개념

1975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학문적으로 엄밀한 검수를 거쳐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남긴 모든 출간 및 미출간 원고를 원문 그대로 펴내는 MEGA가 본격적으로 출간되기 시작했다. 모두 114권으로 이루어질 계획인데, 마르크스 경제 사상의 형성 과정을 밝혀내는 데 이미 굉장한 성과를 이뤘다고 평가받는다. 이번에 번역되어 출간된 1861~1863년의 경제학 초고는 〈자본론〉의 첫 번째 초고와 〈잉여가치 학설사〉의 내용을 담고 있다. 여기에서 특히 주목할 부분은 ‘포섭’의 개념으로, 잉여가치의 원천이 자본의 순환과정에 형식적으로 혹은 실질적으로 ‘산 노동’이 잡혀들어가는 것에 있다는 마르크스의 핵심 사상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에 대한 결정적 열쇠를 제공하고 있다. 막상 〈자본론〉 1권에서는 완전히 빠져 있어 전혀 언급되지 않지만, 헤겔이나 셸링의 철학에서 가져온 이 개념은 발전시키기에 따라 공장이라는 좁은 틀을 벗어 식민지 노예 농장이나 21세기 플랫폼 노동 같은 다양한 경제 형태에 마르크스 경제 사상이 폭넓게 적용될 수 있는 가능성을 담고 있다. 때마침 최근 번역되어 나온 철학자 엔리케 두셀의 저작 〈미지의 마르크스를 향하여〉(갈무리)가 바로 이 점을 논의하고 있으니 함께 읽으면 더욱 좋을 것이다.

거대한 사상가였던 막스 베버는 자주 왜곡된 이미지로 소비되었다. ⓒWikipedia

막스 베버는 특히 한국에서 실로 불행한 운명을 겪어야 했다. 1930년대 일본의 제국대학들에서는 베버의 사상을 마르크스주의를 억누를 수 있는 일종의 대항마처럼 만들어 선전 도구로 사용했고, 당시 조선의 지식인 다수도 “자본주의야말로 금욕적 개신교도들의 근면이 빚어낸 위대한 성취”라고 주장한 자본주의 찬미자라는 그릇된 이미지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말았다. 해방 후 미국식 사회학이 들어오면서 함께 들어온 또 다른 베버의 이미지는 관료제, 합리성, 이념형 등의 개념을 앞세운 고루한 고전사회학 이론가이든가, 아니면 그런 개념들이 파편적으로 조합되어 나타난 ‘근대화’라는 또 다른 이데올로기의 대표자 모습이었다. 이에 20세기 초 독일의 ‘문화과학’, 특히 경제학을 (베버는 경제학과 교수였다) 둘러싼 복잡하고 심각하기 짝이 없는 방법론의 대립 속에서 돌파구를 뚫어낸 거대한 사상가이자 엄밀한 과학자로서 베버의 모습은 가려지거나 무시되었다.

이번에 출간된 막스 베버 선집의 첫 두 권은 지금까지 한국에서 가장 무시되어왔던 바로 이 ‘새로운 경제학과 사회과학’의 방법론을 베버가 어떻게 벼려냈는지 소상하게 보여주고 있다. 영역본이 이미 있었지만 워낙 원문이 어렵고 알아야 할 지성사의 배경지식이 많은 데다 번역 또한 난삽해 (2014년에 영역본이 새로 나왔다) 이해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번역자 김덕영 박사는 명확한 번역에 풍부한 역주와 소상한 해제의 글까지 덧붙여, 영역본으로 씨름하던 이들의 고통을 덜어주고 있다.

그렇게 해서 드러나는 베버의 모습은 개신교도와 자본주의 찬미자도, 엉뚱하게 ‘참된 정치가의 길’을 설파하는 약장수도 아니다. 경제현상과 사회현상의 인과관계의 의미를 명확히 하고, 그것을 찾아내는 엄밀하면서도 일관된 방법을 발견하며, 이에 근거해 동서고금의 각종 데이터를 체계적으로 망라해 인간과 사회에 대한 이해의 심화는 물론 의미 있고 효과적인 정책 수립에도 도움을 줄 수 있는 사회과학을 벼려내는 대장장이의 모습이다. 연구해야 할 대상이 무엇인지, 그걸 왜 연구하는지, 그래서 어떤 데이터를 어떤 체계와 틀로 수집하고 또 어떤 관점으로 해석해야 하는지에 대해 아무 생각도 없이 그저 여기저기서 데이터만 산더미처럼 모아 들이밀고서 학문이라 우기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다 정책 문제로 넘어가면 갑자기 정체불명 이념의 포로가 되어 입에 거품 물면서 설교를 늘어놓고 그에 근거한 비현실적 정책을 현실에 강요하기도 한다. 베버는 이런 이들이 사회과학에 발붙이지 못하게 하는 방법을 모색했던 것이다.

‘더럽게 어렵지만’ 그래도 꼭 한 번

이번에 길 출판사가 펴낸 마르크스와 베버의 저작들이 책장에 꽂아놓을 ‘굿즈’가 아니라, 21세기의 현실을 비추기 위해 펼쳐들고 읽어야 할 이유를 여기서 찾을 수 있다. 마르크스가 풀고자 한 문제도, 베버가 해결하려 한 문제도 별로 해결되지 못한 채 고스란히 21세기 사회과학과 경제학으로 내려왔기 때문이다. 21세기의 산업문명은 지구상 어디라 할 것 없이 기후위기와 불평등을 위시해 난마처럼 꼬인 무수한 문제를 안고 있지만, 사회과학과 경제학은 눈물이 날 정도로 한심한 무능력을 노정하고 있을 뿐이다. 미친 듯 팽창하는 지구적 자본주의가 인간과 자연과 사회를 ‘포섭’해 구역질 날 정도의 불평등을 무한히 재생산하는 기제에 대한 설명이 없으니 효과적인 정책도 나오지 않는다. 현실의 문제들은 썩어가고 곪아가건만 엉뚱하게 시장이니 효율성이니 진보·보수니 하는 ‘가치 만빵’의 용어를 휘둘러대든가 숫자와 차트, 표로 점철된 파워포인트로 눈요기하는 일만 사방에서 벌어지고 있다.

막스 베버의 독일어판 선집.

100년도 훨씬 전에 나온 이 두 권의 책이 지금 우리들의 문제에 대한 해법을 담고 있을 리는 만무하다. 베버가 〈직업으로서의 학문〉에서 쓸쓸하게 한탄했듯, 자연과학과 달리 사회과학은 이렇다 할 빛나는 성과를 내기 힘든 학문이다. 하지만 그 운명을 알면서도 빈곤과 불면증, 신경쇠약을 마다 않고 온 인생을 던진 두 사람의 글에서 지금, 여기 문제의 해법에 대한 무수한 영감을 분명히 얻을 수 있다. 솔직히, 정말 더럽게 어려운 책들이다. 하지만 요즘은 사라진 지 오래인 인간 영혼의 불꽃의 끝판을 보여주는 이 두 털보 아저씨의 목소리를 죽기 전에 한 번은 꼭 들어보자. 베토벤 4중주와 바흐 오르간 곡처럼.

홍기빈 (정치경제학자)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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