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략적 침묵'하는 北..갈루치 "대화 재개, 창의적 아이디어 개발해야"

김채린 2021. 8. 19.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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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19일) 통일연구원 주최 화상 세미나에 참석한 로버트 갈루치 미국 조지타운대 석좌교수


"트럼프 행정부의 방정식은 효과적이지 않았다. 이번 경우에는 우리가 좀더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개발해야 한다."

1994년 북·미 '제네바 기본합의'로 북핵 위기를 봉합한 로버트 갈루치 전 미국 국무부 북핵특사가 앞으로의 북핵 대화·협상과 관련해 이같이 당부했습니다.

갈루치 전 특사는 오늘(19일) 오전 통일연구원 주최로 화상으로 열린 한·미 싱크탱크 공동 세미나에 참석해 "북한과 초기 대화를 재개하는 것에 관해서는, 대화 재개로 북한이 어떤 혜택을 얻을 수 있는지 설득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이런 시도가 성공해 북한이 협상 테이블로 돌아오게 되면 어떤 상응조치들이 있어야 하는지 미리 생각해야 할 것"이라며 "(트럼프 때와 달리) 이번에는 좀더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개발하고, 기간별로 어떤 상응조치가 필요한지에 대해 의견을 모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구체적인 방안을 언급하지는 않았습니다.

갈루치 전 특사는 북한이 대화에 나서지 않고 있는 최근 상황을 지켜보면서 과거 북한과의 협상이 생각났다고 말했습니다.

당시 북한 측이 "강대국인 미국에겐 뭔가를 제안해 북한이 다시 협상장으로 돌아오도록 만들 수 있는 기회와 힘이 있는데, 왜 그렇게 하지 않느냐" "왜 미국 쪽에서 원대한 제스처(grand gesture)를 취하지 않느냐"라는 식의 이야기를 했다는 회상입니다. 지금도 북한이 비슷한 태도로 미국의 선제적 조치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는 해석입니다.

갈루치 전 특사는 그러나, 과거에도 지금도 이런 식의 전개는 어려운 게 사실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미국 내에선 역사적으로 "북한이 회담에 동의하는 것만으로 보상을 줘선 안된다(N ever reward the North Koreans for just agreeing to meet)"이라는 관점이 존재해 왔고, 민주당 정부가 대북 협상을 시작하면 공화당으로부터 '너무 순진하다'는 큰 비판에 직면하게 되는 정치적 걸림돌도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그래서 미국 행정부에서는 북한과의 관여를 방어할 만한 근거가 굉장히 많이 필요하다"면서 "완전한 제재 해제가 아니라 하더라도, 북한이 관심을 가질 만한 작은 제스처를 취하는 데도 어려움이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 바이든 측근 자누지 "美 대북정책, 실용적이지만 창의성 부족…대화 재개 더 어려워져"

오늘 세미나에 참석한 프랑크 자누지 맨스필드재단 대표도 유사한 지적을 했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이 북한과 고위급 외교를 재개하게 되면 공화당의 엄청난 비난에 시달리게 될 거라는 전망입니다.

다만 자누지 대표는 "제가 바이든 대통령을 좀 아는데 정치적 제약, 공화당의 비난이나 공격을 대북 관계에 있어 결정적 요소로 보고 있지는 않다고 생각한다"고 여지를 뒀습니다.

자누지 대표는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정책이 실용적이지만 신선하고 창의적이고 과감한 조치가 부족한 게 문제라며, 북한이 협상장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설득할 만한 근거가 더 있어야 한다고 평가했습니다.

또 "네트에 걸려 있는 공을 빼내서 왔다갔다하게" 하길 원한다면 지금까지의 노력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그는 별도의 발제문에서 "바이든 대통령은 성 김 대사에게 (대북특별대표) 겸직을 부여함으로써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충분히 신뢰할 수 없고 외교적으로 달성 가능한 범위에 대해 낙관하지 못하고 있음을 시사했다"거나 "바이든 대통령은 일방적인 제재 완화를 배제했고 문 대통령에게 한국도 UN 제재 조치를 계속 준수해달라고 전했다"고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자누지 대표는 결국 트럼프 행정부 때보다 북한과의 대화 재개가 더 어려워졌다고 본다며 "북한은 비핵화가 아니라 제재 해제나 완화, 관계 정상화, 경제 지원 등에 대한 대화에 관심이 있고 그런 부분을 찾지 않고서는 지금의 상황을 타개하기 어렵다"고 제언했습니다.

■ "중간단계 합의가 현실적" "北 모라토리엄 정치적 인정 필요"

세미나에 참석한 국내 전문가들은 보다 구체적인 제안을 내놨습니다.

최근 국립외교원장에서 퇴임한 김준형 한동대 교수는 "일종의 북한판 '전략적 인내'"가 이어지고 있다고 현 상황을 분석했습니다.

이어 북미 대화에서는 미국이 열쇠를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단계적 접근'을 강조했습니다. 북한 핵 능력의 고도화를 고려하면 '원샷' 비핵화는 비현실적이며, 북한과의 협상 단계를 크게 2~3단계로 줄여 가는 것이 가장 해결 가능성이 크다는 주장입니다.

김 교수는 미국과 이란의 JCPOA가 좋은 중간단계 모델이라고 생각한다면서, "하노이에서의 교환 조건, 즉 영변과 제재 일부(영변 핵시설 폐기와 주요 대북제재 해제를 맞바꾸는 방식)가 '중간단계'라고 본다면 우리가 가야할 지점은 그 실패한 지점이라고 본다. 하노이 회담에서의 교환 조건을 바꾸는 게 가장 현실적"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실사나 검증까지는 못가더라도 하노이 3주년인 내년 2월 베이징 올림픽 때 교환 조건을 서로 약속하는 게 가장 좋은 시나리오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밝혔습니다.

김기정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원장도 오늘 세미나에서 "북한이 핵 모라토리엄을 유지하고 있는 데 대한 정치적 인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또 바이든 대통령이 남북간 대화와 관여, 협력에 대한 지지를 표명한 만큼 북한에 대한 한국과 미국의 공동 관여가 중요하다면서 "체제 안전에 대한 우려를 해소하는 방식, 즉 북한의 생존권을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가 공동 관여의 내용에 포함돼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구체적으로 경제안보에 대한 북한의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 대북 제재의 부분적 완화 등을 생각해 볼 수 있다고 했습니다.

■ "北 전략적 침묵 유지…美 당장의 추가 양보조치 없을 것"

여러 제안에도 불구하고, 북미 대화의 물꼬가 당장 트일 거라고 보는 시각은 드물었습니다.

성기영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책임연구위원은 "북미 관계에 있어 북한은 최대한의 절제된 반응을 보이고 있다"면서 "앞으로도 최소한의 반응과 전략적 침묵 상태를 유지하는 태도는 크게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특히 북한이 한미연합훈련에 공개 반발하며 도발 가능성이 높아졌지만, 성 연구위원은 "한미가 '전략적 도발'이라고 평가할 만한 도발은 자제할 거라고 본다"고 말했습니다.

그 근거로는 ▲북한이 스스로 핵무력 완성을 선언한 이후 핵미사일 실험에 대한 기술적 수요가 전체적으로 감소한 점 ▲경제상황과 코로나19, 수해로 인해 내치에 집중할 필요성이 크다는 점 ▲중국도 북한이 대규모 도발에 나서는 것을 자제할 요인이 있다고 보이는 점을 들었습니다.

성 연구위원은 또 "미국도 과감한 추가 조치보다는 현상유지적인 정책을 선호할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이어 " 북한 핵 포기에 대한 회의적 시각과, 비핵화를 장기적 과제로 유보하면서 이제 북한 핵보유를 인정하고 평화적 관리에 주안점을 둬야 한다는 '군비론적' 접근이 혼재하고 있다"면서 "미국이 단기간 내에 북한의 대화 복귀를 위해 추가적인 양보 조치를 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조심스레 중국의 역할에 주목했습니다.

그는 "중국이 베이징 올림픽을 계기로 남북 간 화해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주도적 역할을 하고자 할 개연성이 있다"면서 "이 경우 한미 양국은 또 한 번 시험대에 오를 수 있고, 사전 정지작업으로 중국이 북중 교류를 재개한다거나 경제지원을 한다거나 하는 조짐들도 주의깊게 관찰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김채린 기자 (dig@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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