與, 국회 상임위에 '언론징벌법' 상정 강행

이슬비 기자 2021. 8. 17.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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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이 17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체회의를 열고 야당 반대 속에 언론중재법 개정안 표결을 시도했다. 국민의힘은 이에 맞서 최장 90일간 법안 처리를 막을 수 있는 안건조정위원회 구성을 요구했다. 하지만, 민주당은 안건조정위원에 열린민주당 김의겸 의원을 포함시켜 야당의 이 같은 시도를 무력화할 방침이다. 민주당은 “19일 이전에 안건조정위 절차를 끝내고 문체위 표결을 거쳐 25일 국회 본회의 통과를 마무리하겠다”고 했다.

1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도종환 위원장이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민주당은 이날 문체위를 열고 이른바 ‘언론징벌법’에 대해 “충분한 논의가 됐다”며 법안 처리를 밀어붙였다. 국민의힘 등 야당은 언론 보도에 최대 5배까지 징벌적 손해배상을 가하는 독소 조항이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 없다”며 안건조정위 구성을 요구했다. 민주당 소속 도종환 문체위원장은 “여야는 18일 12시까지 안건조정위 명단을 제출해 달라”고 했다. 안건조정위는 여야 3대3 동수로 구성돼 최장 90일간 법안을 숙려할 수 있도록 한 제도지만, 위원 3분의 2(4명) 찬성으로 언제든 법안을 통과시킬 수 있다. 김의겸 의원이 ‘야당 몫’으로 들어가게 되면 민주당은 이르면 18일 곧바로 표결을 시도할 것으로 예상된다. 도 위원장은 “안건조정위가 구성되는 대로 18일 회의를 진행하겠다”고 했다.

이런 가운데 문재인 대통령은 창립 57주년을 맞은 한국기자협회에 보낸 축하 메시지에서 “언론이 시민을 위해 존재하는 한 언론자유는 누구도 흔들 수 없다”라고 했다.

민주당은 오는 25일 본회의에서 법안을 처리하는 게 목표다. 민주당 문체위 간사 박정 의원은 이날 문체위 회의에서 “언론중재법은 속도를 내서 해결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민주당 위원들은 17일에도 “이제 표결로 처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은 정회를 요청한 뒤 청와대 앞에서 긴급 의원총회를 열어 “집권 여당의 횡포”라고 반발했다. 이후 안건조정위 구성을 요구했다. 국민의힘 이달곤 간사는 “여당안을 만드는 데 깊이 관여한 김의겸 의원은 야당이 아닌 여당 조정위원으로 지정되는 게 맞는다”고 했다. 하지만 민주당 박정 간사는 “(국회선진화법 이후) 총 15번 안건조정위에서 한 번도 비교섭단체 위원이 지정되지 않은 적이 없었다”고 했다. 이 때문에 18일 안건조정위원 구성을 놓고도 진통이 예상된다.

민주당은 언론 및 시민단체의 반발을 고려해 이날 자체 수정안을 제시했다. 과잉 입법 지적을 받아온 징벌적 손해배상 액수의 하한선은 없애겠다고 했지만 최대 5배의 징벌적 손해배상 조항 자체는 그대로 뒀다. 이 경우 허위 보도가 고의 또는 중과실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입증할 책임도 언론사가 지도록 했다. 일반적으로 손해배상 소송의 경우 고의 및 중과실 여부 입증 책임은 손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지도록 돼있는데, 이 법안은 반대로 돼있는 것이다.

“與, 권력비판을 惡으로 규정” 언론학회 토론회서 쏟아진 비판

“권력에 대한 비판을 ‘악(惡)’으로 규정한 법이다.” “민주당은 오해라는데, 우리 모두 집단 환각에 빠졌다는 건가.”

17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한국언론학회 토론회에선 더불어민주당이 추진하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에 대한 전문가들의 비판이 쏟아졌다. 참석자들은 민주당의 법안이 “언론 제도 자체의 근거를 허무는 위험한 법”이라는 점을 집중적으로 지적했다. 특히 손해액의 최대 5배까지 언론이 물어줘야 하는 근거로 규정하고 있는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의 범위, ‘허위·조작 보도’ 규정의 모호함 등에 대한 비판이 이어졌다.

17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한국언론학회 주최로 열린‘언론중재법 개정안에 대한 현안 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이 발언하고 있다. /장련성 기자

◊”기사의 의도 따져... 권력 비판 막겠다는 말”

심석태 세명대 교수는 “법안에서 처벌 대상으로 삼고 있는 ‘허위·조작 보도’라는 말에는 오보도 포함된다”면서 “이는 언론 제도 자체를 부정하는 매우 위험한 발상”이라고 했다.

또 심 교수는 “이는 결국 언론한테 보도자료만 베끼라는 말인데, 그러면 보도자료로 발표되는 것은 다 사실이냐”면서 “이 법은 고쳐서 될 것도 아니고 (통과되면) 위헌 판정 받고 결국 다시 만들어야 할 것”이라고 했다. 미국의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우리 법에 도입하는 것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했다. 그는 “미국에서는 (우리나라와 달리) 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도 없고, 공인은 명예훼손 그 자체를 인정해주지 않는다”고 했다.

정은령 SNU팩트체크센터장은 “법안의 규제 대상이 (입법 과정에서) 허위·조작 ‘정보’가 아니라 허위·조작 ‘보도’로 슬며시 바뀌면서, 정작 국민이 가짜 뉴스라고 여기는 인터넷 커뮤니티나 유튜브 영상은 포함되지 않고, 오로지 언론중재법이 정한 언론만 포함하게 됐다”면서 “특히 측정이 어려운 ‘의도성’을 법률에 명시했는데, 이는 결국 특정 보도를 막겠다는 것이고, 탐사 보도와 권력에 대한 비판을 막겠다는 것”이라고 했다.

◊”정치 일정에 맞춘 입법 부인 못 해”

민주당이 야당과 언론단체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법안을 밀어붙이는 행태에 대한 지적도 이어졌다. 김상호 경북대 교수는 “민주당은 (법안이 잘못되었다고 지적하면) 계속 ‘오해다, 법안을 잘못 읽었다’고 하는데, 여기 오신 분들이 모두 오해한다면 우리가 환각에 빠져 있나, 과연 집단적으로 이렇게 오해할 수도 있냐”라고 했다.

김 교수는 “기자가 진실일 것으로 믿고 열심히 취재했으나, 취재가 부족했거나 능력의 한계로 오보가 됐을 때는 현재 법원도 면책을 해주는데, 이를 부인한다면 언론은 더 이상 취재할 필요가 없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특히 “악의나 고의를 갖고 허위·조작 보도를 하는 사람은 사법적으로 다뤄야 할 사기꾼이지, 언론중재법에서 다뤄야 할 ‘언론인’이 아닌데도 이런 규정이 언론중재법에 왜 들어가야 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고 했다.

심영섭 경희사이버대 교수는 “실제 피해의 대부분은 1인 미디어와 유사 미디어 사업자에 의해 발생하는데, (입법 과정에서) 정작 그런 사업자들의 유사 언론 행위를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는 없었다”며 “정치 일정에 맞춘 입법이라는 주장에는 동의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용성 한서대 교수는 “여러 비판 속에서도 5배 배상 제도를 도입하는 명분이 ‘시민의 언론 피해 구제에 도움이 된다’는 것일 텐데, 정작 법안의 내용을 보면 시민들한테 뭐가 도움이 될지는 의문”이라고 했다.

토론회 사회를 맡은 배정근 숙명여대 교수도 “이 법안의 고의중과실 규정에 따르면, 이른바 ‘펜타곤 페이퍼’(1970년대 미국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의 미국 국방성 비밀 문서 보도)는 미국의 군사보호법을 위반한 것이고, 최순실의 실체를 파악한 보도도 법률 위반에 해당해 제대로 보도할 수 없게 된다”며 “이런 법률 하에서는 언론 활동 자체가 위축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반면 채영길 한국외대 교수는 “취재 과정에서 법률을 위반했다고 해서 언론의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보고 처벌하는 조항은 삭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서도 “좋은 취지인 만큼 한계에도 불구하고 법안이 통과되어야 한다고 말씀드린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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