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범도 장군 유해 '의미있는 귀환'

2021. 8. 17.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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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세윤 성균관대 동아시아역사연구소 수석연구원

제76주년 광복절인 8월 15일 밤에 저명한 독립군 사령관 홍범도 장군의 유해가 서거 78년 만에 고국의 품으로 돌아왔다. 8월 16일부터 17일까지 이틀동안 국립 대전현충원(현충문)에 ‘국민분향소’가 설치돼 국민 누구나 사전 예약없이 선착순으로 직접 참배할 수 있는데, 16일 하루동안 많은 국민들이 참배했다. 홍 장군의 유해는 오는 8월 18일 오전 대전현충원 제3묘역에 안장될 예정이다. 홍범도 장군 유해 봉환과 현충원 안장을 환영하면서, 그 의미와 오늘의 시사점을 간단히 검토해보고자 한다.  

홍범도 장군은 우리나라가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하기 직전인 1890년대 말부터 1920년대 초반까지 의병 및 독립군 부대를 이끌고 20여 년이 넘는 오랜 기간을 줄기차게 일제 침략세력과 싸웠던 대표적 무장투쟁가였다. 일본군 스스로가 ‘날으는 장군(飛將軍)’으로 부르기도 했다. 그처럼 사심없이 조국과 민족의 독립과 해방을 위해 국내는 물론 중국 동북지역(만주), 러시아령 연해주 등지를 주름잡으며 초지일관해서 독립전쟁을 주도한 인물도 별로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다른 인물들과 달리 대한민국과 북한, 중국 연변지역, 그리고 현재 러시아·중앙아시아의 한인들 모두에게 높이 평가되고 지속적으로 추앙을 받고 있는 것이다. 특히 그는 독립운동 과정에서 아내와 두 아들을 모두 잃었다. 그는 진정 애국자였고, 포용력있는 참된 지도자였다. 

홍범도 장군의 애국심과 연변지역 한인 동포들과의 깊은 유대관계에 대해 일본 정보 당국은 매우 감탄스런 기록을 남겼다. 홍범도 장군이 1920년 6월 초 봉오동전투를 눈앞에 두고 부하 2명과 함께 부근의 산봉우리에 올라 멀리 보이는 조국 내륙지방을 보며 “내 몇 년만에 고국산천을 바라보는 것이냐”하고 긴 한숨을 쉬며 눈물을 흘렸다는 보고가 있다. 이 비밀보고는 “홍범도의 애국심의 깊이에는 우리도 경복(敬服)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으며, 일반 한인 동포들이 홍 장군을 숭배하는 것이 매우 심하고, 북한 및 연변(간도)지방 지리에 밝기가 마치 신(神)과 같다고 보고했다.    

대한독립군 대장 홍범도 이름으로 1919년 11월 발표된 유고문(독립기념관 소장).


홍범도 장군의 대한독립군을 후원했던 간도 국민회장 구춘선(具春先) 역시 그의 인품과 사심없는 헌신, 나라사랑에 대해 극찬했다. “홍범도 장군의 마음속에는 오직 나라가 있을 뿐이고, 자기 몸과 가정은 돌보지 않고 있습니다. 온갖 정성을 다하고 마음과 몸을 다하여 독립운동에 열성을 다하여 죽은 후에야 그칠 정도로 헌신하고 있으니, 우리 동포 모두가 숭배하고 믿지 않는 자가 없을 지경입니다.” 이러한 구춘선의 평가 내용을 우리는 정말 주목하고, 그 의미와 교훈을 깊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1942년 중앙아시아 크즐오르다에서 공연된 연극 ‘홍범도’의 한 장면.


독립전쟁 과정에서 홍범도 장군은 늘 이렇게 말했다. “우리들 의로운 독립군 부대들은 일의 성공과 실패를 따지지 않고 오직 죽음이 있을 뿐이다. 나는 최후의 한 사람까지 평소의 의지 관철에 분투함으로써 우리 한민족 독립을 최후까지 힘을 다하여 외쳐, 죽은 뒤에야 그쳐야 한다는 것을 항상 부하에게 훈시하고 있다.” 참으로 대단한 독립군의 기개와 각오가 아닐 수 없다. 오늘날 우리에게 참된 자주와 독립의 가치를 깨우쳐준다고 하겠다.

홍범도 장군 유해 봉환의 참된 의미는 단순히 독립투사의 유해를 봉환했다는 그 자체에 있지 않다고 본다. 홍범도 장군과 독립운동가, 민족해방운동가들이 꿈꾸고 이루고자 했던 참된 가치와 이상을 주목해야 한다. 즉 독립, 자유와 정의, 평등, 세계 평화와 인류 공영 등 공화(共和)의 가치와 공화제, 이를 뒷받침하는 삼권분립제도와 민주주의, 그리고 국민(민중)이 스스로의 운명을 개척하는데 앞장서고, 공동체와 사회 발전에 기여하는 헌신과 희생정신 등을 성찰할 필요가 있다.

러시아 연해주 우수리스크 고려인문화센터에 전시 중인 홍범도 편지(1910년 3월 28일 작성). 장세윤 2019년 7월 촬영.


홍 장군 유해 봉환을 계기로 당장은 어려울 수도 있지만 북한과 공동 추모행사와 학술회의·학술사업, 공동 조사·연구, 관련 유적(지) 조사·연구 등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북한 당국은 홍 장군 유해의 한국 송환을 지속적으로 반대해왔기 때문이다. 추후 중앙아시아와 러시아(연해주지역 등)의 고려인 동포사회 등과 연계한 여러 사업을 추진해 해외 동포사회와의 연대를 강화할 필요도 있다. 또한 이번 홍 장군 유해 봉환과 훈장 (상향)추서 등을 계기로 부당하게 저평가된 독립유공자나 독립운동 계열·단체는 없는지 재검토도 필요하다. 중장기적으로 남북화해와 민족통일을 모색하는 상황에서 인사들의 계열을 떠나 조사·연구와 발굴, 포상 확대도 긴요하다고 본다.     

봉오동전투의 승전 소식을 보도한 독립신문 기사(1920년 6월 22일자).


오늘날 홍 장군과 같은 독립운동 선열들의 이상과 실천과정, 그들의 정신과 행적, 관련 자료 등을 잊지 않고 기억하기, 제대로 연구하고 교육하기, 그리고 널리 이야기하고(Story- Telling) 계승하기가 절실한 실정이다. 희생을 무릅쓴 독립운동가들이 실현하고자 했던 가치와 이념, 그 의미를 오늘에 되살리고, 미래의 가치체계와 새로운 꿈, 이상으로 구체화할 수 있을 때 이번 봉환의 진정한 의의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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