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진 향한 온라인 스토킹, 정작 '스토킹 처벌법'으로 고소 못했다

박고은 2021. 8. 17.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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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킹 처벌법' 10월 시행되지만 무용지물
SNS 사칭, 개인정보·이미지 조작도 처벌 못해
여자배구 국가대표 김희진 선수 소송 계기로
온라인 스토킹 포괄적 처벌하는 법개정 추진
게티이미지뱅크
5년이 넘는 기간 동안 괴롭힘을 넘어
집착에 가까운 온라인 스토킹을 당했다.

도쿄올림픽 여자배구 4강 주역인 국가대표 김희진 선수(30·IBK기업은행) 법률대리인인 김진우 변호사(법무법인 주원)는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장기간 지속된 온라인 스토킹을 법적 대응에 나선 주된 이유로 꼽았다. 앞서 지난 14일 김 선수 쪽은 다수의 가해자로부터 악의적 명예훼손과 협박, 스토킹 등에 시달려왔다며 “일체의 선처나 합의 없는 법적 책임을 묻겠다”며 가해자들에 대한 형사고소 방침을 밝혔다.

김 변호사에 따르면 가해자들은 △지속적 모욕·협박 △SNS 계정을 사칭해 김 선수 지인들에게 접근 △조작·합성한 이미지 유포 등을 일삼았다고 한다. 김 선수 쪽은 가해자들을 스토킹처벌법이 아닌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 형법상 협박·강요 혐의 등으로 고소하겠다고 했다. 지난 4월 스토킹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스토킹처벌법)이 제정됐지만, 이 법은 6개월 경과 규정에 따라 오는 10월부터 시행된다.

막상 스토킹처벌법이 시행된다고 하더라도 김 선수가 당한 것과 같은 온라인 스토킹을 처벌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법안 발의 22년 만에 만들어진 스토킹처벌법은 피해자 본인이나 가족 등을 직접 따라다니는 전통적 유형의 스토킹 외에도 정보통신기술 변화를 반영해 온라인 스토킹도 처벌할 수 있는 길을 일부 열어놨다. 다만 피해자가 원치 않는 글과 음향, 이미지를 당사자와 가족에게 전송하는 행위 정도만 온라인 스토킹으로 규정하고 있다.

김희진이 9일 인천국제공항 입국장에서 열린 2020 도쿄올림픽 대한민국 선수단 환영식이 끝난 뒤 손을 흔들고 있다. 영종도/연합뉴스

김 선수 사례처럼 SNS 등에 올라온 개인정보와 이미지를 조작해 퍼뜨리는 행위 등은 스토킹처벌법으로 처벌할 수 없다. 이러한 행위는 현행 정보통신망법으로 처벌 가능하지만 처벌 수위가 1년 이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 벌금으로 낮다.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을 물릴 수 있는 스토킹처벌법에 견줘 처벌 수위가 한참 낮다. 김 변호사는 “온라인상이고 직접적인 협박이나 강요가 없더라도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한 사람을 집요하게 괴롭히는 행위는 스토킹으로 인정돼야 한다. 온라인 스토킹 가해자를 실효성 있게 규제할 방안을 제도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스토킹처벌법이 국회를 통과할 때도 여성계와 전문가들 사이에서 보완 입법 요구가 끊이지 않았다. 김정연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스토킹 유형을 오프라인에만 한정할 수 없는 상황인데도 제정된 스토킹처벌법에선 스토킹 개념을 보수적으로 규정했다”고 했다. 송란희 한국여성의전화 대표는 “스토킹처벌법이 제정될 때부터 (온라인 스토킹 행위에 대한) 포괄 규정이 꼭 들어가야 한다고 지적해왔다. ‘기타 외 스토킹에 준하는 행위’ ‘기타 생활영역의 자유를 침해하는 행위’ 등 포괄 규정을 넣어야 실효성 있는 법안이 될 것”이라고 했다.

온라인 스토킹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한국여성정치연구소가 지난 3월 국회 여성가족위원회에 제출한 <온라인 스토킹의 실태 및 대응 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20대 여성 응답자 903명 가운데 715명(79.2%)이 온라인 스토킹을 경험해본 적 있다고 답했다. 피해 유형은 △개인정보 알아내 저장하기 △사생활 캐내기 △원치 않는 글·이미지 등 전송 △허락하지 않은 용도로 개인정보 사용 △개인정보 유포 △허위정보 임의사용 △개인정보 이용해 당사자 사칭 △다른 범죄에 개인정보 이용 △개인정보와 함께 성적 모욕 등 허위정보 유포 △개인정보 유포해 제3자 범행 부추김 등 다양했다.

김정연 부연구위원은 “온라인 스토킹은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다양한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 SNS 등에서 취득한 개인정보를 다른 범죄에 이용하거나, 당사자를 사칭하는 등 또 다른 범죄의 연결고리가 될 수도 있다. 온라인 스토킹에 대한 심각성을 인지하고 이를 보완할 입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국회에선 스토킹처벌법 개정안이 발의된 상태다. 김상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달 29일 온라인 스토킹 피해자 보호법안(스토킹처벌법 개정안,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개정안은 정보통신망을 이용해 불안감 또는 공포심을 일으키는 타인의 개인정보 배포 또는 게시 행위를 스토킹처벌법에 따라 3년 이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 벌금으로 처벌하도록 했다. 김 의원은 “온라인 스토킹은 특성상 가해자를 명확히 알 수 없으며 피해 확산 속도가 매우 빠르고 영구적이기 때문에 피해자들이 굉장한 공포를 느낀다. 더이상 신고조차 못 하는 스토킹 피해자들이 생기지 않도록 하루빨리 개정안이 통과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박고은 기자 eu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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