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령도 덮은 '중국 쓰레기'.. 해병대까지 나서 치운다
지난 11일 인천항에서 쾌속선을 타고 3시간 40분을 들어간 백령도 사곶해수욕장. 코로나 확산세로 조기 폐장한 모래사장엔 파라솔 대신 폐기물 포대 자루가 곳곳에 쌓여 있었다. 해안가엔 스티로폼과 페트병이 나뒹굴었다. 본지 기자가 해변을 청소하러 나온 주민들과 함께 눈에 보이는 대로 쓰레기를 주웠다. 가져간 20L짜리 봉투가 5분도 안돼 가득 찼다. 가장 많은 건 각종 플라스틱 병. 스티로폼 부표와 통조림 캔, 유리병, 라면 봉지도 있었다. 하나씩 들여다보니 ‘훙타산(紅塔山)’이라고 쓰인 담뱃갑, ‘빙탕쉐리(冰糖雪梨)’ 음료 병 등 포장지에 중국어가 적힌 쓰레기가 많았다. 34개 쓰레기 가운데 라벨 등으로 국적을 알 수 있는 24개(70.5%) 쓰레기 모두가 중국산이었다.
국토 가장 서쪽 섬 백령도가 밀려드는 중국산 쓰레기로 몸살을 앓고 있다. 산둥반도와 약 200㎞ 떨어진 백령도는 몽골·중국발(發) 황사와 미세 먼지가 국내로 불어올 때 가장 먼저 농도가 높아지는 곳이다. 이날 돌아본 백령도 해안은 미세 먼지뿐 아니라 중국발 쓰레기도 속수무책으로 받아내고 있었다.
◇중국발 쓰레기와의 전쟁
“치워도 치워도 끝이 없어.” 쓰레기를 주워 담던 백령도 주민 강영자(58)씨가 한숨을 쉬었다. 강씨는 “밀물이 들어오면 쓰레기도 다시 밀려와 청소해도 말짱 도루묵이 된다”고 했다. 황당한 쓰레기도 발견된다. 해상안전요원 태모(20)씨는 “지난달 웬 책가방이 밀려 와 열어봤더니 중국 교과서가 들어있었다”고 했다. 중국어가 적힌 페트병에서 소변이나 고약한 냄새가 나는 화학약품이 쏟아져 나오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주민 98명이 정부 지원을 받아 주 2~3회 청소하는데도 감당이 어려워 군까지 나섰다. 백령도에 주둔한 해병대 6여단 소속 장병 180여 명은 지난달 주요 해안에서 정화 활동을 벌였다. 해병대 관계자는 “사흘간 해안에서 주운 쓰레기가 8t에 달했다”며 “부피가 커서 2.5t 트럭으로 30번을 날랐다”고 했다. 섬 전체가 쓰레기와 전쟁을 치르는 셈이다.
사곶해변에서 걸어서 20분 정도 떨어진 해안 쓰레기 집하장엔 큼직한 마대 자루 수백 개가 쌓여 있었다. 모아 놓은 쓰레기는 1년에 한두 번씩 배가 육지로 실어 나른다. 백령도와 대청·소청도 3개 섬에서 반출된 해안 쓰레기는 2018년 144t에서 2019년 162t, 2020년 229t으로 해마다 늘고 있다. 해양환경정보포털에 따르면 2018년부터 2021년 상반기까지 백령도 해안 쓰레기 중 외국에서 온 쓰레기가 70% 수준이다. 일본이나 북한에서 온 것도 간혹 있지만 대부분(95%)은 황하·양쯔강 하류나 중국 어선에서 버려진 쓰레기가 해류와 바람을 타고 온 것이다.
◇미세 먼지처럼... 동쪽으로 흐르는 바다 쓰레기
지난 4월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에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중국은 연간 7만700t의 플라스틱을 바다로 배출한다. 중국의 황해 연안은 이런 플라스틱 쓰레기를 주로 배출하는 곳 가운데 하나다. 황해로 나온 쓰레기 일부는 다시 우리나라 서·남해안으로 유입된다. 해양수산부 관계자는 “해상의 부유 쓰레기는 미세 먼지처럼 중국에서 우리나라로, 우리나라에서 일본으로 흘러가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바닷물에 뜨는 가벼운 플라스틱이 편서풍과 그에 따른 표층 해류를 타고 동남쪽 방향으로 떠내려 오는 것이다. 실제 지난달 미 항공우주국(NASA)의 기상 관측용 인공위성에 양쯔강 하류의 미세 플라스틱(직경 5㎜ 미만)이 해류에 실려 한국과 일본으로 흘러드는 장면이 포착됐다.
백령도에는 북방한계선(NLL) 인근에서 조업하는 불법 중국 어선에서 투기한 쓰레기도 상당수 밀려오는 것으로 당국은 파악하고 있다. 한·중 어업 협정선을 침범해 꽃게·새우 어장을 빼앗는 것도 모자라 쓰레기까지 잔뜩 버리고 가는 것이다. 정부는 중국 측에 해양 쓰레기 피해 현황을 알리며 협의를 요청하고 있으나 실질적인 조처가 나오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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