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양 공개는 부모가 결정..아이가 거짓 스토리 꾸미지 않아야죠"

한겨레 2021. 8. 16.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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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양 교육' 강조하는 정은주씨 인터뷰
<그렇게 가족이 된다>의 저자 정은주씨는 “공교육에서 입양 교육이 활성화되면 이혼·재혼·조손·다문화 가정 등 다양한 형태의 가족들이 목소리를 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은주씨 제공

공개 입양을 했던 한 입양 부모는 자신의 자녀가 “너도 개나 고양이처럼 버려진 거야? 불쌍하다”는 소리를 들었다는 걸 알고 교감선생님을 찾아가 입양 교육의 필요성을 호소했다. 그러나 교감선생님은 “굳이 아이들에게 그런 이야기를 해서 놀림당할 필요가 있나요?”라며 거절했다. 부모는 “입양 교육은 우리 지역 아이들이 다양한 가족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라며 교감선생님을 설득했지만 그 의견은 끝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핏줄신화를 넘어 또 다른 가족을 상상하며’라는 부제를 단 <그렇게 가족이 된다>(민들레 펴냄)의 저자이자 교사 출신인 정은주씨는 보육원 자원봉사를 하면서 만난 아들을 입양한 뒤 아들의 초등학교를 찾아가 입양 교육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학교에도 아이의 입양 사실을 알렸다. 지금 아들은 스스로 필요에 따라서 자신의 입양 사실을 자연스럽게 밝히는 청소년이 됐다. 지난 13일 정씨를 만나 “아이에게 입양을 밝히는 게 중요한 이유가 무엇인지”부터 물었다.

그는 “부모와 아이의 정신건강을 위해서”라고 답했다. “아이의 가장 기본적인 출발점을 아이에게 공개하지 않는다면 꾸민 스토리가 들어가야 하는데 거짓된 스토리를 만들어서 아이에게 전하는 부모의 마음은 어떨 것이며,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 없기 때문에 나중에 입양 사실을 알게 된 아이의 마음은 또 어떻겠냐”는 거다. 하지만 더 근본적인 이유는 “기초적인 나의 역사를 내가 알아야 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기 때문에 아이에게 입양 사실을 공개할지 말지는 고민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렇다면 입양 공개의 범위는 어디까지여야 할까? “아이가 입양을 바라보는 시선이 일그러지지 않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아이가 거짓말을 하는 상황, 부모가 거짓을 만드는 상황이 안 되게끔 공개를 하면 된다”고 답했다. “누군가는 ‘이혼했다’ ‘재혼했다’ 등도 얘기하고 다니지 않는 것처럼 입양도 얘기할 필요가 없다고 하는데, 이혼이든 재혼이든 얘기할 필요가 있을 때는 거짓말을 할 필요 없이 사실을 얘기하듯 입양도 그런 것”이라고 덧붙였다.

일부에선 입양 공개의 선택권을 아이에게 줘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여기에 대해 그는 “아이를 어떻게 교육할지에 대한 큰 그림을 그리고 세밀한 설계를 하는 것은 부모의 책임이고 역할인데, 입양 공개에 대한 결정권을 아이에게 맡긴다는 것은 너를 어떻게 교육할지를 네가 결정하라는 것과 같은 책임 회피라고 본다”며 “아이가 거짓에 휩싸여서 자기 히스토리를 꾸미지 않아도 되게끔, 당당한 성인으로 성장하게 하는 선택은 당연히 부모가 해야 된다”고 말했다. 게다가 초등학교 때는 입양 사실을 숨기기 위해선 촘촘하게 여러 세트의 거짓말을 준비해야 한다. 임신·출산·가족관계를 다루는 교과과정에서 태몽을 알아 오라든가, 배 속에 있을 때 초음파 사진을 가져오라든가 등의 숙제가 있기 때문이다. 다만, 중학교로 넘어가게 되면 학교에 굳이 입양 사실을 밝힐 일이 없기 때문에, 그때부터는 누구에게 공개하고 공개하지 않을지에 대해선 아이에게 결정권을 넘겨도 된다고 한다.

한편, 입양 공개로 인해 학교에서 친구들에게 놀림받는 일이 생기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부모가 혹시 입양에 대해서 이중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면, 아이가 놀림받게 된 걸 알게 됐을 때 아이를 붙들고 같이 울게 된다”고 말했다. 즉 아이에게는 ‘입양은 부끄러운 게 아니니 당당하라’고 가르치면서도 자신의 마음속 깊이에는 ‘입양된 자녀가 불쌍하고 생부모가 문제가 있다’ 등의 편견이 있을 때 세상의 벽에 부닥치면 당황한다는 거다. 입양에 대한 편견이 전혀 없다면 “친구들이 몰라서 그렇게 행동하니까 우리가 입양에 대해서 제대로 알려주자는 태도를 가지고 자녀와 함께 그 아이들의 행동을 교정해주면 되는 것으로 나아가면 된다”고 말했다.

입양 부모가 각개격파로 입양에 대한 편견과 싸우지 않아도 되게끔 공교육에서 입양 교육을 제도화할 순 없는 것일까? “제주도에서는 2018년 반편견 입양 교육을 지원하는 조례가 제정되어 학교에서 입양 교육을 활성화할 수 있는 바탕이 됐다”며 “입양 교육이 활성화되면 공고한 혈연주의 문화에 균열을 내면서 이혼·재혼·사별·조손·다문화 가족 등 다양한 형태의 가족들도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렇게 가족이 된다>는 저자뿐 아니라 주변의 평범한 시민들이 어떻게 입양을 만나 가족이 되어가는지 그 과정을 세밀하게 그리고 있다. 입양 가정뿐만 아니라 베이비박스와 보육원에서 자라는 아이들, 그룹홈, 해외 입양, 위탁가정 등을 직접 취재해 ‘입양’을 둘러싼 다양한 관계자들의 육성을 생생하게 들을 수 있는 것도 이 책의 미덕이다. 아이들과 함께 나누면 좋은 입양에 대한 그림책과 영화·드라마에 대한 정보도 유용한 팁이다. 책은 크라우드펀딩으로 시민들의 후원을 받아 제작됐으며, 유튜브에서 ‘그렇게 가족이 된다 출간 기념 북토크’를 검색하면 작가와 다른 입양 부모들이 함께 나누는 대화를 만나볼 수 있다. 김아리 객원기자 a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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