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에는 의사선생님·밤에는 작가.."의학소설이 저의 소명이었네요"

김유태 2021. 8. 16.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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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 출간한 김유명 작가
그리셤·사라마구 독학하며
의학소설 꾸준히 집필
"얼굴, 우리의 자아와 같아
하지만 정작 영혼을 잊어"
첫 소설 영화 제작 예정도
8년 전, 소설가 김유명(사진)은 불현듯 다가온 어떤 계시처럼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서울대 의과대학 출신으로 인턴·레지던트를 거쳐 12년 전 강남역 한복판에 성형외과를 개원한 그의 삶은 탄탄대로, 성공가도를 달렸다.

그러던 어느 날, 원장실에서 혼자 마취약 병을 옮기던 그는 '약병이 깨지면 어떻게 될까' 하는 상상이 들었다. 전신 흡입마취제가 바닥에 고이면 호흡근 마비로 사망할 수도 있는 순간이었다. 그때 깨달았다. '이대로 살아도 될까. 내가 남겨야 할 것은 무엇일까.'

내면의 고민이 깊어진 의사는 두 번째 삶으로 소설을 택했다. '낮엔 성형외과 원장님, 밤엔 글쓰기'라는 이중의 삶을 사는 그가 최근 두 번째 소설 '얼굴'을 출간했다. 첫 소설 '마취'가 호평을 받으며 영화로 제작될 예정인 와중에 새 작품을 출간한 것. 막 환자를 만나고 원장실로 들어온 그를 전화로 만났다.

"생각이 쌓이고 쌓이다 점화돼 폭발한 것 같았어요. 이번 소설의 주제는 '삶의 성형'입니다."

소설 '얼굴'은 어느 날 기상과 동시에 불안을 느낀 성형외과 원장 P의 이야기다. P원장을 찾아온 '환자'들은 모두 새로운 삶을 희구한다. P는 '더 예뻐지고 더 멋져 보이려는' 이유가 아닌, 자기 자신을 누구도 알아보지 못하는 익명의 세계로 잠입시키려는 사람들의 욕망을 대면한다.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소설을 읽으면 외면과 욕망을 고민하게 된다.

"의사로 임하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남들이 알아보지 못하게 얼굴을 수술하려는 사람은 없을까 하는 생각이었죠. 사람은 '신체와 마음과 영혼'의 세 부분으로 구성된 존재잖아요? 신체와 마음의 번잡한 거래에서 다들 '영혼의 존재'를 잊고 사는 것 같아요."

김 원장의 첫 소설인 2018년작 '마취'는 영화로 제작된다. H영화사가 이미 판권을 사간 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플랫폼과 제작을 협의하고 있다. 전신마취제 부작용을 둘러싼 의료사고를 소재로 삼은 소설 '마취', 삶의 변화를 욕망하는 소설 '얼굴' 모두 김 원장의 의학적 경험이 담겼다.

"환자들과의 만남은 소설을 쓰는 동인이지만 전부 허구입니다. 여러 인물의 특성을 합쳐 가상 인물을 재구성해요. 처음 쓴 소설이 감사하게도 영화로 만들어집니다. 처음 경험하는지라 원작자로서 기다려집니다.(웃음)"

김 원장은 누군가에게 소설을 배운 적 없다. 미국 작가 존 그리셤의 '그래서 그들은 바다로 갔다', 포르투갈 작가 조제 사라마구의 '눈먼 자들의 도시'에 밑줄을 그으며 홀로 구조와 문장을 분석했다. 그래서인지 그의 작품 '마취'와 '얼굴'도 독학한 두 소설처럼 첫 장면이 강렬하다.

"첫 장면이 재미없으면 독자들은 바로 포기하거든요. 일부러 긴박한 상황 속으로 주인공을 던져 넣습니다. 그리셤과 사라마구 작품에선 배경 묘사와 사건 서술의 비율, 현재시제와 과거시제의 비율 등을 알아보려 했습니다."

그리셤의 본업은 변호사였고 사라마구도 젊은 시절 용접공으로 일했다고 전해진다. 그도 언젠가 전업작가로 삶의 항로를 수정할 가능성은 없을까.

"타인의 신체, 나아가 마음까지 바꿔주는 의업은 제게 유의미하고 보람 있는 일입니다. 제게 의사와 소설가는 길항하는 관계 같아요. 사실 학창 시절 적성검사 결과는 '문과'였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의학소설을 쓰는 작가가 제 소명이지 않았나 싶어요."

[김유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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