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희망은 4대보험 순?..저소득 청년 외면한 청년희망통장
“4대 보험 없으면 올해는 (대전 청년희망통장) 가입이 힘드시고요.
내년에도 모집하니까 4대 보험 적용 사업장에 취직해서 그때 가입하세요.”
4대 보험을 적용받지 못하고 있는 노동자인데 대전청년희망통장에 신청할 수 있냐는 질문에 대해 대전일자리경제진흥원 직원은 이같이 대답해줬습니다. 진흥원 직원은 이어 4대 보험 적용 기준을 대전시가 정했으니 시청에 문의하라고 덧붙였습니다.
대전시에 전화를 걸어봤습니다.
대전시 담당 공무원은 “ 저소득 청년도 4대 보험에 다 들어가 있습니다. 저희가 4년째 사업을 하고 있기 때문에 저소득 근로자가 당연히 반영되는데 그분들이 당연히 (4대 보험에) 들어있습니다”는 다소 이해할 수 없는 황당한 답변을 합니다.
사정이 이 정도니 청년희망통장의 ‘희망은 4대 보험 순이냐’는 자조 섞인 말까지 나옵니다. 대전시 SNS 계정에 올라온 청년희망통장 게시 글에는 4대 보험 얘기가 유독 많습니다.
또 워낙 높은 가입 기준에 ‘염전 노예 수준으로 못 받고 일해야 신청할 수 있느냐’는 답글까지 붙어있습니다.
저소득 청년을 돕겠다던 청년희망통장이 거꾸로 노동사각지대에서 땀 흘리는 청년 노동자에게 실망과 상처를 주고 있었습니다.
■ 4대 보험 문턱으로 목돈 마련기회 ‘물거품’
33살 청년 노동자 조천희 씨는 대전에서 보험 판매와 설계를 해주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취재진이 만난 조 씨는 최근 대전시와 대전일자리경제진흥원이 ‘청년희망통장’ 가입자를 모집한다는 소식을 듣고 부품 꿈을 안고 있었습니다.
통장에 가입해 3년간 매달 15만 원씩 540만 원을 저축하면 대전시가 같은 금액인 540만 원을 더해주고, 이자까지 붙여 1,100여만 원을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조 씨의 목돈 마련 기대는 시작도 하지 못한 채 물거품이 됐습니다. 4대 보험에 가입된 청년 노동자만 신청할 수 있다는 제한 조건이 조 씨의 발목을 잡은 겁니다.
특수 고용직인 조 씨는 ‘건강보험, 국민연금, 산재보험, 고용보험’으로 구성된 4대 보험 중에서 고용과 산재보험 2개만 적용받고 있습니다.
조천희 씨는 “부푼 기대를 가지고 찾아봤는데, 실제로 자격요건을 보니까 해당하지 않는구나 생각해서 실망을 많이 했다”며 “관청에서 하는 일이 행정 절차만 따지다 보니 실제로 필요한 사람에게는 정말 혜택이 돌아가는 게 아니었구나라고 느꼈고, 나처럼 4대 보험을 들 수도 없는 상황의 청년 노동자들, 취약 계층을 빼고 기준을 잡았다는 것이 모순적으로 느껴졌다”고 토로했습니다.
■ 고용사각 청년에게 청년희망통장은 ‘그림의 떡’
청년희망통장에 가입할 수 없는 것은 비단 특수 고용직인 조 씨의 문제만이 아니었습니다.
일용직 노동자도 프리랜서 노동자도 마찬가지로 4대 보험 적용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이들 청년 노동자 모두 대전시의 청년희망통장은 ‘그림의 떡’이었습니다.
전문가들은 특히 대전시가 설계한 청년희망통장 사업 때문에 고용 사각, 노동 취약 계층의 청년 노동자들에게 큰 상처를 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4대 보험이라는 고용 기준의 벽을 기준으로 내세우면서 이 기준에 들지 못한 청년들에게 좌절감과 실망감을 안겨준다는 겁니다.
대전노동권익센터 측은 정부의 무관심에 특수 고용과 프리랜서 등 4대 보험 사각지대 노동자들의 시도별 현황 수치는 만들어져 있지 않지만, 노동연구원이 추산하고 있는 전국의 4대 보험 사각지대 노동자들이 200여만 명에 달한다고 설명했습니다.
"택배, 배달 및 배송기사, 학습지교사, 방문판매 등 특수 고용직 청년 노동자에 상처…"
특히 5인 미만 사업장을 비롯해 보험, 택배, 배달 및 배송기사, 학습지 교사, 방문판매 등 수많은 특수 고용직에 몸담고 있는 청년 노동자들은 청년희망통장의 문턱에도 도달하지 못한다며 제도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도 진단했습니다.
홍춘기 대전노동권익센터장은 “저소득 청년 노동자를 위한다는 청년희망통장 지원사업임에도 불구하고 특히 고용이 불안정한 청년 노동자들에게 굉장한 상처를 줄 수 있고, 오히려 이 청년 노동자들에게 불공정을 초래할 수 있는 시스템, 이런 지원사업이 기획된 것이 아닌가”라며 “대전시의 정책들이 현장에 기반을 두고 있지 못한 것으로 보이며 저소득 청년 노동자를 위한 기준이 아니라 행정 편의적인 사고로 보여진다”고 말했습니다.
■ 청년통장 가입에 4대 보험 요구.. 대전과 인천뿐
청년 노동자들이 청년희망통장에 가입할 때 4대 보험이 정말로 필요한지 다른 시도의 정책을 살펴봤습니다.
현재 청년통장 사업을 시행하고 있는 광역시도는 모두 8곳입니다. 광주광역시의 청년13(일삶)통장, 서울시의 희망두배 청년통장, 부산의 청년희망날개통장 등이 해당됩니다.
이들 사업에 대한 비교 분석을 해봤습니다.
"4대 보험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근로유형 관계 없이 일하는 청년 노동자라면 누구나"
그런데 4대 보험 가입자를 자격 요건으로 하는 곳은 대전시와 인천시뿐이었습니다. 반대로 서울과 경기, 광주, 부산, 전남 등 대부분 지자체는 4대 보험 유무를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오히려 일용직과 특수 고용직, 프리랜서 등 근로 유형과 관계없이 일하는 청년 노동자라면 누구나 신청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더욱이 전라남도 ‘청년희망디딤돌통장’의 경우 이보다 더 나아가 국가근로장학생과 군 복무자, 사회복무요원, 산업기능요원까지 신청할 수 있도록 가입 폭을 넓혀 대전시와 큰 차이를 보였습니다.
■ '중위소득 90%' 최저월급도 못 받아야 가입되나?
문제는 또 있었습니다. 소득 기준, 그러니까 한 달에 얼마 이하를 벌어야 가입할 수 있다는 기준에서도 논란이 있었는데요.
정부가 운영하고 있는 ‘보건복지부 청년희망키움통장’의 경우 가입자격이 중위소득 30% 이하인 ‘생계급여수급가구’ 의 청년노동자에게만 혜택이 돌아갑니다. 월 소득 54만 8,000원 이하만 정부의 청년통장에 가입할 수 있는 겁니다.
정부 사업이 ‘최빈곤 청년노동자’를 대상으로 하다 보니 자격 기준이 상당히 높아 자치단체에서는 이보다 완화해 저소득 청년노동자를 대상으로 청년통장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대전의 경우 청년희망통장에 가입하려면 중위소득 90% 이하, 월 소득이 1인 가구 기준으로 정확히 ‘164만 5,048원’을 넘지 말아야 합니다. 2021년 기준 현행 최저임금이 시간당 8,720원, 주 40시간 근로를 기준으로 월급으로 환산하면 ‘182만 2,480원’입니다.
최저임금보다 월급이 17만 원 더 적어야 가입할 수 있는 건데 이른바 풀타임 근로자는 아예 혜택을 받지 못하게 됩니다.
이 때문에 대전을 제외한 다른 6개 시도의 경우 중위소득 100%이자 최저임금 기준 월급인 182만 원에서 중위소득 140%인 월 급여 255만 원까지를 가입대상으로 하고 있었습니다.
더욱이 대전시도 지난해까지는 청년희망통장 모집을 하면서 중위소득 120% 이하를 기준으로 했다가 올해부터 90%로 강화했습니다.
이에 대해 대전시는 신청자가 몰리다 보니 ‘행정력’이 낭비되는 것을 막으려는 조치였다고 해명했습니다.
■가입 문턱 넘어도 ‘11종’의 제출서류.. ‘산 넘어 산’
‘4대 보험’을 적용받을 수 있는 기업에서 월급이 ‘164만 원’ 이하를 받아야 가입할 수 있는 청년희망통장.
해당 기준을 모두 충족한다고 하더라도 한 가지 높은 산이 또 남아 있습니다. 자격이 되는지 증빙할 수 있는 자료를 제출해야 하는데 청년노동자가 신청하려면 11종 이상의 서류가 필요합니다.
참여 신청서와 사회보장급여 제공 신청서, 개인정보 동의서, 가구원 소득·재산 신고서, 거주지 임대차 계약·사용대차 확인서, 4대 보험 가입 내역서, 재직증명서, 등본, 초본, 가족관계증명, 부채증명서(금융거래확인서)까지 해당 서류 모두가 필요합니다. 해당 서류 중 단 1가지도 빠지면 안 되고, 공고일 기준 이후의 발급 자료만 인정됩니다.
다른 광역시도는 어떻게 추진하는지 살펴봤습니다.
대전이 11종의 증빙서류를 요구할 때 광주광역시는 단 2종, 등본과 소득증빙서류만 요구했습니다.
또 부산 3종, 대구 5종 등의 서류만 요구하는 것과 대조를 보였습니다.
광주광역시 관계자는 “많은 서류를 요구하지 않고, 일단은 최저임금기준으로 거기에만 해당되면 신청을 받아서 선정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많은 서류 요구하지 않습니다. 청년노동자가 최저임금에 해당되면 신청 가능합니다"
더욱이 11종의 서류를 모두 발급받았다고 끝이 난 것이 아닙니다. 이걸 또 해당동 행정복지센터에 직접 가서 제출해야 합니다. 대전에서 청년희망통장에 가입할 때 우편과 이메일, 온라인 접수는 불가능합니다.
반대로 청년통장을 시행하는 나머지 7개 시도에서는 우편과 이메일, 온라인 접수 모두를 받고 있었습니다.
김재섭 대전참여자치시민연대 간사는 “청년통장을 시행하는 다른 광역시도가 점차 절차를 간소화하고 청년노동자들이 이용하기 편하도록 변경하는 것에 반해서 대전시는 계속해서 행정에 편리한 방식으로만 정책을 집행하고 있다”며 “지나치게 많은 서류를 요구하고 대면 접수만 고집하는 것은 도무지 납득 하기가 어렵다. 온라인 시스템이 마련되지 않았다면 우편으로도 가능한데 이런 것조차 배려하거나 고려하지 않았다”고 비판했습니다.
■ 내년에 '검토'해 보겠다… 개선은 하세월
대전 청년희망통장을 둘러싼 여러 문제점에 대해 대전시 청년정책과에 인터뷰를 요청했습니다. 시의회 업무와 여러 이유를 들며 난색을 보이던 대전시 관계자는 마지못해 짤막한 입장을 전달했습니다.
대전시 측은 올해 사업은 이미 공고가 나갔고, 모집을 진행 중이기 때문에 개선이 어렵고 내년에야 개선을 ‘검토’해보겠다는 입장입니다.
대전시 관계자는 “관련 서류라든지 과다한 제출서류 문제점에 대해 이야기를 듣고 있다”며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이 있으면 개선하는 방법으로 내년에 조정하도록 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청년희망통장 사업 때문에 5개 자치구에 업무가 과중해지는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중위소득 등 자격을 강화했던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영세 사업장에서 땀 흘리고 있는 청년노동자들의 목소리가 더는 외면 받지 않기를 대전시에 바라겠습니다.
[연관 기사] 특수고용·프리랜서 외면한 ‘대전 청년희망통장’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5255031
정재훈 기자 (jjh119@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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