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의 모태' 광주천 이야기] ⑤부동교..약 50개 다리 중 '최고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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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천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는 부동교(不動橋)다.
1929년 학생독립운동 당시 '조선독립'을 외친 광주 학생들이 광주천을 따라 행진하다가 건넌 다리로 부동교가 등장한다.
1932년 지금의 부동교가 막 생겨났을 때 이를 구분하기 위해 '신(新)부동교'라 불렀던 것도 이 때문이다.
광주천 우안 사람들이 '사동시장'이라 부른 이 장터를 가려면 광주천을 건너야 했고 그래서 부동교를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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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내용 요약
1932년 준공 불로동~사동 사이, 조선시대 `부동방면'서 딴 것
1929년 학생독립운동 학생들 건넌 다리 `부동교'는 금교
[광주=뉴시스] 배상현 기자 = 광주천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는 부동교(不動橋)다. 1932년 생긴 이 다리는 동구 불로동의 조선시대 명칭인 부동방면(不
에서 딴 것이다. 불로동(광주천 우안)과 사동(광주천 좌안) 사이를 오가는 다리는 약 50개 광주천 다리 가운데 가장 나이가 많다.
1929년 학생독립운동 당시 ‘조선독립’을 외친 광주 학생들이 광주천을 따라 행진하다가 건넌 다리로 부동교가 등장한다. 그런데 부동교는 1932년에 준공됐으니 1929년에는 없어야 맞다. 결론적으로 역사적 착오다. 당시 학생들이 건넌 다리는 현재의 금교 자리에 있던 다리다. 그 시절에는 금교를 부동교라고 불렀다. 1932년 지금의 부동교가 막 생겨났을 때 이를 구분하기 위해 ‘신(新)부동교’라 불렀던 것도 이 때문이다.
지금의 부동교를 놓은 이유는 당시 사동 37번지(중앙대교 좌안)에 장터가 있었기 때문이다. 광주천 우안 사람들이 ‘사동시장’이라 부른 이 장터를 가려면 광주천을 건너야 했고 그래서 부동교를 놓았다.
☞공감언론 뉴시스 praxis@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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