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은 감축목표 짐작케 한..문 대통령의 '실현가능한 저탄소'
“실현가능한 2030년 감축 목표 공약” “선도적으로 저탄소 경제전환 추진”.
문재인 대통령은 15일 광복절 축사에서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한국의 책임을 다하겠다’며 이렇게 말했다. 앞서 문 대통령은 지난해 10월 국회 시정연설에서 처음으로 “2050년 탄소중립”을 언급했고, 지난 5월 서울 녹색미래(P4G) 정상회의에서는 “2030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추가 상향하겠다”고 했다.
이번 광복절 축사에서 문 대통령은 2030년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를 언급하며 “실현가능한”이라는 수식어를 붙였다. “탄소중립”과 “저탄소”라는 서로 양립할 수 없는 표현도 함께 썼다. 기후환경단체 등은 문재인 정부의 탄소중립 정책 의지와 방향이 1년도 되지 않아 흔들리고 있다고 비판한다.
실현가능한 온실가스 감축은 얼마나?
문 대통령은 서울 중구 ‘문화역서울 284(구 서울역사)’에서 열린 광복절 경축식에서 “기후위기 대응에 우리가 해야 할 책임을 다하겠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세계와 함께 대응하지 않으면 코로나를 이길 수 없고 기후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고 운을 뗀 뒤, 지난해 10월 내놓은 2050년 탄소중립 선언이 “환경을 위해 자발적으로 실천해 온 국민들과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에 적극적으로 나선 기업들의 노력이 있었기에 세울 수 있었던 이정표”라고 평가했다. 이어 “정부는 지난 5일 발표한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를 토대로 국민 여론을 폭넓게 수렴하고 올해 안에 실현가능한 2030년 감축 목표를 공약해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책임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문 대통령이 2050년 탄소중립을 선언한 직후인 지난해 말, 한국 정부는 유엔기후변화협약 사무국에 2017년 온실가스 배출량 7억910만톤 기준 24.4%를 감축하겠다는 NDC 목표를 제출했다. 2015년 박근혜 정부는 2030년 배출전망치 8억5080만t 대비 37% 감축 목표를 제출한 바 있다. 문재인 정부와 박근혜 정부 목표치 모두 2030년 온실가스 배출량은 5억3600만톤으로 동일하다. 결국 지난 2월 유엔기후변화협약 사무국은 한국 등 온실가스 감축 목표가 낮은 나라들에게 상향한 목표를 다시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이에 문 대통령은 “상향한 NDC를 오는 11월 영국에서 열리는 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에서 발표하겠다”는 입장을 국제사회에 여러 차례 밝혔다.
<한겨레>가 환경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대통령 직속 2050 탄소중립위원회를 취재한 결과, 현재 2030년 온실가스 감축 목표는 2018년 배출량(7억2700만톤) 대비 30% 감축 수준에 머물러 있다. 이 경우 한국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5억톤 초반이 된다. 반면 정의당과 기후운동단체 등은 2010년 배출량(6억6900톤) 기준 50% 이상 감축을 요구하고 있다. 이 경우 배출량은 3억톤 중반까지 내려간다.
이런 상황에서 “실현가능한 감축 목표”라는 문 대통령 발언은, 조만간 정부가 내놓을 감축 목표가 기존 목표치에서 크게 늘지 않을 수 있다는 전망으로 이어진다. 앞서 산업통상자원부도 “(NDC 목표 상향은) 우리 경제·산업에 미치는 영향 분석과 충분한 사회적 논의·합의를 거쳐 ‘감내 가능한 수준’으로 결정할 예정”이라고 밝힌 한 바 있다. 청와대 내부에서도 NDC 대폭 상향 요구에 대해 ‘지나치게 이상적’이라는 반응이 나온다.
문 대통령이 “실현가능한”이라는 사실상의 가이드라인을 둔 것은 한국 경제에 미칠 영향과 함께 ‘낙장불입’이라는 파리기후변화협정 체제의 특징을 고려한 측면도 있다는 분석이다. 파리협정에서는 한 번 제출한 감축 목표는 뒤로 미루지 못하기 때문이다. 파리협정에서는 모든 당사국이 5년 마다 감축 목표를 발표하고 이행 상황을 점검받아야 한다. 매번 발표하는 목표는 상향·진전돼야만 한다. 정부로서는 ‘실현가능한’ 목표를 선정하는 것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다만 이를 지키지 못한다고 해서 ‘패널티’는 따로 없다.
저탄소는 탄소중립이 아니다
문 대통령은 광복절 축사에서 “‘2050 탄소중립’은 결코 쉽지 않은 목표지만 그렇다고 부담으로만 인식할 필요는 없다. 우리가 선도국가로 도약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도 하다”며 △친환경차와 배터리 △수소경제 △태양광·해상풍력 등 신재생에너지 확충을 언급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앞서가고 있는 분야를 중심으로 선도적으로 저탄소 경제 전환을 추진해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당장 ‘탄소중립 경제전환’이 아닌 ‘저탄소 경제전환’라는 표현이 문재인 정부의 정책 방향성을 보여준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헌석 정의당 녹색정의위원장은 SNS를 통해 “적절한 수준으로 탄소를 저감하는 ‘저탄소’와 탄소순배출을 0으로 만드는 ‘탄소중립’을 비슷한 말 정도로 이해고 있다는 뜻”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대통령이 탄소중립을 선언하고 탄소중립위원회를 구성했는데도 아직도 ‘저탄소 경제전환’이란 용어를 쓰고 있다. 아직까지 국정과제로 ‘탄소중립’이 자리잡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했다.
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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