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가끓었다. 우리 아니면 누가 하나"..24년 만에 진실 파헤친 형사들

강교현 기자 2021. 8. 15.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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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년.

서울에서 발생한 한 실종사건의 진실이 밝혀지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사건이 발생한 것은 지난 1997년 겨울이다.

류창수 경위는 "피해자가 누구인지 알 수 없는 살인사건을 전해 들었을 때, 살인을 저지르고도 지금까지 처벌을 받지 않고 편안하게 살아온 범인을 생각하니 피가 끓어올랐다"며 "저를 믿고 수사를 결정해준 팀장님과 이를 지원해준 팀원들에게 감사한 마음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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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서울 여성 실종사건 진실 밝혀낸 전북청 강수대2팀
팀원 5명 중 4명 특진 경험 강력범죄 전문 베테랑 형사들
전라북도경찰청 강력범죄수사대 2팀 왼쪽부터 김이지 경장, 박정근 팀장, 류창수 경위, 김성중 경장, 김수 경위. 2021.8.14/뉴스1 © News1 유경석 기자

(전주=뉴스1) 강교현 기자 = 24년. 서울에서 발생한 한 실종사건의 진실이 밝혀지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사건이 발생한 것은 지난 1997년 겨울이다. A씨(당시 23세)는 여자친구 B씨(당시 28세)와 서울에서 전북으로 향하고 있었다. 일행 중에는 A씨의 두 후배도 있었다.

차를 타고 이동하는 내내 A씨와 B씨는 다퉜다. B씨가 남자친구인 A씨의 외도를 의심한 것이 다툼의 원인이었다. 욕설과 고성이 오가면서 급기야 차량은 익산나들목 부근에 멈춰 섰다.

후배들은 잠시 담배를 태우며 밖에서 기다렸다. 그 동안에도 차 안에서는 다툼이 계속됐다. 그리고 화를 참지 못한 A씨가 결국 여자친구의 목을 졸랐다.

A씨는 후배들을 태우고, 김제의 한 학교 부근 도로공사 현장에 도착했다. 그리고 현장에 파인 웅덩이 중 한 곳에 B씨의 시신을 암매장했다. 공포심에 휩싸인 후배들은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현장에 있던 피의자들은 눈을 감고, 입을 닫았다.

그렇게 20여년의 세월이 흘렀다. B씨의 생사도 확인할 수 없었던 가족들에게 그 긴 시간은 말그대로 지옥이었다.

하지만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 없었다. 우연히 접하게 된 첩보 하나에 미궁 속에 빠졌던 사건의 실마리가 풀리기 시작했다. 첩보는 "한 남성이 살인사건 입막음을 댓가로 누군가에게 돈을 요구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전북경찰청 강력범죄수사대 2팀 류창수 경위는 지난 2019년 11월. 평소 알고 지내던 후배로부터 "지인이 과거 살인사건에 가담한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류 경위는 이후 3개월간의 끈질긴 설득 끝에 피해자의 이름을 알아내는데 성공했다.

이렇게 시작된 수사는 지난해 8월 피해 여성의 구체적인 신원이 확인되면서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박정근 팀장은 팀원들과 회의를 거쳐 A씨에 대해 강제 수사하기로 결정했다. 검찰로부터 체포영장을 발부받은 박 팀장은 지난달 5일 대전에서 A씨를 검거하고 자백을 받았다.

류창수 경위는 "피해자가 누구인지 알 수 없는 살인사건을 전해 들었을 때, 살인을 저지르고도 지금까지 처벌을 받지 않고 편안하게 살아온 범인을 생각하니 피가 끓어올랐다"며 "저를 믿고 수사를 결정해준 팀장님과 이를 지원해준 팀원들에게 감사한 마음이다"고 말했다.

전라북도경찰청 강력범죄수사대 2팀 박정근 팀장. 2021.8.14/뉴스1 © News1 유경석 기자

영원히 묻힐 것 같았던 사건은 이렇게 세상에 드러났다. 사건 해결 중심에는 한 베테랑 형사의 노력과 집녑, 그리고 그를 믿어주고 지원해 준 팀원들의 역할이 컸다. 뉴스1은 이 사건을 세상에 알린 전북경찰청 강력범죄수사대 2팀 박정근 팀장과 팀원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눠봤다.

다음은 강력범죄수사대 2팀과의 일문일답.

- 팀원들 소개를 해달라.

▶선임팀장 박정근이다. 이번 사건에서 지휘부에 수사 필요성을 어필하고, 수사 진행 상황을 총괄했다. 우리 팀은 사건을 처음 접한 류창수 경위를 비롯해 김수 경위, 김성중 경장, 그리고 홍일점 김이지 경장까지 모두 5명이다. 류창수 경위는 불의를 보면 못 참는 성격이다. 강력범 검거 우수 실적으로 경위로 특진했다. 검사에게 이번 사건의 강제수사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공범조사와 피해자 신원확인, 범인 행적 추적수사를 맡았다. 김수 경위는 형사·수사 분야를 두루 섭렵한 전북청 최고 베테랑 형사로 역시 경위 특진했다. 유골발굴에 대한 지자체 협조요청과 발굴 현장 검증, 류 경위와 함께 범인 행적 추적수사를 담당했다. 김이지 경장은 태권도 4단 유단자로, 과학수사를 경험한 잠입 수사의 달인이다. 김성중 경장은 검도 금메달리스트 수상경력의 무도특채 경찰관으로 경장 특진했다. 두 김 경장은 유골 발굴 현장에 대한 현장 검증 자료를 정리하고, 무연고 변사사건 확인 등 사체 확인을 위한 기초 자료 수사를 맡아줬다. 팀장을 포함해 5명 중 4명이 특진을 경험할 정도로 능력있는 형사들이다.

- 팀원이 미제 사건을 수사한다고 했을 때, 어떤 생각들이 들었나.

▶처음 류창수 경위가 사건에 대해 이야기를 꺼냈을 때 반신반의하는 마음이 컸다. 피해자가 특정되지 않았고, 공소시효가 끝난 살인사건이기에 고민이 많이 됐다. 첩보를 확인하는 과정도 오래 걸리고, 범인을 붙잡아도 법의 심판대에 올릴 수 없는 현실에 허탈감이 클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강력형사로서 잔뼈가 굵은 팀장을 축으로 팀원들과 충분한 논의를 통해 결국 해보기로했다. 공소 유지나 재판절차에 중점을 두는 검찰·법원이 할 수 없는 사건을 우리 강력형사가 아니면 누가 하겠는가. 형사 생활을 하면서 과연 이런 사건을 접할 기회가 있을 것인가라는데 의견이 모이자 망설임 없이 수사가 시작됐다. 무엇보다 살인을 저지르고도 지금까지 편안하게 살아온 범인을 생각하니 피가 끓었다.

- 수사 진행 과정에서 특히 어려웠던 점은.

▶ 첩보를 통해 들은 피해자의 이름만 가지고 처음 수사를 시작했다. 시간이 많이 지난 사건인 탓에 피해자 행적 확인과 인과관계 확인을 위한 데이터 확보에 어려움이 많았다. 당시의 수사상황 등 자료를 찾아보려 했지만, 해당 경찰서에는 어떤 근거가 될만한 자료도 없었다. 피해자를 특정하는 과정에서도 주민등록증 갱신 여부나 출입국, 휴대전화 개통, 신용카드 개설 등 모든 자료를 하나하나 살펴봐야 했다. 무엇보다도 직접 증거가 없는 상태에서 범인에 대한 체포영장이 발부되지 않을 때 상황이 큰 걱정이었다. 진실을 밝혀내지 못하면 어떻게 하나 하는 부담감은 덤이었다.

- 범인 얼굴을 마주했을 때 어땠나.

▶ 체포영장이 있어야 범인의 신병을 확보하고 심리적 압박을 통해 시체 암매장 장소 등 범행의 실체적 진실을 확인하는 것이 가능했다. 그렇기에 체포영장이 나왔을 때 팀원들 모두가 기뻐했다. 발부받은 영장을 들고 피의자를 검거하러 이동하는 동안에는 강력사건의 범인인 만큼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변수에 대해 생각을 많이 했다. 그리고 마침내 마주한 피의자의 얼굴은 아직도 선명하게 떠오른다. 모든 걸 포기한 듯 자리에 주저앉아 담배 한 대를 피워도 되겠냐고 묻는 피의자의 모습이.

- 피해자의 유골을 찾는 작업이 진행 중인데, 이 소식을 들은 유족들은 어떠했나.

▶ 유족들은 딸의 생사를 밝혀준 것에 대해 감사를 표하면서도, 범인을 처벌할 수 없다는 사실에 매우 분노했다. 유골이라도 꼭 회수할 수 있게 도와달라는 말에 마음이 무척 무겁다. 30도가 넘는 불볕더위에도 불구하고 수차례 유골을 찾기 위해 수색했지만, 아직 진전이 없는 상태다. 유골 수색과 함께 다른 유족지원 방안도 있는지 찾고 있다.

- 앞으로 강력수사대 2팀이 이루고자 하는 목표나 각오가 있다면.

▶ 처벌하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긴 시간 공들여 수사에 나섰다. 과정이 쉽지 않았지만, 이번 사건을 통해 느낀 것도 많고 얻은 것도 많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고민 없이 같은 선택을 할 것이다. 무엇보다 팀원들끼리 더 끈끈해지는 계기가 됐다. 이 분위기를 이어 앞으로도 더욱 가까이 국민에게 다가가 아픔을 보듬어 주는 전북청 강수대 2팀이 될 수 있도록 전력을 다하겠다.

전라북도경찰청 강력범죄수사대 2팀 왼쪽부터 류창수 경위, 김이지 경장, 박정근 팀장, 김성중 경장, 김수 경위. 2021.8.14/뉴스1 © News1 유경석 기자

kyohyun21@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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