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브수다]'데뷔 30주년' 박주미, 비로소 '배우'란 수식어가 부끄럽지 않아졌다
[SBS연예뉴스 | 강선애 기자] 배우 박주미는 초절정 동안 미모의 소유자다. 30대라 해도 믿을 비주얼의 그녀가 올해 나이 50이란 게 놀랍기만 하다. 속절없이 흐르는 세월이 야속하지만, 그에 비례해 자연히 쌓이는 경력과 연륜이란 값진 보상이 그나마 위안을 준다.
1992년 MBC 공채 탤런트로 데뷔한 박주미는 올해 데뷔 30주년이다. 하나의 직업인으로 30년을 살았다는 건, 분명 엄청난 경력이다. 하지만 박주미는 '데뷔 30년차 배우'란 자신의 타이틀을 민망해했다. 결혼 후 가정과 육아에 전념하며 10년 가까이 가진 공백 때문이다. 박주미는 "30주년이라 감히 말하기에는, 내게 부족한 게 많다"라고 한다.
박주미는 온전히 '배우'로 불리려면 어떤 책임감이 뒤따르는지 잘 알고 있었다. "'내가 배우다'라고 말하는 게 부끄럽지 않고 싶었다"는 그녀의 말에서, 연기를 대하는 진지한 자세가 엿보였다. 반대로, 배우로서 자신에 대한 평가를 얼마나 엄격하게 하는 지도 짐작 가능했다.
박주미는 최근 시즌2를 종영한 TV조선 드라마 '결혼작사 이혼작곡'(이하 '결사곡')을, 자신의 배우 인생에서 스스로를 '부끄럽지 않다'고 느낄 시작점이라 말했다. 데뷔한 지 30년인데, 이제야 비로소 자신의 이름 앞에 '배우'라는 단어가 붙는 게 부끄럽지 않다고 한다. 그만큼 본인이 맡은 사피영 캐릭터를 혼신의 힘을 다해 연기했다. 그리고 시청자의 인정을 받았다. 최선을 다했고, 결과까지 좋다. 그러니 이번엔 자신감을 가져도 될 듯하다. '배우 박주미'라고 불리는 것에 대해.
▲ 임성한 작가 작품이라 해서 부담은 없었다
박주미에게 3년 만의 안방극장 복귀작인 '결사곡'은 임성한 작가의 작품이었다. 임성한 작가는 자극적인 소재를 남다른 필력으로 풀어내 인기를 얻기도 했지만, 난해한 상황이나 파격적인 전개로 논란도 뒤따랐던 작가다. 박주미는 이런 임성한 작가의 작품에 출연한다는 것에 특별히 부담은 없었다고 한다.
"임성한 선생님의 작품이라 해서 부담감이 크진 않았어요. 오히려 저한텐 오랜만의 작품이라 더 잘하고 싶다는 욕심이 부담이었죠. 개인적으로 촉이 잘 맞는 편인데, 제가 연기할 사피영이란 캐릭터는 이름부터 왠지 마음에 와닿았어요. 극상에서도 현실에서도 한 번도 본 적 없는, 독보적인 저만의 인물이 될 거 같은 느낌이었죠. 캐릭터 설명을 듣고 사피영이 멋지다는 생각도 했고요. 임성한 선생님의 작품이라는 것보다는, 대본이 너무 재미있었고, 시청자도 충분히 궁금해할 거 같은 스토리라 생각해서 흔쾌히 출연하게 됐어요."
이름부터 박주미를 강하게 끌어당겼다는 사피영. '결사곡'에서 사피영은 모든 면에서 완벽한 여자였다. 라디오PD로서 프로페셔널한 모습을 보여주면서, 가정에서는 사랑스러운 아내, 현명한 엄마, 살뜰한 며느리로서 어디 하나 부족할 게 없었다. 박주미는 이런 사피영을 똑소리 나게 연기해냈다.
"피영이는 여러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 다면적인데, 뭐 하나 책 잡히지 않는 완벽한 캐릭터였어요. 누군가의 딸이자 며느리, 아내, 엄마이고, 사회에서는 라디오 PD였죠. 실제의 저도 며느리이고 아내이고 엄마이고 딸이고, 또 일을 하는 여성이잖아요? 제가 간접적으로 경험하는 게 피영이와 매치되는 건 있었어요. 다만, 성격적으론 피영이처럼 남편한테 애교가 많지는 않아요. 그래서 애교 있는 지인을 롤모델로 두고 그걸 따라 하려 했어요. 또 상대 배우인 이태곤 씨가 저보다 어리지만, 남편을 존중하고 애교 있는 피영이의 감정을 위해 현장에서는 태곤 씨한테 말을 놓지 않았죠. 나중에 서사에 따라 피영이가 변해가는 모습을 보여주고자, 그 부분도 신경 썼어요."
'결사곡' 시즌1에서 사피영은 화목한 가정에서 행복해했다. 하지만 시즌2로 넘어오며, 친모의 사망과 남편의 바람이 동시에 맞물리는 충격 속에 처절하게 무너졌다. 그래도 똑소리 나는 사피영은 다시 일어섰고, 매달리는 남편을 매몰차게 밀어내고는 당당히 자신이 중심이 되는 삶을 선택했다. 사피영의 주체적인 성격은 시청자의 박수를 이끌어냈고, 이를 생동감 있게 연기한 박주미에게도 칭찬이 돌아갔다. 드라마도 매회 시청률이 오르더니 마지막에는 16.6% 자체 최고 시청률을 찍었다.
"깜짝 놀랐어요. 시즌1 때도 반응이 좋았는데, 시즌2 시작하고 나선 반응이 훨씬 크더라고요. 많은 분들이 보시는 거 같았고, 제가 느낀 실제 체감은 시청률 25% 이상 수준이었어요. 제가 최근에 했던 작품 중에 이렇게 반응이 뜨겁게 온 게 있나 싶어요. 진짜 감사드릴 일이죠. 또 '결사곡'이 넷플렉스를 통해 전 세계에서 볼 수 있으니, 해외 여러 곳에서 반응이 오더라고요. 각 나라마다 다른 반응들을 보는 재미도 있었어요. 제 나이는 이런 게 신기하고 놀랍고 감사해요."
▲ 완벽한 여자 사피영, 실제의 난 많이 부족해
박주미는 사피영을 통해 스스로를 반성했다고 한다. 워킹맘인데도 모든 것을 완벽히 해내는, 그러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사피영이 존경스러울 정도였다며, 자신을 되돌아보게 됐다고 말했다.
"저도 결혼해 살지만, 사피영처럼 완벽하게 살림을 잘하고 내조하기가 쉽지 않아요. 사피영을 보면서, 괜히 남편한테, 아이한테 미안한 마음이 들고 반성할 때가 많았어요. 전 많이 부족하거든요. 남편이 열이 많다고 속옷을 냉장고에 넣었다가 내어주는, 그렇게 철저히 모든 면에서 잘하는 피영이 같은 여자가 있을까요. 정말 대단한 여자죠. 이태곤 씨한테도 피영이 같은 여자 만나라고 했어요. 우리 남편한테는 제가 미안하다고 했고요.(웃음)
그런데 완벽한 사피영도 이해받지 못한 부분이 있었다. 그중 하나는, 혼자인 친정 엄마를 외면했던 것. 어릴 적 상처로 인해 엄마를 미워했기 때문이지만, 친정 엄마가 불치병에 걸려 홀로 투병하는 것도 모르고 냉정하게 대했던 사피영의 행동은 많은 이들의 질책을 받았다. 물론, 사피영 스스로에게도 씻을 수 없는 후회로 남았다.
"많은 분들이 납득하기 어려워했지만, 전 피영이가 충분히 이해가 갔어요. 어릴 적에 부모님 사이가 안 좋았던 데다가, 가장 사랑하던 아빠를 눈앞에서 교통사고로 잃었다면, 피영이는 왜곡된 가치관으로 살아왔을 거예요. 그 상처와 미움을 오로지 엄마한테 쏟을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요. 또 아빠도 없고 형제도 없는 피영이한텐 엄마의 존재가 더 중요했을 텐데, 그런 관계조차 형성이 안 됐기에 엄마한테 더 모질게 굴었겠죠. 전 충분히 이해하고 공감이 됐는데, 많은 분들은 '어떻게 딸이 엄마한테 그러냐'고 하시더라고요. 작가님도 피영이가 엄마가 돌아가신 후에 더 반성하고 후회하라고 그렇게 전개한 면도 있을 거예요. 전 피영이 입장이니, 안타까울 뿐이에요."
또 하나, 바람을 피웠던 남편이 가정을 깰 수 없다며 무릎을 꿇고 사과했는데, 사피영이 끝내 뿌리치고 이혼을 택한 것에 대해서도 반응이 분분했다. 사피영의 행동이 당연한 사이다 행보라는 반응, 반대로 아이가 있는 엄마 입장에서 이혼 결정은 너무 모질다는 반응으로 나뉘었다.
"드라마 속 사피영은 현실 속 여자들이 쉽게 선택하지 못하는 걸 대신 해주고 대리 만족을 느끼게 하는 멋진 존재인 거죠. 저도 대한민국의 현실적인 유부녀고 주부예요. 만약 제가 사피영의 상황이라면, 그렇게 못했을 거예요. 바람을 피운 게 단 한 번이고, 무릎까지 꿇고 매달리고, 그 무엇보다도 자식을 생각한다면. 한 번은 눈 감아주지 않을까요? 현실적으로요. 대신 우리가 못하는 걸, 피영이는 대신 해줄 수 있어야죠."
▲ '배우'란 이름이 부끄럽지 않은 배우
사피영의 남편 신유신 역을 소화한 배우 이태곤과의 연기 호흡은 모든 면에서 좋았다.
"애초에 작가님이 저희 둘의 케미를 다 염두하고 캐스팅하신 거고, 감독님도 전체 리딩 때 보시고는 기대한 것보다 케미가 훨씬 더 좋다고 하셨어요. 그런 기대 속에 본격적인 촬영에 들어갔는데, 화면에 잡힌 저희 둘의 비주얼적인 케미도 너무 좋더라고요. 외적 케미나 연기 호흡이나 다 좋았어요. 배우들은 연기할 때 서로의 호흡을 느끼는데, 제가 호흡을 줬을 때 태곤 씨가 받는 거나, 태곤 씨가 주는 호흡 때문에 제가 연기해야 할 감정이 더 와닿을 때, 그럴 때 '아 이런 게 정말 좋은 케미구나'를 느꼈어요."
박주미와 이태곤이 절정의 연기 호흡을 보여준 회차는 '결사곡2' 12회였다. '결사곡2' 12회는 다른 인물의 등장 없이 사피영과 신유신의 대화만으로 이뤄졌다. 신유신은 외도가 들통났지만 가정을 지키고자 했고, 아내 사피영은 신뢰가 깨져버린 부부 사이는 더 이상 의미가 없다며 이혼을 요구했다. 장소를 바꿔가며 이뤄진 두 사람의 논리적인 말다툼은 '결사곡2' 한 회차 70분을 꽉 채웠다. 배우에게 극강의 연기력과 암기력을 요구한, 파격적인 시도였고, 박주미는 그 시험을 통과했다.
"저한테 12회는 축복 같은 회였어요. 평생 잊지 못할 것 같아요. 드라마가 시즌 1,2 총 32부인데 제게는 '결사곡2' 12부가 가장 의미 있어요. 이스라엘에 기네스에 오른 60분짜리 2인극이 있다던데, 저희가 그 기록을 깬 거예요. 정말 영광스럽죠. 촬영을 준비하며 힘들긴 했어요. 매 순간 자거나 눈을 뜨거나 의식이 있거나 없거나, 12부 대본을 다 외우려고 노력했죠. 개인적으로는 온 식구들한테 배려해달라 하면서, 정말 12회에 올인했어요. 임성한 작가님의 배포와 필력이 아니면, 이런 대본은 누구도 쓸 수 없다고 생각해요. 또 요즘 같이 많은 채널이 있고, 시청자가 조금만 재미가 없으면 채널을 돌려버리는 시대에, 이렇게 대범하게 글을 쓰실 수 있다는 게 놀라워요. 정말 잘하고 싶었어요. 배우 입장에선 평생 남는 필모그래피잖아요. 흔치 않은 기회이니, 최선을 다하고자 하는 마음이 컸어요."
"배우로서 데뷔 30주년, 인간 박주미로서 나이 50을 맞는 기분이 남다를 거 같다"는 질문에 박주미는 웃음부터 터뜨렸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이 "적응이 안 된다"며 소녀처럼 장난스럽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다 이내, 연기 30주년에 대한 솔직한 소회를 털어놨다.
"제가 20대 때도 많은 작품을 한 게 아닌데, 30대 땐 거의 작품을 안 했어요. 쉬지 않고 연기를 해왔다면 모를까, '30주년'이란 말을 듣기에는 제가 부족한 게 많죠. 40대가 되며 한 작품씩 이어오고 있는데, 늘 '배우'라는 이름이 부끄럽지 않은 배우가 되고 싶었어요. '결사곡'은 제가 배우라고 말하는 게 부끄럽지 않은, 그 시작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저한테는 나이를 떠나서 연기할 수 있게 해 준, 감사한 작품이에요. 제가 갖고 있는 여러 수식어를 배제한 채, 오로지 박주미라는 거 하나만 보고 저한테 주어진 역할이라, 그래서 더 많이 애정이 가고 감사함이 커요. 이걸 발판으로 앞으로도 더 많은 멋진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을 거 같아요."
'결사곡'은 내년 시즌3로 돌아온다. 시즌2 종영 직전에 진행된 인터뷰에서 박주미는 시즌3는 물론, 시즌2 엔딩에 대해서도 말을 아꼈다. 다만, " 연속극에서 제일은 다음이 궁금한 거다. '저게 뭐지? 보고싶다. 자꾸 생각나네' 그렇게 만드는 게 키포인트일텐데, '결사곡2' 엔딩은 그런 엔딩일 거다"라고만 언급했다.
실제로 '결사곡2' 엔딩에선 시즌3 제작과 함께, 전혀 예상치 못한 남녀 캐릭터들의 결혼을 예고해 시청자들을 혼란에 빠뜨렸다. 박주미가 연기한 사피영 캐릭터의 결혼 상대는 서동마(부배 분)였다.
이런 파격 전개가 임성한 작가의 무리수가 될지, 아니면 시청자의 설득력을 얻을지는 시즌3 뚜껑을 열어봐야 안다. 다만, 사피영으로서 '배우' 박주미가 보여줄 또 새로운 모습이 기대된다.
[사진=스튜디오 산타클로스엔터테인먼트]
강선애 기자 sakang@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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