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의사생활2', 익숙해지니 보이는 불편한 판타지

이정현 2021. 8. 14.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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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진의 엘리트 찬가, 지옥 같은 의료 현장과 대비" 쓴소리 늘어
슬기로운 의사생활2 [tvN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이정현 기자 박소연 인턴기자 = 현실과 반 발짝 정도 떨어진 판타지는 대리만족을 주지만, 너무 동떨어지면 불편함을 낳는다.

tvN '슬기로운 의사생활'은 신원호 PD-이우정 작가 특유의 따뜻한 휴머니즘을 시즌2에서도 이어가며 시청률이 13%대를 유지하고 있지만, 전 시즌에 비해 화제성은 확실히 떨어진 분위기다. '아로하' 같은 'OST(오리지널사운드트랙) 대박'도 아직은 없다.

얼핏 보면 '슬기로운 의사생활' 자체가 달라진 건 크게 없다. 시즌2에서도 이익준(조정석 분), 안정원(유연석), 김준완(정경호), 양석형(김대명), 채송화(전미도) 이십년지기 5인방 의사들의 사랑과 우정, 그리고 일터에서 겪는 감동적인 이야기들이 주축을 이룬다.

전 시즌을 통해 각자의 서사가 쌓이고 러브라인이 발전하면서 다소 산만해졌다는 목소리도 있다. 주제 의식을 강조하기보다는 인물들의 매력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이야기를 열거식으로 보여주는 느낌이라 시트콤 정도의 재미 이상을 주기 어렵다는 비판도 나온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14일 "시즌2는 시즌1과 달리 매회 주제와 메시지를 담기보다 일상을 담은 시트콤 느낌이 강해졌다"며 "그렇다 보니 오늘 방송을 하긴 했는데 뭘 했는지 내용을 모르는 단점이 있다. 물론 인물들이 보고 싶어서 본다는 시트콤적 접근으로 보면 장점이 될 수도 있다"고 짚었다.

'슬기로운 의사생활2' 주인공 5인방 [tvN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그러나 이것만으로 시즌1과 비교해 확연히 떨어진 화제성을 설명하기는 어렵다. 본질적인 문제는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캐릭터들과 이야기 전개 방식에 익숙해진 시청자들이 현실이라는 탈을 쓰고 있지만 실상은 현실과 괴리된 판타지를 자각하기 시작하면서 느끼는 불편함이라는 분석이 더 설득력 있다.

특히 시즌1 때와 달리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의료 현장이 '지옥'과 같이 된 것도 더 괴리감을 안긴다. 이렇게 대부분의 의료진이 국민 방역을 위해 정신력으로 사투를 벌이는 사이 한편에서는 일부 양심 없는 병원들로 인해 대리 수술 문제가 불거지는 등 의료계는 여러 가지로 몸살을 앓는 상황이다.

하지만 '슬기로운 의사생활' 속 율제병원과 의사들은 지나치게 평화롭다. 물론 의료진도 우리와 같이 일상이 있고 사랑도 하는 사람들이지만, 그렇다면 굳이 배경이 병원이어야 했고, 주인공들은 꼭 엘리트 의사여야 했느냐는 물음이 남는다. 최근 주인공들은 일, 사랑, 인생의 결정적 터닝 포인트를 맞았다. 하지만 그 고민들이 의료진의 고뇌와는 거리가 먼 게 사실이다.

악한 캐릭터 없는 작품이 신원호-이우정 사단의 특징이라고는 하지만 지나치게 미화된 의사 5인방도 일부 시청자에게는 쓴소리의 대상이다. 실력이면 실력, 인성이면 인성, 외모면 외모, 심지어 노래 실력까지 다 갖춘 사람들뿐인 율제병원 세상은 주변을 돌아보고 나서 보면 씁쓸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최근 한 트위터 사용자가 "그냥 사람 냄새 나는 이야기가 아니라 금수저와 재벌들이 성품과 인간미까지 갖췄다는 극단적 선민사상을 철저한 의학적 디테일에 얹어 실제 직군을 포장했다는 점에서 제작진의 취향이 노골적으로 드러난다"고 일침을 가해 온라인에서 화제가 된 것도 많은 시청자가 비슷한 생각을 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김성수 대중문화평론가도 "엘리트들의 부도덕함과 이기주의를 어떻게 치유하느냐가 사회적 과제로 대두한 상황인데 '슬기로운 의사생활'은 그 과제와 완전히 동떨어져 있다"며 "주인공들이 자선을 베풀면 세상이 좋아질 것처럼 묘사하며 엘리트 찬가만 보여주니까 시청자들도 이제 '현타'(현실 자각 타임, 헛된 꿈에 빠져 있다가 실제 상황을 깨닫는 시간)가 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시즌제 제작에 성공한 '슬기로운 의사생활'이 휴머니즘이라는 본연의 가치를 지키면서도 어떻게 현실과 판타지를 요령 있게 접목해 롱런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lis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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