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만난세상] '먹금'이 필요한 사회

유지혜 2021. 8. 13. 2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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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금'(먹이 금지)이라는 신조어가 있다.

쓸모없는 말과 행동에는 관심이라는 먹이를 주지 말라는 의미다.

특히 온라인 공간에서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억지 논란을 일으키거나, 분탕질하는 사람을 가리켜 '먹금하자'는 말이 사용된다.

한 외신 기자의 말처럼 '한국에서 페미니즘이 더러운 단어가 돼버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라도 먹금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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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금’(먹이 금지)이라는 신조어가 있다. 쓸모없는 말과 행동에는 관심이라는 먹이를 주지 말라는 의미다. 특히 온라인 공간에서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억지 논란을 일으키거나, 분탕질하는 사람을 가리켜 ‘먹금하자’는 말이 사용된다. 실제로 그들의 말과 행동은 사람들 관심을 끄는 데 실패하면 곧잘 수그러든다.

최근 막을 내린 도쿄올림픽에서 한 선수에게 가해진 공격을 보며 먹금을 떠올렸다. 시작은 미미했다. 일부 커뮤니티 이용자들이 해당 선수가 쇼트커트를 했고, 여대를 나왔다는 이유로 ‘페미니스트’라며 공격한 것이다. 이런 억측을 시작으로 머리가 짧은 여성 선수들을 보면 “왜 머리를 자르냐”, “혹시 페미(니스트)냐”는 반응이 나오기 시작했다. 금메달을 반납하고 사과하라는 황당 글도 등장했다.
유지혜 사회부 기자
사태 확산에는 언론과 사회의 책임이 크다. 상당수 언론은 온라인상의 혐오·차별 발언을 그대로 옮겼다. 외신에서는 이러한 사이버공격을 ‘성차별적 학대’나 ‘안티 페미니즘 운동’으로 다룬다. 그러는 중에도 제1야당 대변인은 논란의 핵심이 남혐(남성혐오) 용어 사용과 레디컬 페미니즘 비판이라는 궤변을 펼쳤다. “여대 출신 쇼트커트는 90% 이상 확률로 페미”라는 쓸데없는 말을 공론장으로 끌고 온 대가다.

쇼트커트 이전에 집게손가락과 ‘82년생 김지영’이 있었다. 지난 5월 편의점 GS25의 행사 홍보 포스터에서 시작된 특정 손가락 모양이 남성혐오의 표식이라는 주장 역시 일부 커뮤니티에서 시작돼 언론을 거쳐 확산했다. 급기야는 놀이라도 하듯 손가락 모양 색출이 이어졌다. 당시 “어느 홍보물에 남혐을 상징하는 손가락 모양이 사용됐다”, “손가락 논란에 해명했는데 알맹이는 빠져 있다”는 이메일을 받기도 했다. 소설 ‘82년생 김지영’을 읽은 여자 아이돌과 연예인들을 ‘페미’라고 공격하고, 유튜브나 방송 등에서 ‘오조오억’이나 ‘허버허버’라는 단어를 썼다며 ‘남혐’이라고 몰아간 일이 이와 다르지 않다.

더 큰 문제는 집게손가락 논란이 GS25 등 많은 기업·기관의 사과로 이어지면서 잘못된 효능감을 심어줬다는 점이다. 먹금해야 할 일에 기업과 정부 기관들은 고개를 숙였다. 심지어 전쟁기념관은 무궁화 포토존에 그려진 손가락이 문제가 되자 “세심하게 관리하지 못한 점은 임직원 모두의 책임”이라며 사과와 함께 포토존을 없애버렸다. 이 포토존은 집게손가락을 남혐의 의미로 처음 사용했다는 사이트 ‘메갈리아’가 생기기 3년 전인 2012년 설치됐다. “받아준 사람도 잘못”이라는 말은 성범죄 피해자를 탓할 때가 아니라 이럴 때 써야 한다.

먹금이 필요한 사회다. 터무니없는 주장과 무비판적인 수용, 그 과정에서 생긴 왜곡된 효능감이 계속해서 다음 타깃을 찾아가는 이 악순환을 끊어야 한다. 그저 비겁한 ‘온라인 학대’와 비방·혐오가 쉽게 공론장에서 논의돼야 할 의제로 둔갑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한 외신 기자의 말처럼 ‘한국에서 페미니즘이 더러운 단어가 돼버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라도 먹금이 절실하다.

유지혜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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