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병주의역사유적탐방] 테일러 부부와 딜쿠샤

- 2021. 8. 13. 2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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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대문 지하철역 인근의 행촌동에는 한눈에도 수령이 오래된 은행나무 옆에 붉은 벽돌의 외관을 한 2층의 서양식 가옥이 눈에 들어온다.

한동안 폐가로 방치되었던 이 집은 2000년대 중반 '딜쿠샤(DILKUSHA) 1923'이라는 글씨가 새겨진 돌이 발견되면서, 앨버트 테일러와 메리 테일러 부부의 집이었음이 밝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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딜쿠샤 외관 전경
서울 서대문 지하철역 인근의 행촌동에는 한눈에도 수령이 오래된 은행나무 옆에 붉은 벽돌의 외관을 한 2층의 서양식 가옥이 눈에 들어온다. 한동안 폐가로 방치되었던 이 집은 2000년대 중반 ‘딜쿠샤(DILKUSHA) 1923’이라는 글씨가 새겨진 돌이 발견되면서, 앨버트 테일러와 메리 테일러 부부의 집이었음이 밝혀졌다.

‘딜쿠샤’란 힌두어로, ‘이상향’, ‘행복한 마음’이란 뜻이다. 1923년 건축해 1942년 일제에 의해 미국으로 추방될 때까지 부부는 약 20년간 이곳에 살았고, 메리는 ‘호박목걸이(Chain of Amber)’라는 자서전을 집필했다. 앨버트에게 1919년의 3·1 운동은 운명처럼 다가왔다. 메리가 3·1운동 전날인 2월 28일 아기(브루스 테일러)를 세브란스병원에서 출산했다. 세브란스병원은 남대문 밖 복숭아골, 현재 연세재단세브란스빌딩이 위치한 곳이다. 이곳에서 부부는 3·1 운동의 현장을 생생히 목격할 수가 있었다. 앨버트는 병원의 침구 밑에 숨긴 3·1 독립선언서를 발견하고, 동생에게 보냈다. 동생은 도쿄에서 미국으로 이 사실을 알렸다. 2월 28일의 아기 출산, 병원에서의 독립선언서 발견과 해외 타전 등이 테일러 가족에 의해 진행된 것이었다.

앨버트의 생생한 보도는 일본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을 조성하는 데 한몫했다. 1941년 태평양전쟁이 발발했고, 1942년 테일러 가족은 조선총독부의 외국인 추방령에 따라 미국으로 추방됐다. 1945년 미군정청 고문 자격으로 한국에 입국하기도 했던 앨버트는 1948년, 부인 메리는 1982년 미국에서 사망했다. 2006년 2월 서울시는 대한민국을 방문한 앨버트와 메리의 아들 브루스와 그 가족들에게 명예 시민증을 부여했다. 2016년에는 브루스의 딸 제니퍼가 조부모의 유품과 딜쿠샤 거주 당시 소장품 총 394점을 서울역사박물관에 기증했다. 2020년 서울역사박물관에서는 ‘딜쿠샤와 호박목걸이’라는 제목으로 테일러 부부의 삶과, 3·1 운동의 현장을 돌아보는 기증유물 특별전시회를 개최했다. 딜쿠샤에서 우리의 독립을 위해 헌신한 테일러 부부의 모습을 기억해 보기를 바란다.

신병주 건국대 교수, 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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