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홍범도의 귀환
[경향신문]
“내가 죽은 뒤 나의 뼈를 하얼빈 공원 곁에 묻어 두었다가 우리 국권이 회복되거든 고국으로 반장해 다오.” 1910년 중국 뤼순 감옥에서 순국한 안중근 의사가 남긴 유언이다. 반장(返葬)은 객지에서 죽은 이의 시신을 고향으로 옮겨 장사 지내는 것을 뜻한다. 고향은 죽어서라도 돌아가고 싶은 곳이다. 6·25 때 북녘을 떠나온 실향민 상당수가 세상을 떠났다. 그들의 2~3세는 대부분 ‘나중에 통일되면 고향땅에 이장해 달라’는 유언을 듣는다.
독립운동가 홍범도 장군의 유해가 광복절인 15일 국내로 봉환된다. 홍 장군은 1907년 8월 일제가 대한제국 군대를 해산시키자 함경도에서 의병부대를 조직해 싸웠다. 1910년 두만강 건너편 간도로 근거를 옮긴 뒤 1919년 3·1운동 직후 가장 먼저 대한독립군을 조직했다. 일본군 1개 대대를 섬멸한 1920년 봉오동전투의 주역이었으며, 같은 해 김좌진 장군 등과 함께 청산리독립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시베리아 이만에서 독립군 재기를 노리던 홍 장군은 소련의 강제이주 정책에 따라 1937년 중앙아시아 집단농장으로 이주됐다. 해방을 2년 앞둔 1943년 카자흐스탄 크질오르다에서 순국했다.
홍 장군 유해 봉환은 문재인 대통령이 2019년 카자흐스탄 방문 때 요청해 이뤄지게 됐다. 대통령 특별사절단이 14일 공군 특별기를 타고 가 다음날 유해를 봉환한다. 16~17일 국민 추모기간을 거쳐 18일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하기로 했다. 그런데 안장을 닷새 앞둔 13일까지 홍 장군 묘비에 새길 비문을 결정하지 못했다고 한다. 홍범도장군기념사업회가 비문 작성을 의뢰해 놓고는 마음에 안 든다며 원문을 바꿔 작가가 반발하고 있다. 이역만리에서 눈감은 지 78년 만에 유해를 모셔오면서 비문을 놓고 왈가왈부하고 있으니 부끄러울 따름이다.
76번째 광복절을 맞지만 돌아오지 못한 독립운동가 유해가 적지 않다. 만주와 연해주, 중앙아시아는 말할 것도 없고 멕시코와 쿠바 등에도 독립운동가의 묘가 산재해 있다. 서울 용산 효창공원에 안중근 의사 가묘가 조성된 것이 1946년인데 아직도 그 주인은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111년째 봉환하지 못하는 안 의사 유해를 찾는 일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이다.
안호기 논설위원 haho0@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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