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종원이 '맛남의 광장'을 폐쇄한 이유는 따로 있다

김교석 칼럼니스트 2021. 8. 13.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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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남의 광장' 종영, 백종원 브랜드가 받아든 첫 번째 숙제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두 달 전 출연진을 전면 개편하면서 의지를 보였던 SBS 예능 <맛남의 광장>이 결국 종영을 택했다. 선한 영향력을 지향하는 백종원 콘텐츠의 대표적 사례로 약 2년간 좋은 뜻을 갖고 시청자를 만나왔다. 그러나 방송을 시작하고 곧 불어 닥친 코로나로 인해 '지역 특산물을 활용한 신메뉴를 개발해 유동인구가 많은 만남의 장소에서 판매한다'는 기획은 뿌리부터 흔들렸다. 사회적 거리두기까지 시행되면서 출연진 교체, 네이버와 협업해 펼친 인터넷 라이브쇼와 레시피 챌린지, 맛남 랩, 예산시장을 거점으로 한 체험의 광장 개설, 밀키트 상품화 등등 다양한 아이디어를 통해 생존을 모색했다. 그러나 반복되는 패턴, 메뉴에 대한 관심도 하락 등으로 인해 지난주 마지막 촬영을 끝으로 약 2년간의 여정을 뒤로하고 상생의 여정을 마무리할 예정이다.

<맛남의 광장>은 <골목식당>이 한창 때 기획된 예능으로서, 자매 콘텐츠의 성격이 짙다. 백종원의 지식과 브랜드와 영향력을 활용해 골목의 영세 자영업자에게 도움을 주던 것을, 농어민에게로 확장한 버전이다. 이마트를 지휘하는 신세계 정용진 부회장과 화끈하게 통화하며 전국 이마트에 납품한 강원도 못난이 감자를 시작으로 쪽파, 고구마순, 콩나물, 팽이버섯, 이번 주 육우까지 과거 새로운 백종원 레시피가 방송에 뜨면 다음날 해당 재료가 마트에서 품절 날 때 정도는 사회적 파장은 아닐지라도 다루는 식자재마다 실제로 유의미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안 그래도 어려운데 코로나19까지 겹쳐 침체된 지역 농어민들에게 백종원의 존재는 '골목'에서 이미 보여줬듯이 이 난맥상을 일거에 해결해줄 메시아처럼 다가왔다. 시청자 입장에서도 소비를 함으로써 방송에 참여하는 즐거움과 선한 영향력에 동참하는 보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선제적 방역을 내세우며 급작스레 종영을 택한 시점이 조금 의아하다. 반복되는 패턴 속에 백종원 브랜드의 선한 영향력 코드가 무뎌지고, 많은 사람들 앞에서 만드는 왁자지껄한 한판 쿡방을 벌이지 못하며 침체를 겪어온 건 맞다. 그러나 코로나로 인한 제약 속에서 버텨온 게 하루 이틀도 아니고, 지난 6월 애제자이자 일등 공신이었던 김동준, 김희철, 유병재 등을 대신해 곽동연, 최예빈, 최원영을 새로 투입하는 과감하고도 대대적인 분위기 쇄신에 나선 지 두 달밖에 안 됐다. 무엇보다 올 여름 방송가를 백종원 프랜차이즈로 뒤덮은 상황에서 내리는 첫 간판이다.

<맛남의 광장>이 호흡기를 과감히 떼기로 한 결심은 프로그램 자체의 문제라기보다 백종원 브랜드의 전략 차원의 전환 로드맵일 가능성이 있다. 누구보다 메뉴판을 간소화하는 효율과 특색을 강조하고 상생을 이야기하던 그가 이번 여름 이미지 잠식과 피로도에 대해 모를 리가 없을 텐데 다소 무리해 동시다발적으로 여러 프로그램을 런칭했다. 접근 방법은 각기 다르지만 콘텐츠의 기획 의도와 메시지의 핵심은 모두 동일하게 '한식의 세계화'다.

KBS2 <백종원 클라쓰>는 외국인들에게 한식 레시피 요리 교실이고, JTBC <백종원의 국민음식>은 K푸드로의 정착한 글로벌한 음식을 맛보고 이야기하는 교양이다. 티빙의 <백종원의 사계>는 제철 식재료를, 넷플릭스의 <백스프릿>은 집에서 술을 담가 먹던 가양주 문화의 맥이 사라진 데에 대한 아쉬움을 담은 전통주 콘텐츠로 예상된다. KBS1 <다큐인사이트> 여름 특집푸드 인문 다큐멘터리 '냉면 랩소디'의 주인공으로도 나섰다.

콘텐츠는 늘 볼거리 이상의 의도를 담고 있었다. 쿡방의 시대가 종식된 이후에도 여전히 잘나가는 이유다. 2015년 집밥 혁명을 일으키며 요리를 살림에서 교양과 문화 영역으로 옮겨 시장을 개척했고, 그 이후 소탈한 차림과 말투로 골목의 작은 가게들과 농민들을 찾아가 상생의 화합의 선한 영향력을 내세우며 위생 교육을 비롯한 실질적인 인식개선을 이룩해냈다. 그리고 이제는 한식 홍보라는 새로운 가치에 초점을 맞추고 영향력을 발휘하고자 한다. 문제는 집밥, 우리네 인생을 담아낸 우화이자 부지런을 떨면 맛볼 수 있는 골목식당과 달리 한식의 세계화는 일상에서 싹트고, 친근함이 체감되는 콘텐츠보다 한 발짝 떨어져 있는 보다 거시적 주제라는 점이다.

게다가 풀어가는 방식이 기획의 참신함만큼이나 효용과 신선함이 있던 이전에 비해 자기복제의 성향, 예전 콘텐츠의 답습이 부쩍 눈에 띈다. <백종원 클라쓰>는 MBC <백파더>, tvN <집밥 백선생>과 같은 요리수업 라인이고, <백종원의 국민음식>은 tvN <스트리트 푸드파이터> 시리즈와 JTBC <양식의 양식>이 즉각 떠오른다. <맛남의 광장>도 애매해진 것이 양세형과의 호흡이 계속되고, <마리텔>의 향수가 느껴지는 온라인 방송, 요리 교실, 선한 영향력에 대한 호응이 감소하면서 흥미롭지 않은 홈쇼핑을 한 시간 넘게 보는 듯한 기시감이 든다.

진짜 장사꾼은 물건이 아니라 마음을 판다. 돈을 기꺼운 마음에 지불하게 되고, 쓰는 기분 좋다. 그렇게 단골을 만들고 입소문이 퍼진다. 이를 회사에서 쓰는 말로 옮기면 브랜딩이다. 백종원은 바로 이 지점에서 진정성과 사업수완과 쇼맨십과 인간적 매력이 모두 갖춰진 판타지스타에 가깝다. 방송인으로서도 콘텐츠의 완성도와 전 세대를 아우르며 인지도가 높고 이미지가 좋은 캐릭터를 가진 독보적 커리어를 쌓아왔다.

허나 이번에 꺼내든 한식의 세계화를 다루는 콘텐츠들은 이전까지와 달리 그리 열렬한 호응을 이끌어내지 못하고 있다. 주제가 조금 멀게 느껴지는 점도 있겠지만, <맛남의 광장>이 힘들어진 이유와 마찬가지 문제가 공통적으로 보인다. 메시지를 담은 의도가 아무리 좋고, 새롭고, 흡입력 있더라도, 아무리 백종원이라도 이제는 볼거리 차원에서의 정체와 자기복제에 대해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맛남의 광장> 종영은 2015년 이후 백종원 브랜드가 받아든 첫 번째 숙제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SBS, KBS, 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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