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픽처] 영화는 현실이 됐다..MLB '꿈의 구장' 경기에 부쳐
[SBS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그것을 지으면 그들이 올 거야(If you build it, they will come)"
1989년 개봉한 '꿈의 구장'(Field of Dreams)은 다소 황당한 줄거리의 영화다. 신의 계시를 받은 주인공 레이(케빈 코스트너)가 '그들'을 위해 '그것'을 만드는 이야기다.
뛰어난 스포츠 영화는 대부분 '스포츠' 영화가 아닌 스포츠 '영화'다. 스포츠에 방점을 찍겠다면 굳이 영화를 볼 필요가 없다. 수많은 스포츠 경기가 각본으로는 쓸 수도 없는 환상적인 드라마를 만들어낸다. 그럼에도 영화가 위대한 것은 스포츠가 선사하는 희로애락에 정서적 리듬까지 얹혀 극화시킨다는 것이다.
'꿈의 구장'은 야구 영화가 아닌 꿈에 관한 영화라고 볼 수 있다. 영화는 존 킨셀라의 일대기를 요약하는 흑백 영상으로 시작한다. 아일랜드계 이민자인 킨셀라는 야구광이었다. 그는 시카고에 정착하자마자 화이트 삭스의 열혈 팬이 된다. 1919년 우승까지 노렸던 화이트 삭스는 월드시리즈 승부조작 사건(블랙 삭스 스캔들)으로 나락으로 떨어진다. 팀의 간판타자인 조 잭슨(레이 리오타)은 이 사건에 가담한 혐의로 7명의 동료와 함께 선수 영구 정지 처분까지 받는다.
존의 아들인 레이는 야구광이었던 아버지의 젊은 날을 뚜렷하게 기억하는 한편, 무기력하게 늙어갔던 노년은 희미하게 떠올렸다. 그리고 자신은 아버지처럼 살지 않겠노라고 다짐한다.
아버지가 죽은 후 레이는 결혼을 하고 딸을 낳은 후 아이오와의 시골 마을에 정착한다. 옥수수밭을 일구며 농부의 삶을 살아가던 그에게 어느 날 하늘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것'과 '그들'에 대한 미스터리에 빠졌던 레이는 옥수수밭을 밀어 야구장을 만든다. 모두가 미친 짓이라고 했던 그때 '맨발의 잭슨'과 7명의 선수들이 나타난다.
50년 만에 야구공을 잡은 조는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레이에게 묻는다.
"여기가 천국인가요?(Is this heaven?)"
이 대사는 영화에 여러 차례 등장한다. 그들이 말하는 '천국'은 천상에 위치한 이상 세계가 아니다. 꿈이 실현되는 공간과 순간을 지칭하는 말이다. '조 잭슨과 7명의 선수들에게 면죄부를 주는 걸까'라는 생각도 할 수 있지만 영화를 보고 나면 그러한 생각은 사라진다. 이는 소재일 뿐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건 꿈을 향한 열망과 열정의 소중함이다.
이 작품은 야구 영화로는 '머니볼'(2011)보다 앞서 아카데미 시상식 작품상 후보에 올랐다. 그해 오스카 트로피는 '레인 맨'에게 돌아갔지만, 이 영화는 야구 소재 영화의 명작으로 지금까지도 회자되고 있다.
그리고 32년 만에 영화 같은 현실이 펼쳐졌다. 메이저리그가 영화 속 무대를 재연한 '꿈의 구장' 매치를 기획한 것.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2019년 영화 촬영지였던 아이오와 다이어스빌의 옥수수밭을 매입해 8,000석 규모의 야구장으로 탈바꿈시켰다.
영민한 기획력과 추진력은 MLB의 수준을 보여줬다. 이 이벤트의 진짜 매력은 정서의 재현에 있었다. 홈 팀인 시카고삭스는 영화에 등장했던 올드 유니폼을 입었다. 나무로 만들어진 점수판도 전자식이 아니었다. 팀이 점수를 올릴 때마다 두 명의 사람이 올라가 직접 점수판을 매만졌다. 조명도 현재의 돔 구장에서 볼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해가 지면서 선수들의 유니폼에 그림자가 드리울 정도였다. 그러나 붉은 노을 너머의 푸른 옥수수밭과 그 중심에 위치한 다이아몬드 필드는 다시 보기 힘든 장관이었다.
원래대로 라면 이 경기는 2020년 8월 14일 열렸어야 했다. 지난해 대진은 시카고 화이트삭스와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대결이었기에 어쩌면 한국의 김광현이 마운드에 오를 수도 있었다.
그러나 난데없는 코로나19의 습격은 많은 계획을 바꿔놨다. '꿈의 구장' 매치도 예외가 아니었다. 연기는 했지만 취소는 아니었다. 이 대형 이벤트는 1년을 연기해 2021년 8월 12일(현지시간) 열렸다. 대진은 아메리칸 리그 전통의 강호 시카고 화이트삭스와 뉴욕 양키스로 바뀌었다.
'꿈의 구장' 이벤트의 포문을 연 것 영화의 주연 배우 케빈 코스트너였다. 어느덧 백발의 노인이 된 코스트너는 옥수수밭을 헤치고 야구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화이트삭스와 양키스의 선수들도 뒤를 이었다. 영화의 명장면을 재연한 등장이었다. 이날 야구장에는 내내 '꿈의 구장' OST의 메인테마곡이 흘렀다.
영화에는 경기 장면이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그들의 꿈이 이루어졌음을 암시하는 장면으로 막을 내린다. 이날 시카고 화이트삭스와 뉴욕 양키스 선수들은 멋진 경기로 영화의 여백을 열정과 환희로 채웠다.
양 팀은 총 8개의 공을 옥수수 밭으로 날려 보냈다. 외야가 옥수수밭인 탓에 관중들이 홈런볼을 잡을 기회는 없었지만 드넓은 밭으로 사라진 공을 바라보는 것도 이색 재미였다.
화이트삭스와 양키스는 사이좋게 4개의 홈런을 주고받으며 총 17점의 점수를 냈고 역전과 재역전을 거듭하며 아이오와의 밤을 뜨겁게 달궜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It ain't over till it's over)라는 요기 베라의 명언은 이날 경기에도 적용됐다.
화이트삭스의 승리가 유력해 보였던 9회 초, 양키스의 스타플레이어 애런 저지는 화이트삭스의 특급 마무리 리암 헨드릭스를 상대로 두 번째 홈런을 때렸다. 7:6까지 추격한 양키스는 지안카를로 스탠튼의 투런 홈런으로 역전에 성공했다. 야구 경기에서 가장 재밌다는 케네디 스코어(8:7)가 되자 경기장은 흥분의 도가니가 됐다.
그러나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9회 말 화이트 삭스의 간판타자 팀 앤더슨은 2점짜리 역전 홈런으로 홈 팬에게 감동의 승리를 안겼다. 포효와 함께 홈 플레이트를 밟은 팀 앤더슨은 기다리고 있던 팀 동료들과 승리의 기쁨을 만끽했다.
다이어스빌은 인구 4천 여 명이 사는 시골 마을이다. 이곳에서 메이저리그 경기가 열린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무엇보다 '꿈의 구장' 매치는 의미와 재미, 볼거리까지 잡은 올해 메이저리그 최고의 경기였다.
이처럼 현실을 때로 영화를 능가하기도 한다.
ebad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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