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기자들 "나쁜 페미는 급진 페미" 공지에 '전례없는 논쟁'

박서연 기자 2021. 8. 13. 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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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노동조합(위원장 김인원)이 매주 발행하는 '조선노보'에 한 조선일보 기자의 기고문을 실었다. 조선일보가 2주 전 기자들에게 부정적인 의미로 페미니스트라는 단어를 기사에 쓸 땐 급진 페미니스트라는 용어를 사용하라고 공지했는데, 이에 대한 반박성 글이다.

지난달 30일 조선일보 편집국 부국장 겸 디지털총괄에디터는 사내 메신저 '슬랙'을 통해 '한 디지털 팩트체커 선배가 앞으로 우리 신문이 부정적인 의미로 페미니스트라는 단어를 쓸 때 급진 페미니스트로 쓰자고 했다. 편집국장도 이에 동의했으니 기사 작성 시 참고하라'고 공지했다.

조선일보의 A기자는 이어 "우리 신문이 이 사안을 그럼에도 '급진적 페미니스트라고 공격받았다'고 쓴다면 이것은 사건의 실체를 왜곡하는 일이다. 조선일보 기자들은 누구나 팩트는 팩트 그대로 보도해야 한다고 훈련받았고 지금도 다들 그 지침을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 공지는 사안을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다루지 말라는 뜻처럼 자칫 읽힐 수 있어서 당혹감을 안긴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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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 "전례 없는 수준의 논쟁"…"지금이라도 철회해야" 주장도
기자들, 지난달 도입된 '디지털 팩트체커' 역할 두고도 우려

[미디어오늘 박서연 기자]

조선일보 노동조합(위원장 김인원)이 매주 발행하는 '조선노보'에 한 조선일보 기자의 기고문을 실었다. 조선일보가 2주 전 기자들에게 부정적인 의미로 페미니스트라는 단어를 기사에 쓸 땐 급진 페미니스트라는 용어를 사용하라고 공지했는데, 이에 대한 반박성 글이다.

지난 12일 조선일보 노조가 발행한 '조선노보'를 보면 노조는 공지 이후 “사내에서 전례 없는 수준의 논쟁이 진행됐다”며 “공지 다음 날 블라인드에는 공지 내용을 비판하는 글이 올라왔다. 이후 12일까지 관련 글 3개가 추가로 올라왔고 총 129개 댓글이 달렸다”고 밝혔다.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조선일보 사옥. 사진=미디어오늘.

지난달 30일 조선일보 편집국 부국장 겸 디지털총괄에디터는 사내 메신저 '슬랙'을 통해 '한 디지털 팩트체커 선배가 앞으로 우리 신문이 부정적인 의미로 페미니스트라는 단어를 쓸 때 급진 페미니스트로 쓰자고 했다. 편집국장도 이에 동의했으니 기사 작성 시 참고하라'고 공지했다. 이 같은 공지는 양궁 국가대표팀 안산 선수를 둘러싼 페미니스트 논란과 관련한 기사들이 조선일보에서도 보도되면서 나왔다.

한 디지털 팩트체커는 긍정적 의미의 페미니스트는 '여권신장론자'와 '여성에게 친절한 남자'를 뜻하고 부정적 의미의 페미니스트는 여권신장과 남성혐오를 과격하게 주장하는 사람이라고 자의적으로 정의했다. 이 같은 내용의 공지를 전하며 조선일보의 온라인 대응 자회사인 조선NS 기자들의 실명을 거론했고, '대개 여기자들'이라는 표현을 써 문제가 됐다. 공지는 이후 보도들에 반영됐다.

▲지난달 31일자 조선일보 기사. 지난달 30일 공지가 기사에 반영됐다.
▲지난 2일자 조선일보 기사. 지난달 30일 공지가 기사에 반영됐다.

노조는 여러 조합원이 기고문을 보내왔는데, 한 명의 기고문을 채택했다고 전했다. 조선일보의 A기자는 해당 기고문에서 “이 사안은 슬쩍 넘어갈 해프닝이 아니다. 우리 매체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독자, 그리고 디지털 세상을 읽고 소통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분기점이 될 수 있다. 단순한 불평도 징징거림도 아닌, 신문을 제대로 만들고 싶어하는 조선일보 기자들의 목소리임을 회사가 인지하고 대책을 세워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글을 썼다”고 운을 뗐다.

조선일보의 A기자는 “먼저 말하고 싶은 것은 페미니스트는 긍정적인 의미도 부정적인 의미도 아니라는 것이다. 나쁜 것도 좋은 것도 아니다. 페미니스트라는 낙인을 찍어서 누군가를 무조건 공격하고 비난하는 것이 나쁜 것일 뿐이다. 실제로 안산 선수는 급진적 페미니스트라고 공격받은 것이 아니라, '페미니스트 아니냐'는 의혹 때문에 공격을 받았다”고 지적했다.

조선일보의 A기자는 이어 “우리 신문이 이 사안을 그럼에도 '급진적 페미니스트라고 공격받았다'고 쓴다면 이것은 사건의 실체를 왜곡하는 일이다. 조선일보 기자들은 누구나 팩트는 팩트 그대로 보도해야 한다고 훈련받았고 지금도 다들 그 지침을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 공지는 사안을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다루지 말라는 뜻처럼 자칫 읽힐 수 있어서 당혹감을 안긴다”고 비판했다.

이 같은 공지는 '조선일보=일베' 프레임으로 오해받기 좋다고도 짚었다. A기자는 “외부에선 이 순간도 조선일보를 걸핏하면 '일베' 프레임으로 공격하는데, 이런 지침은 '역시나 일베 신문이었다'는 오해를 받기 딱 좋은 것이다. 왜 우리가 자의적으로 용어를 바꿔가면서 사태를 해석하고 보도해서 이런 오해를 사야 하나. 오히려 오해를 하나라도 덜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시점”이라며 “지금이라도 이 권고(사실상 지침)를 철회했으면 한다”고 주장했다.

'대개 여기자들'이라는 표현에 A기자는 “최근 문제가 된 어떤 사안에서도 대책을 이야기할 때 조선일보 편집국은 '대개 남기자들'이라고 이야기하지 않았다. 이것이 여성과 남성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우리가 정부를 비판하거나 무능한 정치권이나 부패한 공권력을 지적할 때 그 기사를 쓰는 기자의 성별이 여성인지 남성인지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말이다”고 지적했다.

A기자는 이어 “그런데도 이번 공지는 페미니스트로 공격받는 여성 선수에 대한 보도를 지적하면서 굳이 '대개 여기자들'이라는 표현을 썼다. 굳이 '성적 감수성'이라는 말을 들먹일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기자로 일한다. 여기자로만 일하지 않고, 남기자로만 일하지 않는다. 보도 방향에 대한 이야기는 따라서 기자를 향한 것이어야 한다. 여기자나 남기자가 아니라”고 조언했다.

한 팩트체커의 잘못된 용어 해석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A기자는 “페미니스트는 여성에게 친절한 남자를 일컫는 말이 아니다. 페미니즘은 생물학적 성 때문에 차별받는 것을 반대하는 경향이나 목소리를 일컫는 말일뿐”이라며 “우리는 저널리스트로서 사회의 다양한 면을 취재하고 객관적으로 사태를 전달하며 사회 곳곳의 억울함과 고충을 듣기 위해 일한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이미 모두 페미니스트다. 조선일보가 지금껏 사회와 진화를 관찰하고 기록해왔으며 앞으로도 그런 언론의 역할을 해줄 것이라고 믿는 듯 말이다”라고 했다.

조선일보 기자들 “디지털 팩트체커 명확한 역할 설정 필요”

조선일보 기자들은 “이 공지를 최초로 제안한 디지털 팩트체커의 명확한 역할 설정도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노조는 노보에서 “이번 공지는 디지털 팩트체커가 최초 제시한 의견을 편집국이 받아들이면서 나왔다. 결과적으로 팩트체커 개인 의견이 편집국 기사 작성 방향과 기사 성격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 셈이 됐다”고 지적했다.

지난달 26일 조선일보는 디지털 팩트체커 제도를 도입했다. 지난 6월 기사 내용과 관련 없는 조국 전 장관 부녀와 문재인 대통령 일러스트를 사용해 논란이 되자 재발 방지 대책으로 디지털 팩트체크팀이 가동된 것. 도입 취지는 디지털로 출고된 기사를 실시간으로 살펴 문제가 될 것 같은 기사 내용이나 사진·그래픽 등을 발견하면 디지털 속보 및 편집을 담당하는 데스크들에게 알리기 위해서다.

▲지난 6월30일 조선일보는 28면 한 면을 할애해 부적절한 일러스트 사용에 대해 설명했다. 재발 방지 대책 중 하나로 디지털 팩트체커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조선일보는 지난 6일자 사보에서 디지털 팩트체커 4명과 디지털 편집체커 1명 등 총 5명을 임명했다고 밝혔다. 5명의 팩트체커는 전원 남성이다. 이들은 19기~23기 조선일보 입사자들이자, 부장과 부국장을 지낸 퇴직 기자 출신이다.

팩트체커가 제시한 의견은 기존에 설정한 역할 범위를 넘어섰다는 지적이다. 조선일보의 B기자는 “페미니스트와 급진 페미니스트의 차이를 규정하고 정의한 팩트체커 활동이 디지털 콘텐츠 적정성 여부를 가린 것이냐, 언론 윤리 저촉 여부를 점검한 것이냐. 이런 식이면 팩트체커는 편집국에서 생산하는 모든 기사 방향을 좌우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조선일보의 C기자도 “팩트체커로 임명된 선배들이 언론계 경험이 풍부한 것은 맞지만 안산 선수를 둘러싼 페미니스트 논쟁의 성격을 규정하는 건 엄연히 다른 영역이다. 팩트체커 제도 취지를 살릴 수 있는 명확한 역할 설정이 필요할 것 같다”고 말했다.

팩트체커 구성이 다양성 측면에서 미흡하다는 지적도 있었다. 조선일보의 D기자는 “팩트체커 간 논의 과정이 어떻게 이뤄지는지 알 수 없지만 구성이 좀 더 다양했다면 이번과 같은 의견이 그대로 제시되지는 않았을 것 같다”고 말했다. 조선일보의 E기자도 “디지털 독자에 맞춰 팩트체커도 좀 더 다양한 성별·연령대로 구성해야 한다”고 했다.

[관련 기사 : 조선일보 기자들, “나쁜 페미는 급진적 페미로 써라” 공지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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