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꼬박꼬박 '슬의생2'를 챙겨보느냐고 물으신다면

정덕현 칼럼니스트 2021. 8. 13.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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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다구니 쓰는 세상, '슬의생2' 선의 가득한 인물들이 주는 위로


[엔터미디어=정덕현의 네모난 세상] 드라마는 현실을 반영한다. 현실이 갑갑하고 뒷목을 잡게 만들면 드라마도 우리의 뒷목을 잡게 만든다. 만일 현실의 권력자들이 그 힘을 이용해 치부하려 들고 있다면, 드라마 속에도 그들은 어김없이 등장해 우리를 화나게 한다. 물론 드라마가 그들을 다루는 방식은 현실과는 정반대다. 현실이 하지 못하는 판타지를 사이다로 그려내는 것. 그래서 드라마 속 사이다는 시원하지만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최근 드라마들이 악다구니로 가득 채워지고, 공정함이나 공평함 아니 최소한의 정의도 지켜지지 않는 세상을 우리 앞에 내미는 건 그래서 거꾸로 말하면 더 이상 믿기 어렵게 굴러가는 현실의 반영인 셈이다. 죽어도 죽어도 어떻게든 되살려 복수를 하는 <펜트하우스>의 세계나, 공적 정의가 사라진 세상에서 사적 복수를 정의로 둔갑시키는 <악마판사>, <모범택시>, <빈센조> 같은 드라마들이 보여주는 현실은 악의로 가득 차 있다. 믿을 것 없는 세상이다. 그러니 악의로라도 저들과 싸워 저들이 무너지는 걸 보고 싶다...

이런 드라마들 속에서 tvN <슬기로운 의사생활2>는 그래서 이례적이다. 아니 저들 드라마들이 보여주는 세상과는 정반대의 그림을 정반대의 방식으로 그려낸다. 극적인 사건의 숨 막힐 듯한 전개 같은 건 없다. 아주 천천히 담담하게 일상을 훑어나간다. 계속 보다보면 드라마를 보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율제병원 사람들의 하루하루를 담아내는 다큐멘터리를 보고 있는지 착각이 들 정도다. 하지만 이상하다. 이 담담함이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무엇이 이런 이끌림을 만드는 걸까.

<슬기로운 의사생활>은 율제병원이라는 공간을 중심으로 거기서 생활하는 99학번 의대 동기생들의 특별할 것 없는 삶을 다루는 드라마다, 시즌2로 오면서 이야기는 더 일상적으로 바뀌었다. 시즌1이 매회 어떤 하나의 주제를 갖고 이야기를 풀어감으로써 좀 더 극적인 느낌을 줬다면, 시즌2는 이익준(조정석), 안정원(유연석), 김준완(정경호), 양석형(김대명) 그리고 채송화(전미도)가 환자를 겪는 일상과 그들 사이에 벌어지는 우정과 사랑 같은 이야기들로 그저 담담히 채워져 있다.

그래서일까. <슬기로운 의사생활>에는 악역이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급박한 상황이 만들어내는 감정이 표출되는 경우가 종종 있고, 때론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해 말실수를 하게 되는 일도 있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이렇게 무언가 잘못한 일을 한 이들에게도 그걸 다시 만회할 기회를 제공하고, 그들은 어김없이 자신의 잘못이나 실수를 사과하는 모습을 보인다.

자궁적출을 해야 될 위기를 모면한 산모의 수술을 잘 끝내고 나오며 추민하(안은진)가 양석형에게 말실수를 하고 사과하게 되는 에피소드가 그렇다. 만일 산모를 살리기 위해 자궁적출을 했다면 환자 가족이 이해하지 못했을 거라고 추민하가 말하자, 양석형이 결코 그렇지 않다며 환자 가족도 환자의 생명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을 거라 말했던 것. 실제로 환자의 남편은 "사람이 죽고 사는데 사람 목숨이 중요하지 전 자궁은 생각도 못했다"고 말하자 추민하는 자신이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는 걸 깨닫고 양석형에게 재차 "죄송하다"고 말한다.

8회에서 집중적으로 다뤄진 나이든 부모가 갖게 된 병을 두고 벌어지는 자식과 부모 사이의 갈등에서도 마찬가지로 드라마는 인물들에 선의를 드러낸다. 이제 팔순 가까이 된 노모가 수술을 해야 더 살 수 있다는 말에 수술비 같은 현실적인 문제로 고민하는 아들이 악역처럼 등장하지만, 그 인물 역시 30년 지기가 하루아침에 사망하는 일을 겪고는 돈보다 중요한 삶을 깨닫고 노모의 수술과 병간호를 하는 모습을 보인다.

사실 노부모의 병을 두고 자식들이 갖게 되는 고민은 정답이 있다고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쉬운 상황이 아니다. 수술로 더 살 수 있게 해줄 수도 있지만, 수술 자체가 큰 충격이 되어 오히려 삶을 단축시킬 수도 있다. 그렇다고 더 살 수 있는 기회를 저버리는 건 자식으로서는 도무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렇지만 현실적인 문제까지 겹치면 오히려 부모가 자식에게 수술을 포기하자고 권하는 일까지 벌어진다. 이러니 어디 정답이 있다 말할 수 있을까.

의사라고 해서 이런 일에 예외가 아니라는 걸 <슬기로운 의사생활2>는 안정원의 어머니 정로사(김해숙)가 수두증을 치매로 오인해 고통스러워하는 에피소드와, 채송화의 어머니가 파킨슨병을 갖게 됐다는 사실을 통해 보여준다. 정로사는 치매가 아니라는 사실만으로도 행복해하고 채송화의 어머니는 애써 별거 아니라고 말하지만 어디 자식 입장에서 마음이 편할 수 있을까. 특히 환자들을 치료하는 의사라는 직업을 가진 자식이라면 더더욱.

하지만 이 노년에 갖게 된 병 앞에서도 <슬기로운 의사생활2>가 보여주는 건 선의로 가득 찬 사람들이 언제나 주변에 존재한다는 믿음이다. 정로사의 옆에는 평생의 절친으로 친구라는 표현으로는 부족한 '반려자' 같은 주종수(김갑수)가 있다. 조금이라도 힘겨워하는 친구를 위해 먼길을 달려오고 자기 일처럼 챙겨주는 이런 친구가 있다면 홀로된 노년도 쓸쓸하지 않을 거라는 걸 드라마는 얘기해준다. 또 힘겨워하는 채송화 옆에는 뒤에서 남모르게 그를 챙겨주며 웃게 만들려 애쓰는 이익준 같은 친구가 있다.

지병이 있어 김준완과 헤어지게 된 이익순(곽선영)을 김준완의 친구이자 이익순의 오빠인 이익준은 어떤 시선을 바라보고 있었을까. 그건 친구를 아끼는 마음과 동생을 아끼는 마음이 교차함으로써 어떤 내색도 하지 못하는 이익준의 모습을 통해 드러난다. 결국 동생이 여전히 김준완을 마음속에 두고 있고, 김준완 역시 동생을 잊지 못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된 이익준은 자기만의 방식으로 두 사람의 오작교가 되어주는 선택을 한다. 이런 사람이 우리 주변에 있다면 제 아무리 악다구니 가득한 현실이라도 웃으며 버텨낼 수 있지 않을까.


어딘가 가정에 문제가 있어 보이는(아마도 가정폭력이 아닐까 싶지만) 장겨울(신현빈)의 그 겨울 같은 무심한 얼굴은 봄 같은 자상함과 따뜻함이 있는 안정원 앞에서 비로소 환하게 미소를 띤다. 아마도 <슬기로운 의사생활2>가 말하려는 건 우리 주변에 분명 이익준이나 안정원 같은 인물들이 존재한다는 믿음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평범한 일상들이 촘촘히 채워져 있고, 그다지 극적인 전개의 이야기가 아니라고 해도 <슬기로운 의사생활2>에 기꺼이 빠져든다. 그 선의가 끝내 존재한다는 걸 믿고 싶으므로.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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