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망국 왕' 고종과 문재인

기자 2021. 8. 13.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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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식 주필

기쁨보다 걱정 앞서는 광복절

현 상황과 조선 말 공통점 많아

을사오적 뺨칠 매국노 될 수도

신문고 못 치게 대궐 경비 강화

국가 미래는 뒷전 ‘태양왕’ 흉내

3권 장악 文정권도 언론 옥죄기

광복절은 해마다 돌아오지만, 내년 대선을 앞둔 올해는 그 의미가 사뭇 다르다. 선거 결과에 따라 전혀 다른 나라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19세기 후반이 처참한 망국의 시대였다면 20세기 후반은 위대한 도약의 시기였는데, 다시 국운이 쇠퇴할 조짐을 보인다. 해방의 기쁨보다 망국의 걱정이 앞서는 슬픈 국경일이다. ‘죽창가 반일’이 아니라 왜 식민지로 전락했는지,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현세대는 제대로 하고 있는지 성찰할 때다. 안타깝게도 조선 말기 고종(高宗) 통치와 문재인 국정 간에는 유사한 측면이 너무 많다. 고종에 대해선 계몽·개혁군주라는 평가도 있지만, 망국의 책임에 비하면 무의미하다.

우선, 안보를 경시하고 동맹에 실패했다. 강대국 함대가 몰려오는데도 부국강병을 외면했다. 청나라는 열강에 밀리고 내부 개혁도 실패해 쇠망하는데, 친중 사대주의에 매달렸다. 러시아 남하를 견제하기 위해 미국·영국·일본이 손잡았는데, 아관파천으로 러시아에 줄 섰다. 10년 섭정했던 대원군은 쇄국을 고집했지만 병조판서에 무신을 임명하고, 조총 부대를 신설하는 등 국방을 강화했다. 고종은 이를 적폐 취급하며 뒤집었다. 최근 전체주의로 퇴행하는 시진핑 체제에 맞서 미국 등 서방국들이 연대를 강화하는데, 문 정부는 한사코 중국 편에 서려 한다. 한·미 동맹을 허물고 ‘강한 군대’는 뒷전이면서 북한 독재자에겐 굽실댄다.

둘째, 국익보다 이권 카르텔, 국가 재정보다 선심 쓰기가 먼저다. 4개 항의 을사늑약은 이완용 요구로 ‘일본 정부는 대한국 황실의 안녕과 존엄 유지를 보장한다’는 제5항이 추가됐다. 군인 녹봉을 주지 못해 임오군란이 일어났을 때 국가로서의 조선은 끝났다. 그렇지만 왕실과 민 씨 일족은 사치를 멈추지 않았다. 문 대통령도 적자 국채 발행을 마다하지 않는다. 인구 급감에도 공무원을 대거 늘리고, 연금개혁은 외면한다. 건강보험과 고용보험을 재정 파탄으로 내몬다. 탈원전은 고종이 ‘동양의 엘도라도’ 운산금광을 팔아먹은 것 이상의 매국이다.

셋째, 갈수록 독재를 강화한다. 고종은 뒤늦게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국정 쇄신에 나섰지만, 입헌군주제 아닌 절대군주제를 고집했다. ‘짐이 곧 국가다’의 태양왕 루이 14세보다 더한 절대왕권을 헌법(대한국 국제)에 담았다. 세계가 ‘허울뿐인 나라의 시대착오적 9줄짜리 헌법’이라고 비웃었지만, 일본은 쾌재를 불렀다. 황제만 굴복시키면 국권을 뺏을 수 있기 때문이고, 실제로 그렇게 됐다. 영의정 이유원이 “신문고 치는 사람이 이어진다”고 보고하자 고종은 “대궐 문을 엄중하게 지키지 않기 때문”이라며 문제 해결보다 직언 봉쇄를 택했다. 행정·입법·사법을 장악한 문 정권이 언론에 족쇄를 채우려는 것과 같은 발상이다.

넷째, 내 편은 무조건 감싼다. 동학 봉기의 도화선인 고부군수 조병갑은 귀양 갔으나 곧 사면되고, 대한제국 민사국장에 임명돼 동학 2대 교주 최시형에게 사형을 선고한다. 소신 있는 관리들이 목숨을 걸고 “조정 대신을 10여 명이 돌아가며 하는데 모두 자격 미달”이라는 상소를 올렸지만 헛일이었다. 문 대통령의 코드·회전문 인사, 조국·한명숙 비호는 이에 못지않다.

다섯째, 책임 회피와 유체 이탈 화법이다. 고종은 어전회의에서 을사늑약을 논의하다가 “일본 정부와 협의하라”고 지시하고 내전으로 들어가 버렸다. 이토 히로부미는 이를 빌미로 대신들 개별 입장을 물어 찬반 5 대 3이라며 통과를 선언했다. 최근 한미훈련과 관련, 문 대통령이 군 수뇌부를 청와대로 불러 “(미국 측과) 신중하게 협의해서 하라”고 했던 것을 연상케 한다.

고종이 등극했을 때 조선은 이미 나라도 아니었다. 철종 장례식 비용도, 청나라에 보낼 사신 경비도 대지 못할 정도였다. 그래도 고종 친정 이후 10년은 외세의 침략이 본격화하지 않아 얼마든지 대응할 수 있었다. 청일전쟁까지 다음 10년 동안에도 세계 변화에 올라탈 수 있었다. 기회를 다 놓쳤다. 고종과 을사오적은 썩은 고목에 마지막 도끼질을 한 사람들이다. 번듯한 대한민국을 망친다면 훨씬 더 나쁜 매국노가 된다. 현 정권에 10년 집권 기회를 줄 것인가, 말 것인가. 1910년엔 권력층 실패로 나라가 망했지만, 지금은 국민 선택에 흥망이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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