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청년 5천명 떼죽음 당한 그 사건[한국 역사를 바꾼 오늘]
존슨, 朴에 전투부대 노골적 요구
파병장병들에게 비밀리 '일수' 지급
용병 논란 피하려 출처불명 예산사용
미국 장병 전투비용에 비하면 '땅콩값'
파병 먼저 제안한 측은 박정희 정권
"박정희, 월남파병을 알라딘 램프로 봐"

[미국 기밀문서 다운로드]
CBS노컷뉴스가 미국 뉴저지 버건 커뮤니티 칼리지 이길주 교수(역사학)를 통해 입수한 대화록에는 린든 B 존슨 대통령이 박정희 대통령에게 1개 사단 규모의 병력을 베트남에 파병해 줄 것을 거듭 요구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런데 그다음 존슨 대통령의 발언 일부가 지워져 있다.(위 사진 왼쪽 중간 부분)
지우기 전 원본에는 어떤 내용이 담겼을까?
추가로 입수한 원본에는 '의회에서 대외 원조를 하지 말라고 했지만, 박정희 대통령이 베트남에 비전투부대를 파병해서 그런 우려를 불식했다'는 취지의 존슨 대통령의 언급이 들어있다.

3페이지로 돼있는 회담록 말미엔 존슨 대통령이 결론 삼아 다시 한번 추가 파병을 압박한 것으로 돼 있다.

그때까지 한국은 이미 두 차례 '비전투' 병력 2천 명을 파병했었다. 이날 존슨이 요구한 1개 사단이란 '전투부대'를 말하는 것이다.
정상회담 이후 박정희는 전투사단 파병을 결정하고 65년 8월 13일 논란 끝에 전투부대 파병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그런데 국회 통과 과정에서 파병 대가로 군수품과 장병들 수당까지 미국에 지원받기로 한 사실이 새롭게 드러났다.
6월 23일 윈스럽 브라운 주한미국 대사가 올린 전문에 따르면 브라운 대사는 당시 해당 내용을 발설한 김성은 국방장관에게 △수당 지급은 비밀이었다는 사실을 주지시키고, △앞으로도 언급하지 말고 △어쩔 수 없는 경우는 가급적 별일 아닌 채 하라고 신신당부했다.(아래사진 붉은상자)
당시 미국 정부는 한국군 파병 장병 수당을 1일 단위(per diem)으로 지급했으며, 통상적인 대외 지원금 항목이 아닌 출처 불명의 돈으로 지불했다. 국무부는 이에 대해 "용병 논란을 피하기 위해서"였다고 기록하고 있다.(아래사진 파란상자)

전투부대로는 맹호부대가 처음 파병된 이후 미국의 전투병 파병 요구는 이제 노골적으로 바뀐다. 이듬해 1월 미국은 두 배 증파를 한국정부에 요청할 것을 주한미국대사관에 지시한다.
하지만 대사관은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며 최대한 관대하자고 본국을 설득한다.
66년 1월 21일 대사관이 국무부에 올린 전문에는 △한국 내 전투력의 저하, △박 대통령의 정치적 난관 봉착, △상당한 예산의 수반 등의 문제가 나열돼 있다.
물론 '상당한 예산 수반' 항목에서는 미국군 투입에 비하면 비용이 절감된다는 이점도 함께 적시돼 있다.(아래 붉은상자)
특히 한국군이 파병 증원에 대한 대가를 요구할 경우 1일 수당 25% 인상안이 제시돼 있다.(아래 파란상자)

이런 사정에도 불구하고 미국 본국은 추가 파병을 강하게 압박한다.
그러자 브라운 대사의 입장도 완곡한 반대에서 단호한 반대로 바뀐다.
66년 3월 18일 전문을 보자.

그러나 추가 파병은 끝내 관철됐고, 65~66년 2년간 전투병력 4만 5천 명이 파병되는 등 베트남전 종전까지 우리군 30만 명이 베트남 전장에 투입됐다.
파병과정을 보면 미국의 강권도 있었지만 박정희 정권이 먼저 파병을 제안한 것 또한 사실이다.
64년 3월 7일 미국 대사관이 본국에 올린 비밀 전문을 보자.

박정희 정권이 파병을 먼저 제안한 이유와 관련해 역사학계는 △미국에 대한 충성을 통해 쿠데타 정권의 정통성을 확보하기 위해 △미국의 경제원조 축소 움직임을 막기 위해 △파병 대가로 경제적 보상을 받기 위해(경제 개발 5개년 계획 자금마련을 위해) △주한미군의 베트남전 투입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등 다양한 분석을 제기했다.
하지만 미국은 처음에는 한국군의 파병을 원하지 않았다.
이승만 대통령이 50년대 1차 베트남전쟁 때 한국군을 파병하겠다고 했을 때와 같은 이유로 거절했다.
명분과 실익 모두 없다고 봤기 때문이다.
그러나 65년 3월 '통킹만사건'(베트남 앞바다에서 북베트남이 미군함을 공격한 사건)을 계기로 미국이 본격적인 전쟁에 돌입한 뒤 한국군 전투병력 파병 요구로 완전히 선회한다.
그리고 한국 전투부대의 활약상을 본 뒤부터는 곶감을 꺼내 먹듯 총 4차례 추가 파병을 받아냈다.
미국이 한국의 전투부대를 원했던 이유는 여러 가지로 분석된다.
버건 커뮤니티칼리지 이길주 교수는 CBS노컷뉴스와 인터뷰에서 한국 전투병력 파병은 미국에게는 1석 4조의 효과가 있는 카드였다고 설명했다.
우선 미국으로선 '땅콩값'으로 한국군을 활용할 수 있었다.
이 교수는 "당시 존슨 대통령 특보인 잭 발렌티는 한국군에 지급하는 물자와 자금은 같은 숫자의 미군에게 투입하는 양에 비하면 '땅콩'이라고 말한 것으로 돼 있다"고 말했다.
브라운 대사도 당시 한국군이 참전하면 미국이 '피'와 '돈'을 상당히 아낄 수 있어 실질적인 기여가 된다는 보고서를 올리기도 했다.

다음으로 한국군의 경쟁력이었다. 미국은 한국 군대가 6.25라는 실전 경험과 상시적인 훈련으로 늘 준비돼 있는 군대라고 평가했다.
여기에 반공의식도 투철하다고 간주했다. 베트콩과 싸울 적임자로 본 것이다.
무엇보다 한국 정부의 초기 자발적 참전 의지가 미국의 부담을 덜어주었다.
이길주 교수는 "당시 존슨 대통령은 아시아 청년이 할 일을 미국 청년이 하도록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었다. 그러나 공산권 확장이 빨랐다. 도미노를 막기 위해 미국군이 전쟁에 개입해야 할 상황에서 한국군이 참전을 자청해주니 걸림돌이 없었던 셈"이었다고 설명했다.
당시 미국이 국제사회에 요구해 수혈받은 해외 병력은 한국, 호주, 뉴질랜드, 필리핀, 태국 등이었다.
한국군 참전인원은 총 32만 명. 미군 참전 인원의 12%에 이르는 숫자다.
사망자는 미군 5만 8281명, 한국군 5099명, 나머지 파병국가들 943명이었다. 우리 군의 사상자가 미군을 제외한 나머지 연합군 전체 사망자의 6배에 이른다.
물론 우리로서는 월남전에 참전해 전쟁의 특수를 누린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를 미국도 인지하고 있었다. 미국은 한국 정부가 파월장병을 한국의 꿈을 이루는 '요술 방망이'로 간주하고 있다며 심리를 꿰뚫었다.

그러나 미국은 한국의 바로 이 같은 노림수를 역으로 이용해 자국서도 반대가 컸던 명분 없는 전쟁에 한국 청년 30만 명을 '임대하듯' 활용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베트남전쟁이 한미동맹의 그늘진 역사로 기록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취재지원: 한국언론진흥재단
워싱턴=CBS노컷뉴스 권민철 특파원 twinpine@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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