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노동계 "국고 투입 전제로 고용보험료 인상 수용"

신다은 2021. 8. 13. 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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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제도개선TF서 '조건부 동의'
노동계 "국고 투입 의미있게 늘려야"
경영계는 여전히 인상 자체에 반대
정부, 다음주부터 본격 노사 조율
전문가 "요율 인상·조세재정 투입을"
재정 확대 논의 탄력 붙을지 주목
지난해 4월 서울 중구 서울고용복지플러스센터 실업급여창구에서 실업급여 신청자들이 실업급여 신청 상담을 받기 위해 기다리는 모습.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실업급여제도 확대와 코로나19 여파로 고용보험 재정이 바닥날 위기에 처하자 노동계가 보험요율 인상에 ‘조건부 동의’할 뜻을 밝혔다. 정부가 고용보험기금에 대한 국고 투입을 늘리는 것을 전제로 동의하는 것이지만, 실업안전망 확대를 위한 보험요율 인상 논의가 탄력을 받을지 주목된다.

12일 <한겨레> 취재를 종합하면, 전날 고용보험 재정 건전화 방안을 논의하는 고용보험 제도개선 태스크포스(TF)가 개최된 자리에서 노동자 단체 대표는 ‘국고 투입을 전제로 요율 인상에 동의한다’는 뜻을 밝혔다. 한국 고용보험의 국민 부담률이 다른 국가와 견줘 낮은 편인 데다, 코로나19와 같은 경제 위기 때 고용이 안정적인 노동자가 실업 위기에 처한 노동자와 연대할 필요가 있다는 점이 근거로 제시됐다. 다만 노동자 단체 쪽은 현재 미미한 수준인 국고 투입을 의미 있게 늘리지 않으면 요율 인상에 동의할 수 없다는 뜻도 명확히 했다. 반면 경영자 단체는 요율 인상 자체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고용보험료 인상·인하는 고용보험법에 따라 노동자와 경영자, 정부, 공익 대표자가 위원으로 참여하는 고용보험위원회 심의를 거쳐 결정한다. 고용보험 부담 당사자인 노동자위원과 사용자위원이 동의하지 않으면 보험료율 인상을 하기 어려운 구조다.

정부는 다음주부터 노사와 본격적인 조율에 나설 예정이다. 그간 학계 전문가와 함께 10여가지 시나리오를 폭넓게 검토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노사와 정부가 조세 재정 투입과 보험요율 인상, 실업급여 요건 강화라는 안건을 놓고 타협점을 좁혀나가기로 한 것이다.

고용보험은 실직자에겐 실업급여를, 경영난에 처한 사업주에겐 고용유지지원금을 지원하는 식으로 고용안전망 기능을 한다. 그에 필요한 재원은 사업주와 노동자가 각각 보수의 0.8%씩 내는 보험료로 형성된 기금에 주로 의존한다. 노사를 합치면 1.6%로, 선진국 요율 중위 값이 2.6%(국제노동기구 2019년 보고서)라는 점을 고려하면 상당히 낮은 편이다. 또 우리 정부가 국고 투입을 하는 수준이 높은 것도 아니다. 이에 고용보험 재정은 늘 경기 변동에 따라 흑자와 적자를 오가곤 했다. 특히 지난 2018년부턴 실업급여 수급자 증가와 수급 조건 확대, 코로나19 경제 충격으로 적자가 갈수록 커지는 추세다. 결국 지출에 모자라는 돈을 공공자금관리기금 대출에 손을 벌리게 되자, 국회는 기금 재정 건전화 방안을 이달 말까지 마련해 달라고 요구한 상황이다.

앞서 고용보험기금 적자가 2018년 8천억원, 2019년 2조원, 2020년 5조3천억원으로 해마다 커지는 상황에서 재원 마련을 위한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노동계 요구와 제안대로 정부가 적극적으로 조세 재정을 투입하고 향후 보험요율도 올린다면 고용보험 재원은 지금보다 확대될 수 있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한국은 실업급여 수급기간도 최대 9개월로 1~2년에 이르는 선진국보다 짧고, 지원 대상도 프리랜서와 고령노동자, 주 15시간 미만 노동자 등을 포괄하지 못한다”며 “이런 구조를 바꾸려면 노사의 보험요율 인상을 선진국 수준만큼 올리고 정부도 조세 재정을 투입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앞서 노동부는 고용안전망 강화와 관련해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까지 연간 1천억원 안팎의 예산을 투입하는 데 그쳤다가 지난해와 올해 고용 위기 대응 예산을 각각 1조1502억원과 1조654억원으로 늘렸다. 그러나 이는 지난해 고용보험 연간 수입액 19조8천억원의 10%도 안 되는 수준인 데다 정부 예산 투입의 근거와 범위도 고용보험법령에 정해져 있지 않아서 고무줄 편성에 가깝다. 국고 투입 의무를 보험료 예상수입액의 14%로 구체적으로 정한 국민건강보험법과 견줬을 때 법적 형평성도 떨어진다. 이병희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코로나19 위기에 고용유지지원금이 일자리 유지에 크게 기여했다고 평가받는데 정부가 그런 사업을 가입자 기여로만 해결하려 해서는 안 되고 예산 투입 근거를 이번 기회에 법에 명시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의 내년도 예산 국회 제출 기한은 다음달 3일까지다.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위원장은 “지금까지는 기획재정부가 조세 재정 투입에 소극적이었고 노동부도 눈치를 봤는데 앞으로 전 국민 고용보험도 추진할 것을 고려하면 청와대가 범부처 단위로 나서서 노사가 요구하는 사업 재편과 정부 예산 편성, 보험료율 인상을 함께 풀어야 한다 ”고 짚었다.

신다은 기자 dow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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