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동성당 농성장으로 간 신혼여행..신문에 날 줄이야"

한겨레 2021. 8. 12. 2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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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7월 29일은 가시돋친 세파와 폭염의 한복판이었지.

돌아와 동네 호프집에서 전개된 천생연분 사연, 딸 아들, 부실한 살림살이 이야기부터 우리 결혼의 한 모델이었으되 너무나 멀어진 '샤르트르와 보봐르 계약결혼론', 소크라테스·예수·석가·공맹 천상을 떠돌다 '세 여자의 결혼 이야기', 김대중과 이희호, 안병무와 박영숙, 홍근수와 김영 목사까지, 결론은 '정영훈과 김정미' 부부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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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하합니다][축하합니다] '결혼 32돌' 맞은 전교조 교사 부부
1989년 7월29일 서울 삼성동 선릉에서 전통혼례를 올린 정영훈·김정미 교사부부가 제자들의 축하를 받고 있다. 정영훈 주주통신원 제공

1989년 7월 29일은 가시돋친 세파와 폭염의 한복판이었지. 전교조 참교육운동 했다는 이유로, 사흘 전 둘 다 징계위원회에 회부된 채였네. 근무하던 학교의 교장·교감 선생님 호의로, 학교강당을 결혼식장으로 청첩장까지 돌렸지만 일주일 전 금지령이 내렸네.

그 기막힌 상황 이겨내느라 교감 선생님과 여기저기 다니다 가까스로 선정릉, 졸지에 왕릉에서 야외결혼식을 올렸네. 내심 한켠 바라던 일이었다 여겼지. 그 날 아침, 시련처럼 비까지 내려 장인·장모님, 어머니 수심 깊었을망정, 예식 시간 전 뚝 그치고 하객들 몰려 축복의 결혼식 되었네.

1989년 7월29일 근무지였던 서울 도곡국민학교에서 결혼식을 올리기로 했던 정영훈·김정미 부부의 청첩장.(위 사진) 결혼 이튿날 합류한 전교조 교사들의 명동성당 농성장에 붙어있던 신랑 신부 이름표.(아래 사진) 정영훈 주주통신원 제공

명동성당에서는 징계를 앞둔 선생님들이 단식투쟁 중, 우리는 다른 데 못 가고 그 뜻깊은 곳으로 신혼여행을 갔네. 하룻밤 팔베개로 새우고 나니 소문이 나고, 이니셜로라도 굳이 <조선일보>가 보도를 해서 ‘조사 보고령’ 받은 교감 선생님이 현장으로 오셨지. ‘못 본 것으로 보고 할테니 이제라도 여행을 떠나라’ 당부에, 동지들도 권하여 비로소 우린 설악산으로 향했네.

지난 2019년 ‘결혼 30돌’ 기념으로 리마인드 웨딩 사진을 찍은 정영훈(왼쪽)·김정미(오른쪽) 부부. 정영훈 주주통신원 제공
지난 7월29일 ‘결혼 32돌’ 기념 여행중 소백산 죽계구곡에서 함께한 김정미(왼쪽)·정영훈(오른쪽) 부부. 정영훈 주주통신원 제공

그렇게 저렇게 긴 세월 사나운 시련 이겨 온 결혼생활. 32돌 오늘은 둘이 손잡고 마스크로 무장한 채 소백산 죽계구곡, 부석사 다녀왔네.

가는 길 오는 길 감탄 찬탄을 부르는 산천은 모든 삶에 평등한 신의 축복. 계곡 산행은 고행이련만 귀를 시원하게 흘러내리는 얼음물에 발 담그고 몸 담그니 극락이 따로 없구나. 부석사 오르는 길은 또 하나의 수련. 오르고 올라도 언덕길 그 끝 봉황산 중턱에 떠있는 돌, 부석, 천삼백여년 된 도량 무량수전, 의상대사의 조사당, 기적같은 선비화 푸르네.

이동하는 틈새 유튜브와 ‘촛불 단톡방’으로 전해지는 봉건시대 벽서같은 ‘줄리 벽화 소동’, 양아무개 검사 모친의 말, 사기 피해 관련자, ‘개검’의 대권 놀음 그 불법 부당 불의 타파…, 촛불혁명 완성 향한 이야기 길도 함께 걸었네.

돌아와 동네 호프집에서 전개된 천생연분 사연, 딸 아들, 부실한 살림살이 이야기부터 우리 결혼의 한 모델이었으되 너무나 멀어진 ‘샤르트르와 보봐르 계약결혼론’, 소크라테스·예수·석가·공맹… 천상을 떠돌다 '세 여자의 결혼 이야기', 김대중과 이희호, 안병무와 박영숙, 홍근수와 김영 목사까지, 결론은 '정영훈과 김정미' 부부였네.

우리 작은 정든 집 이르러 잠시의 세찬 샤워로 하루종일 절은 땀, 마스크로 데워진 얼굴, 먼 길 시련의 찌든 시름 말끔히 씻어낸다.

서울/정영훈·김정미 부부

원고를 기다립니다 <한겨레>는 1988년 5월15일 창간 때 돌반지를 팔아 아이 이름으로 주식을 모아준 주주와 독자들을 기억합니다. 어언 34년째를 맞아 그 아이들이 부모가 되고 있습니다. 저출생시대 새로운 생명 하나하나가 너무나 소중합니다. ‘축하합니다’는 새 세상을 열어갈 주인공들에게 주는 선물이자 추억이 될 것입니다. 부모는 물론 가족, 친척, 지인, 이웃 누구나 축하의 글을 사진과 함께 전자우편으로 보내주시면 됩니다. 한겨레 주주통신원(mkyoung60@hanmail.net) 또는 인물팀(peop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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