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은 있으되, 타인은 보지 못하는 불통의 시대 말하다

김예진 2021. 8. 12.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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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동자만큼은 거짓으로 꾸밀 수 없다고 사람들은 생각한다.

눈부처는 눈동자에 비친 사람 모습, 상대의 눈동자에 비친 내 모습을 뜻하는 말이다.

그는 눈을 비운 작품을 그린 뒤 주변 여러 사람에게 보여주고는 어떤 점이 느껴지는지 대답을 수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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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동자 없는 인물화 김호석전
갤러리 한층을 온전히 차지한 '사유의 경련'
500년전 눈이 빈 안경을 쓴 선비의 모습
그림의 생명력 표현하는 눈을 비워놓으니
바라보는 사람 따라 의미가 더욱 확대돼
불통의 상식과 금도 넘어선 세태 표현해
원의 면적(왼쪽부터), 우리가 기다리던 사람은 우리, 구름 위.
눈동자만큼은 거짓으로 꾸밀 수 없다고 사람들은 생각한다. 말을 하면서도 눈빛을 읽으려 하고 눈으로 하는 대화가 진심이라 여긴다. 인물화를 그리는 모든 이들에게 눈동자를 그리는 순간은 화룡점정의 가장 중요한 순간이다. 그런 눈동자만 쏙 뺀 인물화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다가올까. 수묵 인물화로 유명한 한국화가 김호석 화백이 눈이 없는 인물화를 그려 내놓았다.

김 화백이 서울 종로구 팔판동에 위치한 갤러리 아트파크에서 이색적인 개인전을 연다. 갤러리 1층 전시공간에 각별히 공들인 단 한 점 ‘사유의 경련’을 전시한 것. 500년 전 한 선비가 안경을 쓴 모습의 인물화로, 안경 안쪽 눈 부분만 비어 있다. 그러고선 그림에 ‘눈부처’라는 별칭을 붙였다. 눈부처는 눈동자에 비친 사람 모습, 상대의 눈동자에 비친 내 모습을 뜻하는 말이다. 눈동자를 그리지 않아 놓고서 굳이 ‘눈부처’라는 별칭을 붙인 이유가 뭘까.

인물을 그리는 수묵화가로서 전통을 이으면서도 시대정신을 담을 방법을 고민했다고 한다. 작가는 “인물화의 핵심 요소는 전신사조이며, 전신사조에서 눈의 표현은 가장 중요한 요소”라며 “눈은 한 인물의 정신은 물론 생명력까지 나타내고, 그게 전통 화론이었다”고 밝혔다. 그는 ‘인물화의 핵심인 눈을 지우거나 생략한다면 인물화로서 존재가치가 없을까’라는 의문을 품었고, 지금까지 내려온 미술사적 성과에 도전하고 싶은 욕심도 들었다고 한다.

이색적인 프로젝트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는 눈을 비운 작품을 그린 뒤 주변 여러 사람에게 보여주고는 어떤 점이 느껴지는지 대답을 수집했다.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그 느낌을 들었다. 어떤 회신은 보여준지 일주일이 걸리기도 했고, 길게는 2년이 걸린 대답도 있었다. 이 과정에서 전시도 하기 전에 작품이 판매되기도 했다. 전시를 하기로 한 갤러리는 이미 판매된 작품을 순수하게 전시만을 위해 걸게 됐다.

작가는 “감상하는 이들의 의견이 실로 다양했고, 이를 듣는 게 재미있었다”며 “내 관점에 머물렀던 시각이 타자와 또 다른 타자, 무수한 내레이터의 시선으로 바뀌었다”고 밝혔다. 눈을 비운 작품이 미완성 작품이 아니라, 의미가 더욱 확장하는 작품이 된 셈이다. 작가는 이런 흥미로운 과정을 공유하고자 수집한 답변을 모아 책으로 출간키로 했다. 작가 주변의 각계 인사 14명이 자유롭게 쓴 글을 묶은 책 ‘이 그림 하나의 화론’이다.
사유의 경련 아트파크 제공
‘사유의 경련’이 탄생하기까지 작가가 천착한 대표적인 인물화 5점은 갤러리 2층에 있는 별도 공간에서 관람객을 맞는다. ‘사유의 경련’을 통해 전하고 싶은 메시지와 맥락을 분명하게 하기 위해 공간을 분리한 것이다.

갤러리 측은 ‘눈부처’를 두고 난세에 반응하는 작가 특유의 도발적 풍자로 설명한다. 갤러리 측은 “세상을 바라보는 화가의 눈이 격렬한 반응을 일으키는 시대, 나의 시선이 남의 눈에 되비치지 않는 불통, 그 불통이 상식과 금도를 넘어선 시대”의 표현이라며 “작품을 통해 나와 다른 새로운 대화와 수용을 권한다”고 설명했다. 28일까지.

김예진 기자 ye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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