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뿌리는 대한민국"..마사회 유도단 재일교포 선수들의 광복절 느낌

박현진 2021. 8. 12.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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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몬트리올 그랑프리 63㎏급에서 우승한 조목희(왼쪽)  출처 | 국제유도연맹

[스포츠서울 | 박현진기자] 최근 막을 내린 2020 도쿄올림픽에서는 귀화 유혹을 뿌리치고 태극마크를 가슴에 달고 출전한 유도 안창림의 스토리가 눈길을 끌었다. 안창림 처럼 자신의 뿌리를 기억하며 ‘경계인’으로서의 삶을 묵묵히 받아들여야 했던 재일교포 선수들이 적지 않다. 한국마사회 유도단에도 남자 66㎏급 김임환(세계랭킹 12위)과 여자 63㎏급 조목희(세계랭킹 30위)가 있다. 재일교포 3세로 항상 한국인의 정체성을 가지고 지내왔다는 그들은 2016년과 2019년부터 태극마크를 달고 태극마크를 달고 국가대표로 뛰고 있다. 광복절을 앞두고 일본과 한국의 경계에서 두 국가를 잇고 있는 재일교포 선수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2019년 세계선수권대회 66㎏급 은메달을 따낸 김임환  출처 | 국제유도연맹
- 재일교포로서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많았을 것 같다.
김 =
‘경계인’으로서 재일교포라는 사실은 일본에서도 한국에서도 힘들다. 일본에서는 한국인, 한국에서는 일본인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나는 한국 국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대한민국 국가대표가 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해왔다.
조 = 원래 일본에서 태어나고 자란 내가 한국 국가대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사실 몰랐다. 전국체전에 재일동포 선수단으로 출전한 것을 계기로 한국 국가대표로 올림픽에도 출전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때부터 태극마크를 달고 세계무대에서 활약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 한국에 처음 왔을 때 느낌은 어땠나. 언어나 문화에서 적응에 힘들진 않았는가?
김 =
고등학교 때 전국체전에 참가하며 처음으로 한국에 방문했다. 일본에 비해 물가, 특히 택시비가 저렴했던 것이 기억난다. 이후 본격적으로 한국에서 생활하며 언어나 문화가 달라 조금 고생스러웠지만 선생님들이나 동료, 주변 분들이 많은 도움을 줬다. 주말에도 “뭐하냐, 밥은 먹었냐”고 챙겨주시는 등 많은 분들이 마음 써주셔서 지금까지 잘 적응하고 있다.
조 = 사실 많이 힘들었다. 팀원들이 많이 도와줬지만 한국에 왔던 첫해에는 전혀 한국말을 할 줄 몰라서 같은 재일교포 선수들에게 도움을 받았다. 만나는 것만으로도 마음에 위안이 됐다.

한국마사회 유도단 김임환  제공 | 한국마사회
- ‘한국인 김임환‘, ‘한국인 조목희’로서의 정체성을 언제 체감하나?
김 =
언제나 체감하고 있다. 특히 국가대표로 시합에 나갈 땐 그 정체성을 뼈저리게 느낀다. ‘일본에서 태어났지만 국적은 한국이다. 그리고 지금 대한민국 국가대표다’라는 설명을 지금까지 ‘수백 번, 수천 번’ 해왔다.
조= 항상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그렇지만 특히 대표선수로서 가슴에 태극기를 다는 순간 그 무게를 크게 느낀다.

-8월 15일은 광복절이다. 두 선수에게 대한민국과 국가대표는 어떤 의미인가?
=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는 내 뿌리이자 조상들이 만들어 낸 기적의 나라다. 태극기를 달고 처음 경기에 나섰을 때 정말 기뻤고 그 책임감 역시 이루 말할 수 없이 컸다.
조 = 광복절은 재일한국인으로서 꼭 알아야 할 역사라고 생각한다. 일본에서 자랐다는 것과는 상관없이 국가를 대표해서 싸울 수 있다는 것은 굉장한 영광이고 자랑이다.

한국마사회 유도단 조목희  제공 | 한국마사회
- 선수 생활 중 가장 짜릿했던 순간, 가장 영광의 순간은 언제인가?
김 =
2019년 도쿄에서 세계선수권이 열렸다. 일본에서 열려 가족과 친척, 선생님 등 많은 분들이 오셔서 응원해주셨다. 덕분에 남자 66㎏급 은메달을 획득했다. 태극마크를 달고 뛰는 모습을 가족들에게 직접 보여줄 수 있어 기뻤고 개인적으로도 대한민국 유도에 좋은 성적으로 보답할 수 있어 기뻤다.
조 = 포디움에 서서 제일 위에 태극기가 올라가는 것을 보며 애국가를 들었을 때 가장 짜릿하고 영광스럽다.
안창림(오른쪽)이 도쿄올림픽에서 획득한 동메달을 김임환의 목에 걸어주고 있다.  출처 | 박현진기자 jin@sportsseoul.com
- 아쉽게 도쿄올림픽에 참가하지 못했지만 안창림의 동메달을 계기로 재일한국인에 대한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감회가 남다를 것 같다.
김 =
안창림이 내게 동메달을 걸어준 사진이 SNS에서 화제가 됐다. 우리 어머니가 창림이 학교 선생님이었다. 오래된 인연이다 보니 창림이가 도쿄올림픽 준결승에서 졌을 때 처음으로 남의 경기를 보고 울었다. 창림이가 “동메달을 걸어줄게”라고 했을 때 부끄러워서 “아니야. 됐어~”라고 말을 하면서도 자연스럽게 머리를 숙이고 있더라. 인생의 대부분을 함께 고생해온 친구가 올림픽에서 빛을 발해서 나 역시 기분이 좋았다.
조 = 지원문제 같은 것들이 언론에서 많이 이야기되고 있다. 관심이 모인 만큼 재일한국인학교의 현황을 많은 사람들에 전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재일한국인들이 존중받으며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할 수 있는 한 많이 얘기하고 노력하려고 한다.

김임환은 앞으로 이어질 세계대회를 목표로 다시 몸을 만들고 있다. 조목희는 올해를 마지막으로 유도선수로서의 인생1막을 마무리한다. 괌에서 유도클럽 코치를 병행하면서 대학에서 영어 공부를 할 계획이다. 방향은 달라졌을지라도 번쩍이는 청춘을 가슴에 품고 다시 걸어갈 그들의 내일이 기대된다.
jin@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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