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 저장 탱크가 담긴 문화공간..'건축의 고고학' 문화비축기지
20여년 잠든 비밀의 공간..전시·공연장소로
석유비축기지 구축과정을 역순으로 설계
5개 탱크는 문화공간·1개는 커뮤니티 공간
아미 팬파티·드라마, 예능 촬영 명소로
"생태 가치 더한 역사적 문화공간으로"
![매봉산 아래 자리한 14만 22㎡의 공간엔 3년(1976~1978년)에 걸쳐 5개의 석유탱크가 지어졌다. 24년간 ‘비밀의 공간’으로 자리했던 이곳은 시민 아이디어 공모(2013년)를 통해 지금의 문화비축기지(2017년)로 다시 태어났다. [문화비축기지 제공]](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108/12/ned/20210812145207886fabi.jpg)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거대한 철제 외벽을 따라 생겨난 둘레길은 비밀 요새로 향하는 통로 같다. 40여년 전 2200만ℓ의 등유를 보관하던 네 번째 탱크(T4)와 옹벽 사이로 들어선 길. 붉은색 소화액관을 따라 걸음을 옮기면 석유 저장 기록을 확인했던 계측기가 낡은 민낯을 드러낸다. 자연은 거짓을 말하는 법이 없다. 사람의 손이 떠나자, 콘크리트 옹벽을 뚫고 자란 강건한 오동나무가 수호신처럼 자리한다. “석유를 저장하던 시절엔 나무가 자랄 수 없었는데, 2000년에 석유를 비우고, 사람이 손이 닿지 않으니 옹벽을 뚫고 나무가 자랐어요.”(문화비축기지 관계자) SF 드라마 시리즈에 등장해도 손색없는 신비로운 이 길엔 한낮의 뙤약볕도 비켜간다.
매봉산 아래 자리한 14만 22㎡의 공간. 축구장 22개에 달하는 이곳에 3년(1976~1978년)에 걸쳐 5개의 석유탱크가 지어졌다. 1973년 제1차 석유 파동으로 전 세계에 위기가 닥치며 안정적인 석유 공급을 위해 진행된 일이었다. ‘마포 석유비축기지’에 저장된 휘발유, 경유, 등유는 약 6907만ℓ. 1급 보안시설이었던 석유비축기지는 24년간 ‘비밀의 공간’이었다. 2002년 월드컵 개최를 앞두고 안전 문제가 제기되자, 2000년부터 폐쇄를 결정했다. 이후 시민 아이디어 공모(2013년)를 통해 지금의 문화비축기지(2017년)로 다시 태어났다.
![녹슨 외벽을 고스란히 품은 탱크와 넓은 마당은 문화공간으로 재탄생, 다양한 전시와 공연이 열린다. 사진은 T6에서 열린 ‘2019 서커스캬바레’ [문화비축기지 제공]](https://img3.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108/12/ned/20210812145209361gubg.jpg)
녹슨 외벽을 고스란히 품은 탱크와 넓은 마당은 지나온 역사와 새로이 만들어갈 이야기를 고스란히 품고 있다. 석유를 저장했던 다섯 개의 탱크는 열린 문화공간으로 재탄생, 다양한 전시와 공연이 열린다. 해체된 1번, 2번 탱크 철판을 내부와 외부 재료로 활용해 새로 지은 T6는 커뮤니티 공간으로 태어났다. 모든 공간들은 뮤직비디오, 예능, 드라마, 영화 촬영지의 단골손님이다. 방영 예정인 배우 공유·배두나 주연의 드라마 ‘고요의 바다’(넷플릭스), 이승기가 출연했던 드라마 ‘화유기’, 십센치의 뮤직비디오는 물론 ‘놀면 뭐하니?’의 ‘치킨비축기지’, ‘트바로티’ 김호중의 드라이브 스루 팬미팅, ‘런닝맨’, ‘신서유기’, ‘유 퀴즈 온 더 블럭’ 등 거치지 않은 프로그램을 찾는 것이 더 쉬울 정도다. 2019년엔 방탄소년단의 팬 이벤트가 열려 1만여 명의 아미가 보랏빛 장관을 연출했다.
![‘산업화의 역사’가 담긴 공간에, 새로운 ‘문화의 역사’가 더해지는 것만으로 공간의 의미는 묵직해진다. ‘과거의 기억’은 문화비축기지 곳곳에 남아있다. T3 탱크 옆에 설치된 ‘기억 안내판’에는 1980년대 초 근무한 한 직원의 회고가 적혔다. 사진은 T3 탱크 원형 [문화비축기지 제공]](https://img3.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108/12/ned/20210812145210745joad.jpg)
‘산업화의 역사’가 담긴 공간에, 새로운 ‘문화의 역사’가 더해지는 것만으로 공간의 의미는 묵직해진다. ‘과거의 기억’은 문화비축기지 곳곳에 남아있다. T3 탱크 옆에 설치된 ‘기억 안내판’에는 1980년대 초 근무한 한 직원의 회고가 적혔다. “겨울에 눈이 오면 발판이 얼마나 미끄럽습니까. 그렇다고 열로 녹일 수도 없잖아. 사고 나면 큰 사고라고. 콘크리트 바닥에 떨어지면.” 소형아파트 5층 정도 높이의 세 번째 탱크엔 낡은 철제 계단이 위태롭게 보존돼있다. 문화비축기지 관계자는 “두 번째, 네 번째 탱크는 지금은 최대 3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공연장이지만 예전엔 석유가 채워진 탱크였다”며 “이전에 일하던 직원 분들은 죽지 않으면 들어올 수 없는 곳에 들어와 있는 것이라는 이야기를 한다”고 들려줬다.
![공간의 울림과 어둠을 활용한 미디어 전시·공연이 주로 열리는 T4 [문화비축기지 제공]](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108/12/ned/20210812145212107csky.jpg)
다섯 개의 석유탱크가 문화공간으로 태어난 과정도 독특하다. 애초에 이 석유탱크는 유종별 소비량을 파악해 저마다 다른 크기로 만들어졌다. 문화비축기지를 설계한 허서구 건축가는 “탱크를 만들었던 과정이 곧 이 공간이 품은 이야기”라며 “과거의 진행방식과 작업방식을 하나의 스토리로 연결했다. 문화비축기지 구축 과정은 탱크를 만들던 과정의 역순으로 진행했다”고 말했다. “작업로를 만들고, 옹벽을 세우고, 탱크를 파낸 뒤 가림막을 치고 흙으로 덮었던 석유비축기지의 구축 과정을 거꾸로 이어간 것”이다. 문화비축기지가 만들어질 땐 ‘흙을 걷어내는 작업’부터 시작됐다. 문화재 발굴 작업과 닮은 과정으로 인해 문화비축기지는 ‘건축의 고고학’이라는 이야기가 따라다닌다.
![휘발유를 보관했던 T1 파빌리온은 외장재였던 철판을 해체하고 벽과 지붕을 유리로 만들어 탱크의 외형을 복원했다. [문화비축기지 제공]](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108/12/ned/20210812145213424inhi.jpg)
![T1에서 열린 2019년 창작실험 ‘과정과 공유’ [문화비축기지 제공]](https://img3.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108/12/ned/20210812145214999nwva.jpg)
휘발유를 보관했던 T1 파빌리온은 외장재였던 철판을 해체하고 벽과 지붕을 유리로 만들어 탱크의 외형을 복원했다. 문화비축기지 관계자는 “유리탱크인 만큼 사계절의 변화와 날씨, 시간의 흐름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 가장 큰 매력”이라며 “인간이 파괴해 석유를 저장했던 곳에서 자연 스스로 본래의 모습을 찾아가는 과정을 볼 수 있는 아주 독특한 공간”이라고 말했다.
![T2 공연장은 경유를 보관했던 탱크로, 기존 탱크의 철재 부분을 모두 제거하고 야외무대와 실내 공연장으로 조성했다.[문화비축기지 제공]](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108/12/ned/20210812145216369hryx.jpg)
![T2 야외무대에서 열린 전통연희페스티벌 [문화비축기지 제공]](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108/12/ned/20210812145217712kcfh.jpg)
T2 공연장은 기존엔 경유를 보관했던 탱크다. 기존 탱크의 철재 부분을 모두 제거한 뒤 지상은 야외무대(1226㎡), 하부는 공연장(608㎡)으로 조성됐다. 하늘을 향해 열린 야외무대와 옹벽은 매봉산의 암벽과 만나 아름다운 울림을 전한다. YB의 스탠딩 공연이 열리기도 했던 곳이다. 자연으로 둘러싸인 공간의 특성상 소리가 새나가지 않는 것도 특징이다. “록 콘서트가 열려도 인근 주민의 항의가 없다”고 한다. T2 공연장의 위쪽으로 매봉산 자락에 걸친 상암카이저팰리스 클래식이 눈에 들어온다. 마치 문화비축기지의 일부인 듯 어우러진 모습이다.
경유를 보관한 T3 원형탱크는 석유비축 당시 탱크 모습을 그대로 보존했다. 허서구 건축가는 “각각의 탱크는 원형을 살린 그대로 남겨뒀고, T3의 경우 아예 손을 대지 않고 남겼다”며 “미래 자산으로 누군가 다시 기회가 되면 만들 수 있도록 했다”고 말했다. 미래 후손들에게 물려줄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T4 복합문화공간 [문화비축기지 제공]](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108/12/ned/20210812145222216wvgr.jpg)
탱크 내부를 그대로 살린 T4 복합문화공간으로 태어났다. 이곳에선 공간의 울림과 어둠을 활용한 미디어 전시·공연이 많이 열린다. 등유를 보관하던 T5는 영상미디어관(1층)과 전시관(2층)으로 조성한 이야기관으로 선보였다. T1과 T2를 해체한 철판을 활용해 태어난 T6 커뮤니티센터는 원형회의실과 강의실, 카페테리아가 자리했다. 원형회의실 위로 자리한 2층엔 하늘을 올려다볼 수 있는 옥상마루가 매력적이다. “가위로 오려낸 듯한 동그란 하늘을 볼 수 있어 예술가들이 좋아하는 공간”이라고 한다.
![커뮤니티 센터로 설계된 T6 복도 [문화비축기지 제공]](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108/12/ned/20210812145223611jbhc.jpg)
문화비축기지는 지나온 이야기를 품고, 현재를 말하며, 미래를 담는다. 문화공원으로 태어난 후 시민들의 힐링 공간이자, 예술가들의 무대로 많은 이들의 발길이 머문다. 이용우 서부공원녹지사업소 소장은 “이곳은 산업유산인 석유탱크를 재생해 문화공간으로 활용한다는 건축적, 역사적 의미를 갖고 조성된 공간”이라며 “자연 속에 있는 문화공간이라는 생태적 가치를 더하고, 공원의 철학에 맞게 시민 누구나 편하게 경계 없이 찾아오고 향유할 수 있는 공간이라는 사회적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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