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건의 기막힌 심폐소생술,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
(시사저널=정시우 영화 저널리스트)
'더(The)' 하나 더 찍고 돌아왔을 뿐인데, 완벽하게 환골탈태했다. 4년 전 악평 세례로 굴욕을 겪은 《수어사이드 스쿼드》의 실책을 만회하는 동시에 DC의 고꾸라진 자존심을 불끈 세우는 회심의 일격이랄까. 여기엔 사령탑으로 새로 부임한 제임스 건이 있다. 물론, 《수어사이드 스쿼드》를 연출했던 데이비드 에이어도 억울한 지점은 있을 것이다. 《수어사이드 스쿼드》를 만드는 과정에서 DC-워너의 과도한 창작권 개입이 있었다는 건 이제 기정사실로 받아지는 상황이니 말이다. 그러나 어쩌겠나. 흑역사는 흑역사인 것을.
경쟁사 마블의 인재를 영입한 DC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 탄생은 여러 우연과 타이밍, 시장 경쟁이 겹친 결과물이다. 일단 앞서 언급한 《수어사이드 스쿼드》의 폭망. DC-워너 입장에선 망(하긴 했지만 매력적인 캐릭터를 다수 보유)한 영화를 어떻게든 쇄신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들이 찾은 방법은 갱생. 그렇게 시리즈를 고쳐 쓰는 프로젝트가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라는 이름으로 시동을 걸었다.
마침 DC-워너의 눈에 구세주처럼 나타난 이는 제임스 건이다. 제임스 건이 누구인가. 마블 악동들의 대환장 파티였던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1, 2편을 만든 감독 아닌가. 그러나 제임스 건의 시련이 작품 밖에서 터졌으니, 과거 트위터에 소아성애를 옹호하는 글을 작성한 것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3》 준비 도중 마블-디즈니로부터 퇴출당하고 만다. 이것은 운명의 장난? DC-워너는 자존심 따위 냅다 버리고 제임스 건에게 발 빠르게 '러브콜'을 보냈다. 경쟁사가 내친 중역을 기용한 셈인데, 축구로 치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감독이 시즌 도중 운명의 라이벌 '리버풀'로 이적한 것과 같다.
DC-워너가 연출에 대한 전권을 제임스 건에게 몰아준 건 《수어사이드 스쿼드》에서 연출에 너무 관여했다가 이도 저도 아닌 결과물을 내놓은 것에 대한 반면교사였을까. 혹은 마블의 히트작을 내놓은 제임스 건에 대한 무한 신뢰였을까. 진실이 무엇이든, 제임스 건에게 모든 걸 위임한 건 탁월한 선택이었다. 제임스 건은 결과물로 이를 입증한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와의 연결고리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시리즈를 연출하며 제임스 건이 증명해 보인 장기는 캐릭터 조련술이었다. 악동 캐릭터가 떼로 나오는 상황에서도 누구 하나 소외시키지 않고 개성을 부여해 내는 신공은 대단한 것이었다. 그의 이러한 장기는 이번 영화에서 가감 없이 발휘된다. 시간을 뒤섞거나 뒤집는 방식으로 거의 모든 캐릭터가 스포트라이트를 한 번씩 부여받는다.
제임스 건은 1편의 할리 퀸(마고 로비), 릭 플래그(조엘 킨나만), 캡틴 부메랑(자이 코트니), 아만다 월러 국장(비올라 데이비스)을 빼고 캐릭터 구성을 다시 짰다. 울며 겨자 먹기로 리더 역할을 맡게 된 블러드포스트(이드리스 엘바)부터 시종 짠내를 풍기는 폴카도트맨(데이비드 다스트말치안), 피리 부는 사나이 뺨치게 쥐를 다루는 릿캐처2(대니엘라 멜키오르), 노출증이 살짝 있어 보이는 피스메이커(존 시나) 등 이 영화에 정신이 제대로 박힌 캐릭터는 없다고 보면 된다. '미친 자'와 '더 미친 자'가 있을 뿐이다.
특별 언급하고 싶은 건 킹 샤크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시리즈에서 나무 히어로 그루트(빈 디젤)와 너구리 로켓(브래들리 쿠퍼)이 귀여움을 발산했다면,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에서는 상어 인간 킹 샤크가 기괴함과 발랄함 사이에서 매력을 뿜어낸다. 잡식성 식욕을 자랑하는 킹 샤크의 목소리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 2》에 깜짝 출연했던 실베스터 스탤론이 맡았다. 킹 샤크에게서 람보의 기운이 느껴진다 해도 괜한 게 아니니 놀라지 마시길. 불가사리 빌런 스타로도 범상치 않은데, 강력한 화력을 과시하는 와중에 귀엽기까지 하다.
터지고 찢기고 잘리고…주연급에도 가차 없다
실베스타 스탤론 외에도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에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향기가 여럿 감지된다. 상황 설정에서부터 그런데, '악당들이 어쩌다 보니 악당을 물리치는'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의 서사는 '사회 부적응자들이 얼렁뚱땅 히어로로 거듭나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와 유사하다. '끝내주는 노래 모음집'으로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흥을 돋웠던 제임스 건의 선곡 센스와 B급 정신 역시 다시 한번 힘을 발휘한다. 그러나 동어반복으로 다가오지는 않는다. 지향점의 차이 때문이다. 가족영화를 지향한 마블과 달리 19금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가 공략하는 건 어디까지나 다 큰 어른들이다.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 안에서 제임스 건은 마블에서 하지 못한 거친 묘사를 과감하게 시도한다. 손발이 댕강, 몸이 두 동강, 머리가 피 칠갑. 아군이든 적군이든 가차 없이 죽어 나가는 광경이 백미(?)인데, 캐릭터들을 향한 제임스 건의 사랑(?)은 공평한 것이어서 주연이라 여겨졌던 인물들 역시 가차 없이 터지고 절단된다. 이쯤이면 감 잡을 수 있겠지만 표현 수위가 상당히 세다. 잔혹한 장면을 보며 이렇게 낄낄거려도 되나 싶은 순간순간마다, 양심의 가책을 덜어주는 건 잘 조율된 B급 유머들. 워낙 막 나가는 탓에 취향의 호불호는 탈 수 있으니 열린 마음으로 영화를 대하는 자세가 요구된다.
제임스 건의 DC행을 바라본 마블의 후속 조치에 대한 이야기로 글을 마무리해야 할 것 같은데, 많이들 알다시피 제임스 건은 마블로 복귀해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3》의 메가폰을 잡는다. 결과적으로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는 제임스 건에겐 뜻하게 않게 찾아온 선물 같은 커리어가 됐다.
출격 준비 중인 DC 라인업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로 숨 고르기를 한 DC의 앞으로 행보는 어떨까.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여러 개봉 일정에 차질이 빚어지긴 했지만, 기대작들이 차근차근 관객을 만날 채비를 하고 있다. 가장 기대를 모으는 건 맷 리브스가 연출을 맡은 《더 배트맨》. 마이클 키튼, 발 킬머, 조지 클루니, 크리스찬 베일, 벤 에플렉에 이어 6대 배트맨에 발탁된 로버트 패틴슨의 연기가 관람 포인트다. 드웨인 존슨이 안티 히어로로 분한 《블랙 아담》과 《저스티스 리그》에 등장한 플래시(에즈라 밀러)의 단독 영화 《더 플래시》, 제이슨 모모아와 앰버 허드 주연의 《아쿠아맨2》도 제작을 달리는 중이다. 세대교체가 한창인 마블과 함께 이들이 향후 슈퍼히어로 시장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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