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현의 Deep Read>北 막말 압박에도 靑 침묵.. 정부 '북한 퍼스트' 고집하면 한·미동맹 약화
■ 與 ‘한미연합훈련 연기론’ 왜
한미연합훈련 2018년 이후 축소했지만 ‘北 비핵화’ 진전 없어… 안보를 ‘협상 카드’ 삼으면 안돼
훈련 없는 군대는 무용지물… 중단·연기론, 南南 분열 부추기고 연합 방위태세 휘청
한·미 양국은 오는 16일부터 예년에 비해 ‘대폭 축소된’ 한미연합훈련 본훈련을 실시한다. 하지만 정부·여당은 훈련을 연기 혹은 중단해야 하는지를 놓고 우왕좌왕하고 있다. 북한 김여정이 한미연합훈련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표시하고 “배신적 처사” 등 막말을 동원하면서 훈련 중단을 압박하고 있기 때문이다.
안보의 토대는 한·미 동맹이고, 동맹의 토대는 연합훈련이다. 하지만 국가의 존망과 국민의 안위가 걸린 안보 정책마저 여권의 북한 눈치 보기와 ‘북한 퍼스트’ 입장에 휘청거리는 형국이다.
◇北의 압박, 靑의 침묵
최근 김여정은 “훈련 중단”을 요구하는 공개담화를 발표했다. 김여정은 뒤이어 ‘김정은의 위임에 따른’ 2차 담화에서 연합훈련 개시에 “배신적인 처사”라고 비난했고,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될 자멸적인 행동”이라고 경고했다. 급기야는 “주한미군 철수”를 주문했다.
중국도 북한 편을 들면서 간섭하고 나섰다. 왕이(王毅) 외교부장은 지난 6일 화상으로 열린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외교장관 회의에서 “미국과 한국의 연합훈련은 현재 상황에서 건설성이 없다”며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앞서 싱하이밍(邢海明) 주한 중국대사는 야권 대선주자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관련 발언에 대해 언론에 비판적 기고를 해서 부적절한 대선 개입이라는 논란을 초래했었다.
한미연합훈련은 한반도에 발발 가능한 전쟁 상황을 전제하고 그 억제를 목적으로 하는 순수한 방어적 목적의 훈련이다. 북한은 연합훈련을 한·미의 침략전쟁 준비라고 비판하지만 우리는 훈련된 군대를 통한 반격 태세라는 대원칙하에 훈련의 핵심을 전쟁 억제에 둔다. 물론 방어적 훈련 속에는 2부(반격) 연습이 포함된다. 만일 북한이 다시 남침해온다면 우리는 방어를 넘어 당연히 통일까지를 목적으로 할 수밖에 없다. 애초에 북한이 먼저 공격하지 않는다면 한·미가 북한을 침략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정부·여당은 우왕좌왕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74명은 ‘훈련 연기’를 주장하는 연판장을 돌렸다. 김여정의 두 차례 공개 담화가 나왔지만 ‘군 통수권자’인 문재인 대통령과 청와대는 국민이 납득할 만한 조치나 설명을 내놓지 못하는 상황이다. 청와대는 “예단하지 않고 북한의 태도를 면밀하게 주시하고 있다”고만 했다.
◇연합훈련의 굴곡
한·미 간 실시하는 지휘소연습, CPX(Command Post Exercise)는 시나리오에 따른 연합 ‘연습’이다. 야외 기동을 통해 시행되는 FTX(Field Training Exercise)는 실 장비와 병력이 기동하는 훈련 중심의 활동이다. 훈련의 목적이 예상할 수 없는 돌발사태에 대비하고, 우리의 대비태세와 역량을 점검하는 것이기 때문에 훈련 내용을 북한에 알려줄 수는 없는 일이다.
한미연합훈련은 그동안 여러 차례 굴곡을 겪었다. 한미연합사령부가 창립된 이후 1975년까지는 전시 대비 한미연합군사훈련과 정부 을지연습을 분리해서 별도 시행하던 것을 1976년부터 통합해 한미연합 국가 총력전 연습인 ‘을지프리덤가디언(UFG)’으로 시행해왔다. UFG는 세계적인 군사훈련 모델로 평가받지만, 2018년을 마지막으로 한·미 양측의 대규모 병력이 실제 동원되는 훈련은 중단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한과의 비핵화 협상을 위한다는 명분하에 북한이 중단을 요구해온 한·미 합동군사훈련을 ‘너무 비싸다’는 이유로 포기했기 때문이다.
2019년 키리졸브훈련과 독수리훈련이 폐지되면서 ‘동맹 19-1’ ‘동맹 19-2’라는 이름이 사용되다가 ‘한미연합지휘소훈련’으로 명칭이 변경됐다.
◇‘북한 퍼스트’ 속의 안보
한미연합훈련의 운용과 관련한 미국의 입장은 분명하다. 2018년 이후 이미 지휘소훈련 수준의, 최소한으로 축소된 훈련을 그마저 중단하라는 요구를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다. 존 커비 미 국방부 대변인은 중국의 한미훈련 반대 입장에 대해 동맹인 한국과 ‘발맞춰(in lockstep)’ 결정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한반도 준비 태세를 유지해야 한다는 점, 그리고 준비 태세를 강화하고 유지하기 위한 훈련 계획에 있어 동맹 한국과 보조를 맞추고자 하는 미국의 입장에 변함이 없다고 했다.
한미연합훈련의 향배를 두고 우리 내부의 논란으로 ‘자해’ 행위를 계속하는 것은 국익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연합훈련의 규모 축소를 걱정하는 쪽에서는 이로 인한 연합 방위 태세의 약화를 우려한다. 최근 한미연합훈련은 외형적으로는 축소된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 연중 분산 시행을 통해 실제 훈련 효과는 다 거두고 있다는 것이 국방 분야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더 중요한 것은 항상 북한이 압력을 넣고 우리가 거기에 끌려가고 있다는 점이다. 김여정이 공개적으로 한미연합훈련의 중단을 요구한 상황에서 그 때문에 훈련을 연기하거나 축소한다면 한국이 북한의 협박에 또다시 굴복했다는 논란을 일으킬 뿐 아니라, 문재인 정부는 안보 정책조차 ‘북한 퍼스트’라는 비판을 자초할 뿐이다.
안 그래도 국민이 느끼는 북한발 ‘막말 피로증’이 심각한데 김여정의 협박에 다시 훈련을 연기·중단해서는 안 된다. 정부·여당 일각에서 주장하는 한미연합훈련 중단 혹은 연기론은 ‘안보의 정쟁화’로 이어져 대선 국면이 진행될수록 내부의 남남 분열을 부추길 것이다. 어떤 경우에도 안보를 대북 협상 카드로 삼는 건 피해야 한다.
◇연합훈련과 동맹의 가치
군대는 본질적으로 최악의 상황을 훈련하고 대비하는 조직이다. 훈련 없는 군대는 무용지물이다. 한국의 군사력은 북한에 대한 대비일뿐 아니라 미래의 불특정 위협에 대해 한국의 생존을 방어할 마지막 수단이다.
한·미 동맹은 한국의 군사력을 보강하는 중요한 전략자산이다. 동맹이 존속하는 한 연합훈련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검증을 위해서도 훈련은 필수적이다. 한반도 안보에 필수적인 연합훈련을 한국 스스로 폄훼할 때 동맹의 토대는 약해진다.
한·미가 연합훈련을 다시 연기하거나 축소한다 해도 그것이 곧 ‘비핵화’를 향한 대화의 진전이나 남북관계 개선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 2018년 이후 우리가 한미연합훈련의 규모와 내용을 축소하고 유연하게 시행했지만 북의 태도는 달라진 게 없다. 한미연합훈련의 방향과 내용은 결국 한국이 미국과 협의해 결정할 일이다. 북한이나 중국이 왈가왈부할 일이 아닌 것이다.
세종연구소 소장·정치학 박사
■ 세줄 요약
北의 압박, 靑의 침묵 : 한미연합훈련은 전쟁 억제를 목적으로 하는 순수한 방어적 목적의 훈련. 과거 야외 기동훈련이 지금 워게임 중심의 지휘소훈련으로 대체된 상태. 하지만 북한의 잇단 훈련 중단 압박에 청와대는 침묵만.
‘북한 퍼스트’ 속의 안보 : 정부·여당 일각에서 주장하는 훈련 중단·연기론은 ‘안보 정쟁화’와 남남 분열을 부추김. 지금은 안보 정책마저 여권의 ‘북한 퍼스트’ 입장에 휘청거리는 형국. 안보를 대북 협상 카드 삼으면 안 돼.
연합훈련과 동맹의 가치 : 훈련 없는 군대는 무용지물. 연합훈련을 폄훼하면 동맹의 토대는 약해짐. 연합훈련 연기·축소가 ‘북한 비핵화’를 가져오지도 않았음. 훈련의 방향과 내용은 북한이 아닌 한·미가 협의해 결정할 일.
■ 용어 설명
‘지휘소훈련’은 실제 야외 기동 훈련이 아니라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운용하는 한미연합훈련. 기동 훈련을 하지 않고 워게임만 하면 한·미 연합 전력이 약화할 것이란 일각의 우려가 제기된 상태임.
‘한미연합훈련’은 한반도 방위와 연합 작계 숙달을 위한 제반 연습과 훈련을 통칭. ‘연습’은 시나리오에 따른 작계 이행 역량과 대응태세 점검에, ‘훈련’은 반복을 통한 특정 기능 습득에 중점을 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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