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몸은 소중하다"는 말 대신 진짜 몸 알려주는 성교육책[플랫]
[경향신문]
만 10~16세 초·중학교 시기, 인간은 2차 성징을 겪는다. 그때 자신의 몸에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지, 변화를 겪는 기분이 어땠는지 잠시 생각해보자.
갑작스러운 신체의 변화에 적잖이 당황스러웠던 경험이 한 번씩은 있을 것이다. 2차 성징 시기에는 머리와 겨드랑이에서 냄새가 나기 시작하고, 뽀얗던 피부에 여드름이 생기고, 머리에만 나는 줄 알았던 털이 신체 곳곳에서 자라난다. 갑자기 한없이 우울해진다거나, 성에 대한 관심이 폭증하는 등 감정적 변화도 크게 일어난다.
많은 청소년들이 혼란스럽고 궁금한 마음을 어른들에게 터놓기보다는, 포털 사이트에서 내용을 검색해보거나 친구들과 얕은 지식을 공유하며 사춘기를 겪어낸다. 특히 여성이 성에 관해 묻고 말하기가 여전히 쉽지 않은 우리 사회 분위기상 많은 여성 청소년들은 자신의 경험을 나누지 못하고 속앓이를 한다.
여성 청소년을 대상으로 최근 출간된 성교육서 <소녀X몸 교과서>(우리학교)는 ‘이런 것까지 자세하게 설명해준단 말이야?’ 하는 마음이 들 정도로 여성이 겪는 몸의 변화를 자세하게 설명한다. 가슴, 여드름, 털, 성기, 질 분비물, 월경 등 몸의 변화를 상세히 묘사한다. ‘질 주름이 뭔가요’ ‘자위는 남자만 하는 건가요’ ‘오르가슴은 어떤 기분을 말하는 건가요’ 등 실제 청소년이 궁금해할법 하지만 어른에게 묻기는 어려운 담대한 질문에도 자세한 답을 준다.
<소녀X몸 교과서>를 쓴 윤정원 국립중앙의료원 산부인과 전문의와 김민지 여성주의 활동가를 지난달 27일 온라인 화상 인터뷰로 만나 책 이야기를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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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부대끼며 만든 진짜 성교육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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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담긴 주제들은 두 사람이 의료현장과 청소년공동체 교육현장에서 수많은 여성 청소년과 부대끼면서 얻은 경험들을 바탕으로 고른 것이다.
윤 전문의는 “월경 혹은 성매개감염(성병)으로 인한 질환들, 원치 않는 임신이나 성 정체성 문제 등으로 진료실을 찾는 청소년들을 많이 보면서 그 기저에는 자기 몸에 대해서 제대로 된 이해나 지식이 부족한 문제들이 있다는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이어 “자신의 몸에 대한 이해와 지식이 있어야 자존감, 긍정감, 남과의 관계에서 협상력이 생기는 것이라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김 활동가는 “우리 사회는 성폭력 예방교육을 할 때도 ‘내 몸은 소중해요’ 수준에서 다룬다”며 “미디어에 의해 왜곡되지 않은 솔직한 여성의 몸을 알려주고, 건강한 관계란 어떤 것인지까지 포함시키는 것이 성교육의 범주에 들어간다”고 말했다.
신체 변화 및 의학적 지식과 관련된 부분은 주로 윤 전문의가 썼다. 생물학·보건학적 지식을 딱딱하게 다루는 성교육과는 거리가 멀다. ‘제모를 해야 할까요’ ‘브래지어를 안 입으면 가슴이 처지나요’ 등 여성 청소년들이 궁금해할 만한 질문에 알기 쉽게 답한다. “가슴이 처지는 원인에는 유전력, 노화, 체중 과다 등이 있으며 오히려 브래지어를 하면 가슴이 처진다는 주장도 있다”고 설명해주는 식이다.
음핵과 질처럼 충분히 탐구되지 않았거나 연약해서 보호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에 가려져 있던 기관들에 대해서도 삽화와 함께 설명한다. 윤 전문의는 “몸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는 것이 스스로에 대한 ‘임파워링(Empowering·자존감을 고취시키고 힘을 부여시킨다는 의미)’으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이 시기에 몸이 변하는 것으로 인해 청소년들은 굉장히 큰 세계의 혼란과 가치관의 전복을 겪어요. 그런데 이때 제대로 된 정보가 주어지지 않으면 광고나 잘못된 정보들로 인해 자신의 신체 이미지나 자아상이 잘못된 채로 형성돼 평생을 가거든요. 정상의 범위란 굉장히 넓고 다양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어요.”
성매개감염, 피임, 임신 중지 등은 ‘있어서는 안 되는 일’처럼 기술하는 대신, 실질적인 정보를 전달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윤 전문의는 “성매개감염·임신 중지 등은 우리 주변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들로, 임신 중지는 한국 여성의 20~25% 정도 경험한다는 것이 최근의 데이터”라며 “보편적인 경험에 낙인을 찍고 죄책감을 가지게 하는 성교육 대신 제대로 된 정보를 가지고 선택하거나 예방하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책의 절반 정도는 성관계를 포함한 타인과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일을 다룬다. 동의의 의미를 단순히 성관계에 동의하는 것에서 확장시켜서 타인과의 관계에서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요인으로 설명하고, 갈등을 숨기기보다 잘 싸우는 법도 설명한다. 김 활동가는 “갈등에 대한 이야기들을 책에 꼭 넣고 싶었다”고 말했다.
“청소년기에 여자들이 남자에 비해 말을 더 잘 듣는다고 여겨지잖아요. 여자들은 정제되고 책임감 있는 모습을 보이면 격려받죠. 기분 나쁜 것을 기분 나쁘다고 표현하지 못하게 돼요. 그런데 어떤 지점이 불만족스럽고, 본인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논리적으로 밝히는 연습을 해야만 연인은 물론 타인과의 관계를 잘 맺을 수 있잖아요.”
책은 성을 남성·여성으로 이분화시키지 않고 성 정체성이나 성적 지향과 관련된 부분까지 다양하게 다뤘다. 윤 전문의는 “다양한 소수자들이 ‘내가 배제되지 않는다’고 느끼는 것이 기본적인 성교육”이라며 “유네스코 성교육 가이드라인의 포괄적 성교육 원칙에 맞춰 모든 젠더 스펙트럼에 대한 이야기를 담으려했다”고 말했다.
성적 대상화, 여성 혐오, 포르노그래피, 가스라이팅 등 우리 몸과 연결된 사회적 현안들을 살피고, 이를 끊어낼 수 있는 일상적인 실천과 대응법을 제안한 것도 특징이다. 김 활동가는 “지금의 청소년들은 온라인에서 친구를 만들고, 새로운 세계를 확장하는데, 이 공간은 여성 혐오적인 발언이나 가스라이팅 같은 범죄가 일어나는 공간이기도 하다”며 “행동을 제한하는 방식으로 교육할 것이 아니라, 그러한 범죄들에 어떻게 대처할지를 알려주는 이야기들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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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인 기자 hyein@khan.kr
플랫팀 twitter.com/flatflat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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