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①] 사격 은메달 김민정 "난 아직 65점..채울 부분 있어 행복해"

조재현 기자 2021. 8. 12. 09:5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고민만 가득했던 리우 때와 달라.."정답 찾은 느낌"
도쿄올림픽 여자 25m권총 은메달리스트 김민정이 10일 오전 서울 종로구 뉴스1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갖고 있다. 2021.8.10/뉴스1 © News1 임세영 기자

(서울=뉴스1) 조재현 기자 = 도쿄 올림픽에선 300개 이상의 '값진' 은메달이 나왔다. 사격 대표팀 김민정(24·KB국민은행)이 25m 권총 결선에서 슛오프(연장) 접전 끝에 목에 건 메달 역시 이중 하나다. 2012년 런던 대회 김장미 이후 9년 만에 여자권총에서 나온 메달이었고, 이번 올림픽 사격 대표팀에서 나온 유일한 메달이었다.

숨조차 제대로 쉬기 어려운 곳에서 피워낸 소중한 결실이다.

선수들이 총을 쏘는 '사대'는 외롭고 고독한 공간이다. 1~1.5m 너비의 공간에 홀로 서서 멀리 떨어진 표적 속 1㎜ 한계와 마주해야 한다. 경기가 시작되면 그 누구의 도움도 받을 수 없다. 순간에 방심이 승자와 패자를 가른다. 실탄의 무게는 2.59g에 불과하지만 그 한 발에 실린 압박감과 무게감은 측정할 길이 없다.

김민정도 5년 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 쓴잔을 들이켰다. 만 19세였다. 갓 성인이 된 그는 올림픽이란 거대한 바람 앞에 쉽게 흔들렸다. 첫 올림픽은 그렇게 흘러가 버렸다. 하지만 이를 계기로 김민정은 더욱 단단해졌고 두 번째 올림픽 출전에서 열매를 얻었다.

그는 금메달을 놓치고도 슬퍼하지 않았다. 되레 환한 미소로 다음을 기약했다. 또 사격 선수로서 한 단계 성장할 수 있었다며 만족감을 표했다. 그는 이번 올림픽을 돌아보며 '메달' '경쟁'과 같은 단어는 좀처럼 쓰지 않았다. '행복' '만족감' '발전' 등을 더 언급했다.

김민정은 10일 진행한 <뉴스1>과 인터뷰에서 "도쿄 올림픽은 나를 더 성장하게 만들어준 대회"라고 회상했다.

◇ 금메달이냐 은메달이냐…살 떨리는 순간에도 입가에 번진 승부사의 미소

긴장감이 팽팽하다 못해 흘러넘쳤던 결선. 꼴찌로 결선에 오른 김민정이 1위로 치고 나섰으니 눈과 귀가 집중되는 것은 당연했다. 경기를 지켜본 많은 이들이 맘을 졸였는데 정작 선수 본인은 어땠을까. 당시 상황부터 먼저 물었다.

대한민국 사격 김민정이 7월30일 오후 도쿄 아사카 사격장에서 열린 '2020 도쿄올림픽' 여자 권총 사격 25m 결선 경기에서 사격 준비를 하고 있다. (다중노출 촬영) 2021.7.30/뉴스1 © News1 이재명 기자

25m 권총 결선은 급사 50발(5발 단위 사격)로 순위를 정한다. 10.2점 이상을 쏘면 1점, 쏘지 못하면 0점을 얻는다. 초반 선두로 치고 나선 김민정은 비탈리나 바차라시키나(러시아올림픽위원회)와 엎치락뒤치락 선두 경쟁을 벌였다. 마지막 5발을 남겨두고는 34-33, 1점 차로 앞서기도 했다.

그는 마지막 5발을 남겨 놓고 속으로 '내가 멍청한 일만 하지 않으면, 내가 실수하지 않으면 금메달은 내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하지만 마지막 구간(46~50발)에서 희비가 갈렸다. 4발을 명중시킨 김민정과 달리 바차라시키나는 5발 모두 과녁에 적중시켰다. 결국 동점. 승부는 연장으로 향했다.

그는 당시 상황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김민정은 올림픽 결선 슛오프가 확정된 순간, 미소를 지어 보였다고 털어놨다. 이유가 있었다. 그는 평소 경기에서도 유독 슛오프 상황에 자주 놓이곤 했다. 하지만 여느 국제대회와 무게감이 다른 올림픽에서 금메달과 은메달을 놓고 슛오프를 펼치게 될 거라곤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TV 중계화면에 잡혔는지 모르겠지만, 경기장 안내 멘트로 '슛오프'가 들리자 나도 모르게 미소가 얼굴에 번지더라고요. 속으론 너무 흥미진진했어요. '너무 재밌네'라는 생각도 막 들더라고요."

'승부사의 미소였나'라고 되묻자 그는 방싯 웃었다. 김민정은 "평소에도 주변 사람들이 '경기 때 가슴 좀 졸이게 하지 마라'는 말을 많이 하는데 '올림픽까지 와서 졸이게 해 줬네' 이런 생각이 들어 웃음이 났다"고 말했다.

김민정이 7월30일 오후 도쿄 아사카 사격장에서 열린 '2020 도쿄올림픽' 여자 권총 사격 25m 결선 경기에서 은메달을 확정지은 후 기뻐하고 있다. 2021.7.30/뉴스1 © News1 이재명 기자

◇ '빗나간 4발' 전혀 아쉽지 않았다…"힘들었던 준비 과정에 대한 '정답' 찾은 느낌"

은메달은 확보했지만 이내 다시 평정심을 찾아야 했다. 단 5발에 금메달리스트로 기억되느냐 마느냐가 달려 있었다. 모두가 숨죽인 순간, 김민정과 바차라시키나는 순식간에 5발을 모두 쐈다. 한쪽에서 환호성이 들렸다. 러시아올림픽위원회 측에서 쏟아진 목소리였다. 김민정은 1점을 얻었으나 바차라시키나는 4점을 챙겼다. 그렇게 은메달이 확정됐다. 김민정은 우승한 바차라시키나와 포옹하며 서로를 격려했고, 이내 양손을 높이 들어 보이며 밝게 웃었다. 아쉬움은 전혀 없는 얼굴이었다.

김민정은 "내가 이렇게 열심히 해서 좋은 결과가 나왔다는 생각에 너무 기뻤다. 고민하던 문제의 '정답'을 찾은 듯한 느낌이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도쿄올림픽 여자25m 권총 은메달리스트 김민정 선수가 10일 오전 서울 종로구 뉴스1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갖고 있다. 2021.8.10/뉴스1 © News1 임세영 기자

더 자세히 물었다. 그는 이번 대회를 준비하면서 결과적인 목표보다 과정상의 목표를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고 강조했다. 김민정은 "준비하는 과정 하나하나가 힘들고 어려웠다. 그래서 메달을 반드시 따야겠다고 생각하면 더 힘들 것 같았다. 실패했을 때 좌절감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고 말했다.

김민정은 이어 "그래서 과정에 더 무게를 뒀다. 그러다 보니 메달 색과 상관없이 너무 잘했다는 생각이 먼저 들더라. 정말 행복했다"며 "'내가 걸어온 길과 준비한 과정이 잘못된 게 아니라 옳은 길로 왔구나' 하는 정답을 받은 것 같았다. 기분이 정말 좋았다"고 웃어 보였다.

◇ 집중했던 10m 공기권총 탈락에 '멘붕'…주저앉아있을 수만은 없었다

그는 이번 올림픽을 준비하는 과정이 쉽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대표 선발전부터가 그랬다. 김민정은 지난 4월 10m 공기권총 대표팀 선발전에서 3위에 그쳐, 2명에게 주어지는 올림픽 출전권을 얻지 못했다. 올림픽을 앞두고 중점적으로 훈련하던 종목이라 상실감이 더 컸다. 10m 공기권총은 리우 올림픽 때 출전한 종목이기도 했다. 본선 18위로 결선에 오르지 못했기에 만회하고 싶은 마음도 컸다.

더 간절해서였을까. 슬럼프가 찾아왔다. 대회 개막은 다가오는데 실력은 제자리걸음이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었다. 그래서 선발전을 앞둔 2~3달 전부터 25m 권총은 제쳐두고 10m 공기권총에 전력을 쏟았다.

도쿄 올림픽 여자 25m 권총 은메달리스트 김민정이 10일 오전 서울 종로구 뉴스1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갖고 있다. 2021.8.10/뉴스1 © News1 임세영 기자

김민정은 "이렇게 10m 공기권총을 준비했는데 선발전에서 떨어지고 나니까 진짜 '멘붕'(멘털붕괴)이 왔다. 솔직히 충격이 컸다. '시간을 절대 허비하지 않았는데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하는 고민도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고 말했다. 시간이 지났음에도 쓰라림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그러나 낙담만 하고 있을 순 없었다. 이틀 후면 곧바로 25m 권총 선발전이었다. 마음을 추슬러야만 했다. '25m 권총마저 놓치면 너무 후회될 것 같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쳐 몸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다시 이를 악물었다. 하지만 훈련량이 절대 부족했다. 다른 선수들이 정규 훈련을 마치고 돌아간 후에도 김민정은 훈련장을 떠나지 않았다. 그렇게 연습에 매진한 결과 25m 권총 대표 선발전을 1위로 통과했다. 절친한 후배이자 동료인 후배 김보미(23)가 그를 '천재'라고 치켜세운 이유도 바로 여기 있었다. 김민정은 "올림픽 참가를 확정 지은 순간 10m 공기권총 탈락의 아쉬움은 바로 잊었다"고 웃었다.

<②편에서 계속>

cho84@news1.kr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