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컷 리뷰]'그린 나이트' 매혹적인 자아성찰 로망스

CBS노컷뉴스 최영주 기자 2021. 8. 12. 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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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화 '그린 나이트'(감독 데이빗 로워리)
외화 '그린 나이트' 캐릭터 스틸컷. ㈜팝엔터테인먼트 제공


※ 스포일러 주의

'가웨인 경과 녹색의 기사'라는 중세 로망스가 말하는 것은 완전무결함이 아니다. 완전무결하기 위해 흔들리고 깨지면서 자기를 성찰해나가는 한 인간의 여정이야말로 완전무결에 가까움을 말한다. 이를 매혹적인 색채와 시퀀스로 구성한 영화가 바로 '그린 나이트'다.

크리스마스 이브, 아서왕(숀 해리스)과 원탁의 기사들 앞에 한 손에 도끼, 다른 한 손에는 평화의 상징인 호랑가시나무를 든 녹색 기사(랄프 이네슨)가 나타난다. 녹색 기사는 아서왕과 기사들을 향해 "가장 용맹한 자, 나의 목을 내리치면 명예와 재물을 주겠다"고 제안한다. 단, 1년 후 제안을 받아들인 기사가 녹색 예배당에 찾아와 자신에게 가해진 만큼 자신의 도끼날을 받는다는 조건을 건다.

함부로 나서길 주저하는 기사들 사이에서 아서왕의 조카 가웨인(데브 파텔)이 도전에 응해 녹색 기사의 머리를 벤다. 그 후 약속의 시간이 다가오자 가웨인은 5가지 고난의 관문을 거치는 여정을 시작한다.

외화 '그린 나이트' 캐릭터 스틸컷. ㈜팝엔터테인먼트 제공


'그린 나이트'(감독 데이빗 로워리)는 14세기 영국에서 집필된 작가 미상의 두운시 '가웨인 경과 녹색의 기사'를 원작으로 한다. '반지의 제왕' 작가 J. R. R. 톨킨이 현대어로 최초 번역해 세상에 드러난 '가웨인 경과 녹색의 기사'는 아서왕 전설을 다루고 있지만, 우리가 알고 있던 전형적인 로망스와는 조금 다른 결을 갖고 개인과 기사라는 존재를 이야기한다.

영화는 자신이 기사라는 사실을 부정하며 자신이 누구인지,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게 무엇인지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던 가웨인이 온갖 유혹과 고난을 넘어 기사가 되어가는 여정을 보여준다. 가웨인을 흔드는 유혹은 기사로서 가져야 할 덕목인 관대함, 신의, 순결, 예의범절, 연민을 뒤흔드는 시험이다. 기사로서의 도덕관과 인간으로서의 욕망과 본능 사이에서 끊임없이 유혹받고 갈등하는 한 명의 인간이자 기사인 가웨인의 여정이 '그린 나이트'의 핵심이다.

영화 초반, 녹색 기사가 제안한 목숨을 건 목 베기 게임에 원탁의 기사들은 모두 주저한다. 기사로서의 긍지보다 목숨을 내놔야 한다는 두려움이 크기 때문이다. 원탁의 기사들이 두려워서 나서지 못할 때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나선 가웨인이 녹색 기사의 목을 베는 모습은 사뭇 이상적인 기사 그 자체다.

그러나 녹색 기사가 내건 조건에 따라 1년이 되는 시점에 맞춰 여정을 떠난 가웨인의 모습은 영화 초반 그가 보여준 이상적인 기사도를 뒤흔들며 시험에 들게 만든다. 기사라는 이상과 가웨인이라는 개인의 현실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하고 흔들리는 가웨인을 통해 완전무결한 기사란 무엇인지 되묻는 것이다. 즉 목 베기 게임은 가웨인의 자아 성찰과 정체성 확립을 위한 시작점이다.

녹색 예배당으로 가는 길 초반에 보이는 네 갈래의 길은 가웨인이 수많은 선택의 기로에 놓이고 시험받을 것임을 암시한다. 이처럼 영화는 시작부터 끝까지 다양한 은유와 상징으로 둘러싸여 있다. 기사와 기사의 덕목을 상징하는 요소들이 곳곳에 아름다우면서도 매혹적으로 녹아있다.

외화 '그린 나이트' 캐릭터 스틸컷. ㈜팝엔터테인먼트 제공


그 중 대표적인 상징이 녹색 기사다. 영화 속에서도 드러나듯이 녹색은 생명이자 신앙이자 불멸을 상징하기도 하지만 반대로 비인간적인 것과 독, 공포 등을 상징하기도 한다.

목 베기 게임을 제안한 녹색 기사 역시 이중적 존재로서 나타난다. 겉모습은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은 숲 그 자체 혹은 기사와 반대되는 야만인의 모습이다. 그러나 그가 아서왕 앞에서 보인 예의와 기품 넘치는 태도는 기사의 모습과 유사하다. 영화 초반 녹색 기사의 목과 마지막 가웨인의 목 역시 이중적인 모습으로 드러난다.

어쩌면 기사들로 대변되는 인간들이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 짓밟았던 숲이 녹색 기사 그 자체인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기사들이 가장 고귀하다 여긴 기사의 긍지는 물론, 녹색 기사가 가진 생명의 무한함과 달리 유한함을 가진 인간을 시험하고자 목 베기 게임을 제안했다고 볼 수도 있다.

영화에는 원형의 이미지가 여러모로 등장하는데 이는 영화가 가진 주제, 가웨인의 여정, 수미상관을 이루는 목 베기 게임과도 단단하게 얽혀 있다. 원탁의 기사, 1년이란 유예 기간, 360도 회전하는 카메라 워크, 플래시 백 등 영화 내내 보이는 원형의 이미지는 목 베기 게임부터 시작해 가웨인을 향한 유혹들, 획득물 교환 게임과 가웨인의 생사, 기사로서의 삶과 정체성이 모두 하나로 모여 얽히게 됨을 의미한다.

외화 '그린 나이트' 캐릭터 스틸컷. ㈜팝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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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 나이트'는 이러한 상징과 원형적인 요소들을 거쳐 완벽하진 않지만 기사로 인정받은 가웨인의 모습을 그린다. 완벽한 기사, 완벽한 도덕성의 허상을 보여줌과 동시에 인간이자 기사로서 완벽함은 무엇인가 질문한다. 어쩌면 플래시백 이후 자신을 성찰한 모습을 보인 가웨인처럼, 전통적인 의미에서 기사도 덕목에 완벽하게 부합하는 기사보다 녹색 허리끈으로 대변되는 죄책감과 부끄러움을 돌아보는 자기 성찰이 더 중요한 가치임을 알린다.

'그린 나이트'는 전반적으로 낮은 채도를 바탕으로 어딘지 모르게 스산하고 음울한 분위기의 톤을 유지한다. 그러나 이러한 색이 이루는 시퀀스는 분명 매혹적으로 다가온다. 또한 영화가 도덕성과 자기 성찰에 관해 느리면서도 확실하게 묻는 영화임을 영화의 톤으로도 보여준다.

영화가 미학적으로 그려낸 다양한 은유와 상징을 하나하나 찾아보고 그 안에 담긴 의미를 파헤쳐보는 재미야말로 '그린 나이트'의 관전 포인트가 될 것이다.

129분 상영, 8월 5일 개봉, 15세 관람가.

외화 '그린 나이트' 캐릭터 포스터. ㈜팝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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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노컷뉴스 최영주 기자 zoo719@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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