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南, 엄청난 안보위기 느끼게".. 北, '말폭탄' 이어 '행동 돌입'도?

김범수 2021. 8. 12.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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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여정 이어 김영철도 대남 엄포
北, 이틀째 연락채널에 응답 안해
통일부 "군사긴장 고조 도움 안 돼"
남북관계 주요 국면서 말폭탄 반복
적정한 도발 수위 놓고 셈법 분주
美 의식 SLBM 발사 등은 숙고할 듯
청와대 '예의 주시' 기존 태도 유지
불과 2주 만에 분위기 급변 '당황'
윤석열 이면합의 제기엔 "사실 아냐"
북한이 한미연합훈련 사전연습 시작을 비난하며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경고하고 나선 11일 경기도 파주시 통일대교 남단에 평소처럼 바리케이드가 놓여 있다. 연합뉴스
북한이 11일 한·미 연합훈련 사전 훈련 개시에 대해 반발하며 이틀째 비난 수위를 높였다. 남북연락통신선은 이날도 불통되면서 이틀째 중단 상태를 이어갔다. 북한의 대남 비난과 지난달 27일 복원된 통신선 불통으로 북한의 대남 강경 태도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김영철 노동당 통일전선부장은 11일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남조선 당국이 반전의 기회를 외면하고 10일부터 전쟁 연습을 또다시 벌려놓는 광기를 부리기 시작했다”라며 “잘못된 선택으로 스스로가 얼마나 엄청난 안보 위기에 다가가고 있는가를 시시각각으로 느끼게 해줄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 부장은 “(남측은) 평화와 신뢰라는 것이 한갓 말장난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스스로 드러내 보였다”며 “기회를 앞에 놓고도 남조선 당국이 명백한 자기들의 선택을 온 세상에 알린 이상 우리도 이제는 그에 맞는 더 명백한 결심을 내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미국을 향해서는 “남조선과 미국이 변함없이 우리 국가와의 대결을 선택한 이상 우리도 다른 선택이란 할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고 했다.

김 부장은 지난 1일 김여정 당 부부장이 한·미 연합훈련 중단을 요구하는 담화를 발표했던 것을 언급하면서 “당 중앙위원회 위임에 따라 남조선 당국에 분명한 선택의 기회를 주었던 것”이라며 “우리의 권언을 무시하고 동족과의 화합이 아니라 외세와의 동맹을, 긴장 완화가 아니라 긴장 격화를, 관계 개선이 아니라 대결이라는 길을 선택한 것”이라고 비난했다.

북한은 전날 오후부터 남북 연락채널에 무응답하고 있다.

(왼쪽부터)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 김영철 노동당 통일전선부장.
북한의 비난전 강화 와중에 통일부는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 고조는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향후 상황을 예단하지 않고 북한의 태도 등을 면밀하게 주시하겠다”고 밝혔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북한이 발표한 일련의 담화는 도발을 위한 ‘명분 쌓기용’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분석했다.

북한의 향후 행보에 대해서는 엇갈린 분석이 제기됐다. 대남라인의 잇따른 ‘안보위기’ 거론으로 미뤄볼 때 단거리미사일이나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시험발사 등 도발을 시도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반면 긴장도를 고조시키는 전술은 연합훈련 기간에만 가동될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미사일 시험발사·대남부서 폐쇄 등 ‘행동 돌입’ 가능성 

북한이 한·미 연합훈련 사전훈련 시작 이후 연일 ‘말폭탄’을 던지면서 대남 무력 도발 가능성까지 눈앞에 다가왔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2주 전 남북 통신연락선 재개로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장밋빛 기대가 나왔던 상황이어서 정부와 정치권에선 당황한 기류도 읽힌다. ‘규모에 관계없이 연합훈련은 안 된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힌 북한이 이번엔 연례적 대응으로 멈추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조심스럽게 나온다. 임기 마지막 해 남북관계를 복원해 한반도평화프로세스를 다음 정부로 연결시키겠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구상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北 무력도발 가능성도…“도발 위한 명분 쌓기”

11일 나온 김영철 북한 노동당 통일전선부장의 담화는 전날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의 담화를 이어가는 차원이면서, 동시에 미국보다는 ‘동족보다 동맹을 택한’ 남측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다. 미국은 본격적으로 건드리지 않고 남측을 때리는 그간의 북한의 행보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것이다. 김영철은 대남 강경파로, 지난해 통신연락선 단절을 주도했다.
북한은 지난해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 이후 주요 남북관계 국면에서 주요 기구의 당국자들이 돌아가면서 대남 말폭탄을 던지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번 연합훈련 기간 중에도 이 같은 모습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무력 도발 역시 곧 시작될 전망이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연락채널 가동 중단이 1단계 행동조치라면 2단계 행동조치는 단거리 미사일 시험발사 등 긴장을 단계적으로 고조시키는 것”이라며 “조국평화통일기구 폐지, 금강산관광국 폐지 등 김 부부장이 지난 3월 이미 예고한 대로 대남부서를 폐쇄할 가능성도 있다”고 내다봤다.
11일 경기 파주시 접경지역에서 바라본 남한 대성동 마을의 태극기와 북한 기정동 마을의 인공기가 마주 선 채 바람에 휘날리고 있다. 파주=하상윤 기자
그럼에도 북한은 여전히 적정한 도발 수위를 고심하고 있을 것으로 보인다. 잠수함탄도미사일(SLBM) 발사는 미국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부분이어서 숙고할 가능성이 높다. 전날 김 부부장의 담화, 이날 김 부장의 담화도 미국을 건드리는 수위는 높지 않았다.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서 중국 왕이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이 한·미 연합훈련 문제를 직접 제기했듯 미·중 간 긴장관계의 맥락에서 북한의 태도를 읽어야 한다는 분석도 있다. 김동엽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한반도 문제에 대한 중국 측 발언과 김영철의 이번 담화가 무관하지 않고 북·중 간 교감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짚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018년 9월 19일 평양 백화원 영빈관에서 평양공동선언문 서명식을 마친 뒤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과 악수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신중한 靑, 文 임기 내 남북관계 복원 물 건너가나

청와대는 김영철 담화를 놓고 ‘예의주시하고 있다’는 기존 태도를 유지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날 “김여정 부부장 담화 때와 (입장이) 거의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며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과 남북 관계 발전을 위해서 남북이 서로 노력을 하겠다”고만 말했다. 북한의 대남 도발 시 소집되는 국가안전보장위원회(NSC) 상임위도 열리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대응은 현 상황을 우선 조심스럽게 관리해야 한다는 판단에 따른 조처인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 내에선 북한이 아직 실질적 위협 행동을 하지 않은 점, 문 대통령에 대한 직접적 비난을 하지 않은 점 등을 들어 대화 분위기가 완전히 깨지지 않았다는 기류도 있다. 하지만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만큼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기대가 고조된 지 불과 2주 만에 급변한 분위기에 내부적으로는 고심이 클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는 이날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제기한 ‘통신선 복원 이면합의’ 의혹에 대해선 “사실이 아니다”고 답변했다.

여권에선 북한의 대응에 당황한 분위기가 읽힌다. 남북관계에 정통한 한 여권관계자는 이날 “한·미 연합훈련 진행과 관련해 북한을 설득하는 작업이 있었어야 했는데 그러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며 “안보라인 내부에서 ‘북한이 저러다 말겠지’라는 안이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거 아니냐”라고 말했다.

김범수, 홍주형, 이도형 기자 jhh@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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