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좋은 우리말]"오뎅·벤또만 문제?..민주주의도 일본어 잔재죠"

글·사진=조상인 기자 2021. 8. 1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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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식 조어 꼬집은 이건범 한글문화연대 대표
日 통해 받아들여진 개념·학술용어
150년 넘게 구분되지 않고 사용돼
단어 의미 되새겨 '우리 언어화' 필요
외국어 마구 가져다 쓰는 것보다는
심쿵 등 창의적 조어가 더 나을 수도
이건범 한글문화연대 대표
[서울경제]

“우리말 속 일본어 잔재를 생각할 때 ‘오뎅’(어묵)이나 ‘벤또’(도시락) 같은 표현들이 문제일까요, 아니면 문화재·제세동기·진검승부 같은 단어가 더 큰 문제일까요? 아무 고민 없이 일본을 통해 받아들여서 쓰고 있는 ‘무임승차’ 같은 말들에 대해 이제는 고민을 해야 합니다.”

제 76주년 광복절을 앞둔 11일 서울 마포구 한글문화연대 사무실에서 서울경제와 만난 이건범(사진) 한글문화연대 대표는 청산해야 할 우리말 속 일본어 잔재에 대해 이 같은 문제 의식을 제기했다. 우리말 사용에 대한 인식이 자리를 잡으면서 이제 명백한 일본어 사용에 관해서는 국민들 스스로 사용을 자제하는 분위기가 확립되고 있다. 이따금 “재미있는 우스개 표현”으로 쓰이는 정도다. 하지만 특정 분야의 전문용어나 학술·개념 용어의 경우 오래 전 일본식 표현을 거르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인 탓에 우리말인지 일본식 조어인지 구분되지 않고 쓰이고 있는 실정이다. 이 대표는 이것이 더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예를 들어 ‘민주주의’도 엄밀히 따지면 일본에서 만들어진 조어다. 이 대표는 “자본주의(Capialism)이나 사회주의(Socialism)는 ‘이즘(-ism)’을 뜻하는 주의(主義)를 붙여 쓸 수 있는 말이지만, 통치·정치의 개념인 민주주의(Democracy)에 ‘주의’를 붙인 것은 일본의 영어 번역을 그대로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것”이라고 짚는다. 그는 “일본은 메이지유신을 전후로 서양의 학술 용어를 받아들이면서 자신들의 언어로 번역했는데, 이후 한국과 중국 지식인들이 그 용어를 무분별하게 수입해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잔재’”라고 꼬집었다. 그는 “우리가 ‘민주주의’ ‘문화재’ 같은 개념을 일본을 거쳐 받아들인 것이 150여 년 전의 일인데 당시만 해도 이들 개념 용어와 학술 용어를 고민할 여건이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라며 “이제는 일본말 잔재에 대한 문제 의식만 가지던 것에서 탈피해 우리가 부여한 단어의 의미를 잘 새기고 ‘우리 언어화’에 대해 고민할 수 있어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건범 한글문화연대 대표

그런 의미에서 조금씩이라도 쉬운 우리말을 쓰고 더 좋은 우리말을 찾으려는 노력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은 긍정적인 신호다. 한국도로공사는 지난해 한글문화연대에 의뢰해 토목공사와 고속도로 운영 등에서 흔히 쓰이는 일본어 잔재를 찾아내고 이를 우리말 표현으로 바꾸는 전문용어 표준화 작업을 진행했다. 현장에서 흔히 쓰이는 표현인 ‘나라시’는 고르기, ‘오사마리’는 마무리, ‘단도리’는 채비로 고쳐쓰고 ‘헤베’는 제곱미터, ‘루베’는 세제곱미터, ‘노가다’는 현장 근로자로 바꿔 써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이 대표는 “전문 용어 표준화가 강제력을 갖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행정용어로는 우선 사용될 수 있다”며 “이는 나아가 산업 용어와 일상 용어로 점차 확장될 계기를 마련하게 된다”고 평가했다.

언어의 진정한 독립은 우리 말로 세상의 모든 현상과 개념을 표현할 수 있을 때 이뤄진다. “언어는 인권”이라고 강조하는 이 대표는 “외국어를 그대로 받아들여 일부 지식인·전문가 층에서만 이해 가능한 용어가 남용될 경우 지식의 대중화가 불가능해진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그가 보기에는 오히려 요즘 젊은 세대의 신조어와 줄임말 사용에 긍정적인 측면이 강하다. 그는 “전경련(전국경제인연합회)이나 기재부(기획재정부)처럼 기성 세대도 숱한 줄임말을 사용하면서 소통이 어렵다는 이유로 젊은 층이 쓰는 신조어·줄임말에 대해 지적하는 것은 일방적인 제재나 다름없다”며 “외국어를 마구 가져다 쓰는 기성세대보다 밀땅,꿀잼,심쿵,빼박 등 재미있고 새로운 느낌을 표현하기 위해 창의적 조어 능력을 발휘하는 젊은 세대가 더 희망적”이라고 강조했다. “일본어 뿐만 아니라 영어 등 외국어 차용을 당연하게 여기던 데서 벗어나 문화적 자존심을 되새겨야 합니다. 생각도, 말도 언어로 하는 것인 만큼 한국어를 보다 윤택하고 풍부하게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글·사진=조상인 기자 ccs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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