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화원·경비원.. "내 직업보다 좋은 일이 뭐죠?"

양지호 기자 2021. 8. 12.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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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와 달라진 청년들 직업 기준
'청년 도배사..' '콜센터 상담원' 등 3D 직업 종사자 에세이 쏟아져

“콜센터 근무 경력이 오래된 친구 중에는 ‘먹방’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 쩝쩝거리는 소리를 견딜 수 없다는 것이다. 고객이 뭘 먹으면서 전화를 거는 경우도 많아 생긴 직업병이랄까.”

10년 경력의 ‘콜센터 상담원’(필명이자 그의 직업이기도 하다)이 쓴 ‘믿을 수 없게 시끄럽고 참을 수 없게 억지스러운’(코난북스)의 한 대목이다. 도배사나 아파트 경비원, 콜센터 상담원 등 소위 ‘3D’로 분류되는 직업 종사자의 에세이가 출판계 블루칩으로 떠올랐다. 최근 ‘청년 도배사 이야기’(궁리) ‘나는 아파트 경비원입니다’(정미소)가 출간됐고, 올 초에는 각각 전철역 미화원과 건설 현장 노동자가 쓴 ‘나는 밤의 청소부입니다’(쌤앤파커스) ‘노가다 칸타빌레’(시대의창)가 출간됐다. 이들의 작품에는 ‘경험자’만이 쓸 수 있는 핍진한 묘사가 가득하다.

도배사, 경비원, 콜센터 상담원 등의 일터 이야기가 에세이로 나오고 있다. 왼쪽부터 ‘청년 도배사 이야기’ ‘믿을 수 없게 시끄럽고 참을 수 없게 억지스러운’ ‘나는 밤의 청소부입니다’ ‘나는 아파트 경비원입니다’ 표지. /각 출판사

표정훈 출판평론가는 “과거 직업 에세이는 의사·기업인 등 선망하는 직군에서 성공한 사람이 썼다면, 최근 들어선 MZ세대를 필두로 직업의 귀천에 대한 선입견이 약해지면서 훨씬 다양한 직업 세계의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고 했다. ‘청년 도배사 이야기’를 쓴 배윤슬(28) 저자는 연세대 사회복지학과를 졸업하고 도배사가 된 인물. 그는 출판사와 진행한 저자 인터뷰에서 “청년이 직업을 선택하는 기준은 기성세대와 다르다”며 “(기성세대가 말하는) ‘더 좋은 일’이 뭔지 오히려 묻고 싶다. 현재 만족하고 즐기는 일, 몸은 힘들어도 마음은 편한 일. 그보다 나은 일이 무엇인가”라고 했다. 김현숙 궁리 편집주간은 “배씨가 인스타그램에 자신의 도배사 생활을 올리는 것을 보고 출간을 제의했다”고 말했다.

고학력자들이 이들 직군에 진입한 것도 변화한 한국 현실을 보여준다. 저자들은 한때 사회복지사(도배사), 무역회사 대표(경비원), 시인(청소부), 언론인(노가다) 같은 일을 했었다. ‘나는 아파트 경비원입니다’를 쓴 최훈(66·필명)씨는 수도권 대단지 아파트에서 3년째 일하고 있다. 건설회사를 그만두고 차린 무역회사가 망하면서 경비원이 됐다. 이른바 갑(甲)질을 당할 때마다 “나는 투명인간이다”라고 되뇌이며 써둔 원고가 소설가 장강명의 눈에 띄면서 출간으로 이어졌다.

소셜미디어를 통해 출간 전에 개인적으로 글을 발표하는 길이 늘어난 것도 새로운 저자 발굴을 수월케 하는 요소. 콜센터 상담원의 경우, 트위터 계정 팔로어가 약 3만명인 ‘파워 트위터리안’이다. 그는 책에서 “피난처가 필요해 트위터 계정 ‘콜센터 상담원’을 운영하기 시작한 것이 책을 쓴 계기가 됐다”고 했다. 표정훈 평론가는 “앞으로도 직업 에세이는 더 다양해질 전망”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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