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순간까지..또 다른 '10인의 궁사'가 활을 잡고 있었다

우리가 몰랐던 '양궁 숨은 이야기'

[경향신문]

2020 도쿄 올림픽 4관왕에 빛나는 양궁 대표팀은 코로나19 감염에 따른 이탈자 발생 우려로 비밀리에 대체선수들까지 준비시킨 것으로 드러났다. 사진은 도쿄 올림픽 양궁 경기가 열린 일본 도쿄 유메노시마공원의 양궁장 모습. 연합뉴스

도쿄 올림픽 출전 국가대표 선수들
코로나 감염될 경우 대비 ‘플랜B’
예비 엔트리 국군체육부대서 대기
음성확인서·비행기표도 예약해놔

대회 개최 불확실성과의 싸움 속
보이지 않는 땀과 꿈 메달로 결실

2020 도쿄 올림픽에서 금메달 5개 중 4개를 쓸어온 대한양궁협회(회장 정의선)의 치밀한 지원은 많이 알려져 있다. 진천 국가대표 선수촌에 도쿄 올림픽 양궁 경기장과 똑같은 세트를 설치하고 모든 환경을 100% 실전에 가깝게 맞춰 완벽하게 지원한 스토리는 전 국민의 감동을 자아낸다.

또 하나 숨겨진 비화가 있다. 대한양궁협회는 2020 도쿄 올림픽에 출전한 국가대표 선수들이 현지에서 코로나19에 감염될 경우를 대비해 언제든 도쿄로 날아갈 수 있는 대체선수들을 엔트리 교체가 가능한 마지막 순간까지 대기시켰다.

대한양궁협회 장영술 부회장은 11일 “2016년 리우 올림픽에서 전 종목 금메달 4개를 모두 따낸 이후 그해 겨울부터 도쿄 올림픽을 준비해왔다”면서 “경기장 환경, 훈련 방법 등은 물론 만에 하나 일어날 수 있는 상황까지도 모두 대비해 준비했다”고 말했다.

그 ‘만에 하나’ 중 도쿄 올림픽에서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은 태극 궁사들이 현지에서 코로나19에 감염되는 비상사태였다. 협회는 그에 대비해 남녀 5명씩, 10명의 ‘국가대표 2진’을 국군체육부대에 대기토록 하는 ‘플랜 B’를 가동했다.

외부와 차단된 훈련시설에 선수들을 보호했고, 실전감각을 잃지 않도록 훈련 스케줄을 가동했다. 도쿄 올림픽 조직위가 요구하는 엔트리 교체 마감 96시간, 72시간 전 코로나19 검사를 받아 영문 음성확인서를 준비했고 비행기표도 모두 예약해 두었다.

장 부회장은 “대기선수들 중에도 누가 감염될지 모른다는 가정을 하고 전원 준비시켰다”고 했다. 물론 대표 1진 선수들도 이 사실을 알고 있었고, 그들의 신경을 자극하지 않도록 조심하고 또 조심했다.

양궁협회는 매년 남녀 국가대표를 8명씩 선발해 1진은 올림픽, 세계선수권 등에 출전시키고 나머지는 아시아 선수권 등 기타 국제대회에 내보낸다.

2016 리우 올림픽 단체전 금메달리스트 이승윤을 비롯한 쟁쟁한 남녀 대표선수 10명이 마치 특수작전을 하듯 상무 부대에서 끝까지 긴장을 풀지 않고 대기한 것이다.

장 부회장은 “다행히 아무 일이 없었고, 예비 엔트리는 더 이상 가동될 수 없는 시간에 이르러 모두 취소했다”고 밝혔다. 올림픽 일정으로 조준발사가 시작되기 24시간 전인 지난달 22일이 ‘플랜 B’를 폐기한 날이었다.

양궁협회는 리우의 성취감이 채 사라지기도 전인 2016년 말 이사회부터 차기 올림픽을 준비했다. 도쿄 양궁장과 똑같은 환경을 만들었고, 시설뿐 아니라 대표 선발전을 치르는 동안에도 중계카메라가 선수들 코앞까지 다가오는 상황을 재현했다. 심박수 측정기에도 적응토록 했다.

한국 양궁의 훈련법을 따라하는 나라도 많다. 중국이 그랬지만 성과는 달랐다. 시설을 똑같이 준비했지만, 섬세함까지 따라오진 못했다. 남자 양궁 세계 1위 브래디 앨리슨(미국)이 도쿄에서 형편없는 기록을 내며 탈락한 뒤 “이 경기장에 적응하지 못했다”고 실토한 것을 보면 우리의 준비가 얼마나 치밀했는지 알 수 있다. 카메라가 1m 가까이 다가오는 낯선 환경을 경험해 보지 못한 선수가 평소 실력을 발휘하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도쿄 올림픽을 준비하면서 선수들이 가장 힘들어했던 것은 ‘개최 여부의 불확실성’이었다. 정의선 회장은 선수들에게 “올림픽이 열리지 않으면 똑같은 규모의 대회를 열고 포상해 주겠다”며 긴장감을 유지하도록 했다.

지난 10일 선수들과 지도자들에게 수억대 포상금과 자동차 1대씩을 성과에 맞게 포상한 정 회장은 “포상금은 대표선수들의 노력을 칭찬하는 의미 외에 다른 선수들도 목표를 정해 도전하도록 동기를 주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김경호 선임기자 jerome@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