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도 외로운 집콕? 휴대폰 들고 콕콕!

이명희 선임기자 2021. 8. 11. 2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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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온 맛집

[경향신문]

코로나19 거리 두기 시대
온라인 맛집에서 ‘솔푸드’ 찾기
생각보다 깊은 배달의 역사
짜장·짬뽕 넘어 신세계로

코로나19 4차 대유행으로 여행을 떠나기 어려운 요즘, 여행을 추억하는 또 다른 방법은 음식이다. 세상에서 먹는 것만 한 즐거움이 있을까.

거리 두기 연장으로 꼼짝없이 ‘집콕’ 신세여도 괜찮다. 코로나19 사태로 좋아진 게 하나 있다면 콧대 높던 맛집들의 음식을 집에서도 맛볼 수 있게 됐다는 것 아니겠는가. 코로나 장기화로 전통 깊은 유명 식당들이 속속 배달 앱에 입점하는가 하면 음식을 배달하지 않던 식당들도 배달을 하고 있다.

“이 집이 배달까지 하네?” 지난 여행지에서 또는 줄 서서 기다렸다 먹었던 음식을 집에서 배달시켜 먹을 수 있다니. 벌써 ‘집콕’ 우울증이 호전되는 듯하다. 이 여름, ‘배달 맛집’에서 나만의 ‘솔푸드’를 찾아보자. 음식이 보약이다.

서울 여의도 정인면옥의 평양냉면, 띵굴마켓에서 배달되는 무교동북어국집의 북엇국과 하동관의 곰탕(왼쪽 사진부터). 이명희 기자·띵굴마켓 제공

#여름엔 역시 냉면. 평양냉면 마니아들은 냉면은 겨울에 먹어야 제격이라지만, 찜통더위에 냉면만 한 것이 없다.

한낮 기온이 34도를 넘긴 지난 주말, 서울 여의도의 ‘정인면옥’을 다녀왔다. 몇 달 전부터 배달을 한다는 반가운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정인면옥은 평양냉면계의 신흥 강자다. 슴슴하면서도 고기향이 잘 잡힌 깔끔한 맛이 특징이다. 1972년 경기 광명시에서 시작해 2014년 서울 여의도로 옮겨 접근성을 높인 정인면옥은 미쉐린 가이드 ‘빕구르망’(합리적인 가격에 훌륭한 음식을 제공하는 식당)에 선정됐고, tvN <수요미식회> 평양냉면편에도 소개됐다. 그렇다보니 요즘 같은 날씨에도 점심때면 긴 줄이 늘어서곤 한다. 이날도 점심시간이 훌쩍 지났음에도 번호표를 받고 기다려야 했다.

정인면옥에는 평양냉면과 메밀 100%로 만든 순면 등이 있다. 을지면옥 등에서는 진즉 없앤 ‘반 접시’ 메뉴가 있어 냉면 외에 수육, 편육, 만두도 맛볼 수 있다.

담백한 맛으로 젊은층에게도 인기를 끌고 있는 정인면옥이 배달을 시작한 건 올해 초부터다. 예전에야 냉면도 배달을 했지만 요즘은 오래된 냉면집들 대부분이 여러 이유로 배달을 하지 않는다.

이북 출신인 외할아버지부터 시작해 3대째 가업을 잇고 있는 한승우 대표는 “코로나 감염 우려로 냉면을 먹고 싶어도 매장 찾기를 꺼리는 분들이 계시더라. 오시지 못하는 손님들을 위해 찾아가는 배달 서비스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문제는 매장에서 내놓는 냉면의 수준을 배달하면서도 지킬 수 있는지 여부였다. 냉면을 만드는 메밀면은 일반 면과 달리 찰기가 없어 불과 몇 분 사이에 확 불어버리기 때문이다.

한 대표는 “막상 배달 판매를 결정하고 나서도, 면을 붇지 않게 배달하는 방법을 찾기 힘들었다”면서 “여러 가지 테스트 끝에 방법을 찾았고, 지난 1월부터 배달 서비스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 대표가 착안해 낸 방식은 그릇에 면을 접어서 담는 것이다.

“일본의 우동이나 자루 소바 등을 떠올리다 착안해 낸 방법인데, 흔히 ‘면을 쥔다’고 하는 방식으로 면을 그릇에 담을 때 둥글게 말지 않고 접어서 담는 것이다.”

배달은 냉면의 맛을 최대한 유지하기 위해 4㎞ 이내만 한다. 현재 배달 판매는 전체 매출의 약 10%를 차지한다. 한 대표는 “코로나 상황임을 감안해서 좋은 취지로 배달을 시작했는데 수익만을 위해 배달에 뛰어든 것처럼 리뷰를 쓰시는 분들이 있어서 상처를 받기도 했다”며 “그래도 더운 날씨에 밖에서 대기 안 하고 먹을 수 있어서 고맙다고 하시는 분들이 더 많다”고 말했다.

이유원의 <임하필기>에는 순조가 ‘냉면을 사 오라고 시켰다’(빨간 부분)는 기록이 나온다.

#우리 민족은 언제부터 음식을 배달해 먹었을까. 기록에 나오는 배달 음식의 원조는 냉면이다. 조선의 실학자 황윤석이 일기 형식으로 쓴 <이재난고>에는 “과거시험을 본 다음날 점심에 일행과 함께 냉면을 시켜 먹었다”는 대목이 나온다. 날짜는 1768년 7월7일이다. 조선 말기 문신 이유원의 <임하필기>에는 순조(재위 1800~1834)가 즉위 초 군직과 선전관을 불러 달구경을 하다가 ‘냉면을 사 오라고 시켰다’는 기록도 나온다. 이를 보면 최소 18세기부터 임금과 양반 등 상류층에서 냉면을 배달시켜 먹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이보다 조금 뒤인 조선시대 말에는 국의 일종인 ‘효종갱(曉鐘羹)’을 배달해 먹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새벽종이 울릴 때 먹는 국’이란 뜻의 효종갱은 행세하던 양반들의 해장국이었다. 지금의 경기 광주 남한산성 일대의 해장국이 유명했는데 밤새 끓인 해장국을 항아리에 넣고 보온한 다음, 새벽녘 통행금지 해제를 알리는 파루(罷漏) 종이 치면 사대문 안의 대갓집으로 배달했다고 한다.

1925년 서예가 최영년(1856~1935)이 지은 <해동죽지(海東竹枝)>에는 “광주성 안에서는 이 국(효종갱)을 잘 끓인다. 배추속대·숙아(菽芽, 콩나물)·표고·소갈비·양지머리뼈·해삼·전복에 토장을 넣어서 종일토록 끓인다. 밤에 국 항아리를 솜에 싸서 서울로 메고 가면 시간이 재상가에 도착하여 새벽종이 울릴 때가 되는데 국 항아리가 아직 따뜻하여 술 마신 후에 국을 마시면 달콤하고 담백하며 향기가 짙어 이름이 세상에 알려졌다. 어떤 사람은 이 국을 보고 북촌의 장국으로 보기도 한다”고 기록돼 있다.

만세보(萬歲報) 1906년 7월14일자에는 최초의 음식 배달 광고가 등장한다. “각 단체의 회식이나 시내외 관광, 회갑연과 관혼례연 등 필요한 분량을 요청하시면 가까운 곳, 먼 곳을 가리지 않고 특별히 싼 가격으로 모시겠습니다.” 광고주는 고급 요릿집 명월관이었다.

냉면으로 시작된 우리 민족의 배달문화는 일제강점기인 1920~1930년대에 각종 탕과 국밥, 비빔밥 등으로 종류가 다양해졌다. 주로 상류층을 대상으로 하던 배달이 점차 대중화되며 음식 배달 문화가 널리 퍼졌다.

1963년 4월17일자 경향신문에는 서울의 한 대학가 하숙집으로 배달을 해주는 ‘월정매식제(月定賣食制)’가 인기라는 기사가 게재됐다. 신문에는 “월정매식제는 학생들의 하숙집으로 매끼 식사를 배달하는 제도. 세 끼에 1천원 하는 곳서부터 1천5백30원짜리에 이르기까지 그의 시세는 층층이다”는 내용이 실렸다. 당시 한 끼에 15원 정도인 1350원짜리가 보통 시세였고, 한 달을 대놓고 먹는 단골에 한해 에누리를 해줬다고 한다.

배달의 역사는 음식의 역사와도 맥을 같이한다. 백현석·최혜림의 책 <냉면열전>을 보면 192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 배달 음식의 대명사는 냉면이었다. 요즘이야 유명 냉면집들이 배달을 하지 않지만 예전에는 식당에서 먹는 손님보다 배달해 먹는 이가 더 많았을 정도라고 한다. 냉면 배달은 1960년대로 접어들면서 서서히 줄어들었다. 해방 후 미국이 밀 원조를 시작하면서 밀가루로 만드는 짜장면 등이 대중 음식으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이후 미군 부대를 중심으로 치킨이 유입됐고(주영하, <식탁 위의 한국사>), 1980년대에 대중적인 음식으로 자리 잡으며 본격적인 ‘배달 음식 시대’가 열렸다.

#짜장면과 치킨은 배달 앱의 등장으로 ‘국민 배달 음식’의 자리를 내주었다. 이젠 식사류는 물론 커피, 디저트까지 집으로 배달되는 세상이다. 고객의 처지에서 배달 서비스가 반가운 곳 중 하나는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인근 ‘서촌 계단집’이다. 술꾼들에게 유명한 계단집은 산지에서 공수한 제철 해산물을 먹기 위해 한겨울에도 긴 줄을 서야 했던 곳이다. 하지만 배달 앱에서 주문만 하면 뜨끈뜨끈한 ‘참소라 숙회’가 홍합탕과 함께 배달된다. 거북손은 덤이다.

다만, 근거리 배달만 가능하다는 아쉬움이 있다. 대부분의 배달 앱이 주소를 기반으로 근거리 가게만 노출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이에 숨은 니즈를 공략하는 원거리 배달 플랫폼도 있다. ‘띵굴마켓’은 기존 배달 앱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전국의 유명 맛집과 전통시장의 음식을 다음날 새벽 배달해주는 플랫폼이다. 하동관, 애플하우스, 명동충무김밥, 부산복집, 원조조방낙지 등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식당의 음식들을 거리에 상관없이 주문할 수 있다.

지난 9일 (주)띵굴의 손창현 대표는 기자와 통화하면서 “유명 맛집들은 동네 장사가 아니기 때문에 코로나 사태로 타격을 더 크게 입었다”면서 “근거리 위주의 기존 배달 플랫폼은 이들에게 맞지 않다. 우리는 가령, 하동관의 곰탕을 하루치 주문을 받고 하루에 한 번 픽업해서 지역별로 한꺼번에 배달하고 있다”며 “집에서 멀리 떨어진 식당의 음식도 시켜 먹을 수 있다는 게 띵굴만의 강점”이라고 말했다.

“예를 들어 경기 동탄에 사는 분들도 서울 망원시장의 전이나 을지로 은주정의 김치찌개를 주문하면 문 앞으로 배달된다. 배달비는 4만원 이상이면 무료, 4만원 이하는 거리 상관없이 3000원이다.”

물론 유명 식당들을 입점시키기는 쉽지 않았다. 손 대표는 “음식점 업주들이 처음에는 음식에 문제 생기면 어떻게 하냐며 내켜하지 않았다”면서 “여러 번 찾아가 업주들을 설득했고, 지금은 호응이 좋다”고 말했다. 현재 띵굴마켓에는 전국의 맛집을 비롯해 은마상가 등 전통시장 상점까지 합류해 250여곳이 입점해 있다.

“음식은 추억이기도 하다. 예전에 살았던 동네나 학창 시절 즐겨 먹었던 ‘솔푸드’를 그곳에 직접 가지 않고도 집에서 배달시켜 먹을 수 있다는 것에 사람들이 되게 감동한다. 제품화된 밀키트 제품을 먹는 것과는 다른 뭔가가 있다.”

이명희 선임기자 mins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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