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소멸시효 빌미로 '실효적 구제' 외면한 강제징용 판결
[경향신문]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또 패소했다. 지난 6월 ‘개인청구권은 살아 있지만 일본에 소송은 낼 수 없다’며 소송 자체를 각하한 1심 판결이 나온 지 두 달 만이다. 이번 판결은 소멸시효를 문제 삼았다. 2018년 10월 강제징용의 손해배상 청구권을 인정하고 ‘실효적 구제’를 하도록 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을 뒤집는 하급심이 잇따르고 있는 것이다. 강제징용 재판의 법적 안정성과 신뢰에 적색등이 켜졌다.
서울중앙지법은 11일 강제징용 피해자 이모씨 등 4명이 2017년 2월 일본 기업 미쓰비시 마테리아루(전 미쓰비시광업)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을 기각했다. 재판부는 “재판관할권은 한국에 있다”면서도 민법상 손해배상청구 소멸시효 3년이 지났다고 판결했다. 소멸시효를 적용하는 기산점을 2018년 대법원 확정 판결이 아니라 2012년 5월 대법원이 강제징용 사건의 손해배상을 인정하는 취지로 파기환송한 판결로 삼은 것이다.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과 관계없이 개인청구권은 소멸되지 않았다는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다수 의견이 무색해졌다. 두 달 전엔 식민지배의 불법성까지 “국내 해석”으로 보는 황당한 법리로 소송 자체를 막더니 이번엔 소송 제기가 늦었다는 새 논리가 등장한 셈이다.
일제강점기 불법행위에 대한 소송 소멸시효를 두고는 법정 시비가 이어져왔다. 2018년 12월 광주고법은 근로정신대 손해배상 소송에서 ‘청구권 행사의 장애는 2018년 대법원 확정판결로 해소됐다’고 봤다. 개인청구권은 한일청구권협정 때 없어졌고, ‘적어도 2012년 대법 파기환송 판결을 기점으로 삼아야 한다’는 일본 기업들의 해묵은 주장을 배척한 것이다. 소멸시효는 피해자들의 청구권 행사가 본격화된 2018년 대법 판결을 기준으로 삼는 게 합리적이다. 비슷한 사건에서 피해자를 두 번 울리는 법적 혼선은 상급심에서 조기에 바로잡기 바란다.
강제징용 손해배상 청구권을 인정하는 대법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 13년8개월이 걸렸다. 피해자 14만여명 중 다수가 세상을 떴고 1000여명이 소송에 나섰지만, 일본 기업의 사과와 배상은 한 건도 없었다.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은 전쟁범죄 소멸시효를 배제하는 특별법 청원 운동을 시작했다. 대법 판결의 소멸시효 3년도 오는 10월 끝난다. 소송조차 내지 못하는 일은 없도록 입법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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