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 새로운 출발점에 선 '금관의 선수들'
교향악단을 구성하기 위해선 여러 악기의 연주자들이 필요합니다. 가장 많은 인원을 차지하는 파트는 현악기군으로 바이올린·비올라·첼로·더블베이스가 무대 앞열을 차지합니다. 그 뒷열에는 목관악기군으로 플루트(피콜로)·오보에·클라리넷·바순이 위치합니다. 그리고 그 뒤로는 호른·트럼펫·트롬본·튜바 등의 금관악기가 보무도 당당하게 배치돼 있습니다. 이들의 모습은 마치 전진하는 군단의 늠름한 호위무사 같은데요. 여기에 맨 뒷열의 타악기까지 가세하면 그 위엄은 더욱 당당해집니다.
오케스트라가 한번 연주할 때 각 악기의 연주와 개런티를 재미있게 표현한 글이 있어서 소개해볼까 합니다. 바이올린은 매번의 연주마다 수천 번의 활을 그어야 하기 때문에 한번 긋는데 10원이고, 목관악기들은 불 때마다 1000원이지만, 금관악기는 10000원이라고 합니다. 큰 북은 어쩌다 한 번 치는데 10만원이라고도 하고요. 우스갯 소리 같지만 어떻게 보면 그만큼 금관 악기 단원들의 역할과 비중이 크다는 것을 암시하는 농담인 것 같습니다.
지난 20여년 동안 우리는 역량 있는 수많은 피아니스트와 바이올리니스트, 첼리스트 등을 배출했습니다. 해외에서 오랜 시간 동안 많은 공부를 하고 온 유학파도 차고 넘치는 실정입니다. 목관악기는 음악 마니아라면 누구나 잘 아는 해외 메이저 오케스트라에 입단하여 활약하는 음악가는 물론, 국제적 수준의 콩쿠르에 입상하는 음악가도 꾸준히 늘고 있는 실정입니다.
음악가 개개인은 이렇게 진화하고 있고, 우리나라의 교향악단의 실력도 꾸준히 늘고 있지만, 항상 많은 이들이 '2% 부족한 부분'을 금관악기군에서 찾곤 합니다. 교향곡이나 협주곡의 시작이나 피날레에서 가슴을 쿵쾅거리게 만드는 것은 타악기와 금관악기군의 우렁찬 소리라는 것을 누구나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오죽하면 과거 서울시향의 정명훈 예술감독은 공연을 앞두고 지휘봉을 잡을 때마다 해외에서 훌륭한 금관악기 단원과 주자들을 데리고 왔겠습니까. 당시에는 좋은 공연으로 기억됐을지 몰라도 이것 또한 아쉬움이 많이 남는 선택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떻게든 키우고 가르쳐서 인재를 양성해야지, 매번 외인군단으로 그 빈자리를 메웠다는 비난이 없지 않았으니까요.
여러분은 금관악기하면 무슨 생각이 나십니까? 저는 중·고등학교 시절의 밴드부가 먼저 떠오릅니다. 지금이야 '밴드'라고 적고 부르지만, 그때 저희에겐 '뺀드반'이었죠. 제가 중학교에 입학하고 몇 일 지나서 옆자리 제 짝이 밴드부에 가입하러 가는데 같이 가자고 하길래 따라 나선 적이 있습니다.
친구가 가입 신청서를 쓰고 나오려는 찰나에 한 선배가 저에게도 배워보라고 제안했고, 우쭐해진 저는 신나게 나팔 부는 상상을 하면서 신청서를 썼습니다. 문제는 집에서 저녁 식사 때 아버님한테 자랑스레 말씀드렸다가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무슨 뺀드반이냐! 당장 내일 학교가서 탈퇴하라!'는 거역할 수 없는 명령이 떨어진 것입니다.
다음날 학교에 가서 친구랑 고민하다 밴드부에 가서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사죄를 했습니다만, 하늘 같은 선배가 했던 말은 이랬습니다. "들어오는 것은 네 마음이지만, 나갈 때는 우리만의 룰이 있다"고. 그 룰이란 다름아닌 '빠따'를 스무대 맞는 거였습니다. 다행히도 저는 때릴 데가 별로 없다고 열 대만 맞고 말았지만 후유증으로 엉덩이가 부르터서 3일간 엎드려 자야만 했습니다. 그 이후로 사극에서 곤장을 맞는 장면이 나오면 남의 일 같지 않더군요. 사실 그때 제가 밴드부에 입단했더라도 타고난 음치에 박치인 저는 나팔 한번 제대로 불지 못하고 악기와 보면대를 운반하는 잡부로 마감을 했으리라 생각됩니다.
어쨌든 저는 항상 운동장에서 신나게 연주하는 밴드부를 볼 때마다 친구들의 멋진 연주 모습이 부러웠습니다. 그때 친구들이 연주한 것이 바로 금관악기들입니다. 며칠 전 커버스토리의 사진 촬영을 진행하면서 호르니스트인 이석준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와 트럼피터 성재창 서울대 교수에게 한국 금관계의 장래와 가능성에 대해 넌지시 물어보았습니다. 아직은 다른 악기군에 비해 부족한 상태지만, 5~10년만 지나면 국내외에서 공부하고 있는 실력있는 금관 음악가들이 대거 배출될 거라는 희망찬 답변을 들려주었습니다. 한국 금관 악기군의 금빛 찬란한 미래가 보이는 순간이었습니다.
더운 여름, 금관 악기들이 들려주는 시원한 팡파르와 함께 쾌적한 휴가를 보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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