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1.5만가구 무산 위기..그들이 공공개발 반대하는 이유
공공복합개발 후보지 철회 요청 잇따라
재산권 침해·일방적 후보지 지정 등이 반발 원인
임대소득으로 사는 고령 원주민 '살길 막막'
"공공 개발 필요한 후보지 신중하게 골라야"
[이데일리 김나리 황현규 기자] 정부가 2·4대책 일환으로 추진 중인 도심 공공주택복합사업에 빨간불이 켜지고 있다. 사업 후보지로 지정된 구역 주민들이 잇따라 지정 철회를 요청하고 있어서다. 벌써 합산 1만5000가구 규모 후보지들에서 이탈 움직임이 속속 나타나면서 정부 공급 계획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거래 중단 따른 사유재산권 침해 우려
11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서울 동대문구 용두역세권 주민 300여명은 이르면 이번 주 내로 국토부·시청·구청에 도심 공공주택복합사업 후보지 철회 요구서를 제출할 계획이다.
용두역세권 주민들이 철회동의서를 제출하면 국토부에 지정 철회를 공식 요청한 곳은 총 7곳이 된다. 현재까지 지정 철회를 요청한 곳은 부산에선 △옛 전포3구역(2525가구) △옛 당감4구역(1241가구), 대구에선 △달서구 신청사 인근(4172가구), 서울에선 △영등포구 신길4구역(1199가구) △금천구 가산디지털단지 역세권(1253가구) △강북구 미아역 동측(623가구) 등 6곳이다. 용두역세권(3200가구)까지 합쳐 이들 구역에 예정된 공급 가구 수만 약 1만5000가구에 달한다.
민간개발을 희망했던 조합들은 정부의 일방적인 후보지 지정 방식에 불만을 표출하고 있다. 신길4구역 민간재개발 추진위원회 관계자는 “민간재개발을 추진하던 상황에서 주민 의사와는 무관하게 일방적으로 후보지로 지정돼 반발하는 주민들이 많다”고 말했다.
단독 주택·상가 소유주·고령층 반대 목소리 커
주민들 중에서는 단독 주택이나 상가 소유주를 중심으로 반대 목소리가 크다는 얘기가 나온다. 사업을 추진할 때 반드시 종전자산 감정평가 절차를 거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빌라·연립주택보다 대지 지분이 큰 단독주택과 상가들이 불리하다는 인식이 있어서다. 통상 감정가액은 시세보다 낮게 평가되는데 만약 시세와 감정가액의 가격 차이가 3.3㎡당 100만원이 난다고 가정한다면, 크기가 클수록 절대 금액 차이는 더 벌어질 수 밖에 없다. 용두역세권 관계자는 “공공사업인 만큼 정부가 감정가액을 의뢰하게 될 텐데, 주민들의 재산권을 제대로 보장해준다는 담보가 없다”고 우려했다. 다른 관계자는 “대지 지분이 넓은 소유주는 입주권을 2개 받더라도 나머지 땅을 공시가 수준의 감정가로 청산 당하는 게 더 손해”라고 말했다.
게다가 상가의 경우 기존 건물을 철거하고 착공하는 동안 장사를 할 수 없다는 단점도 존재한다. 이로 인해 건물주들은 더 손해가 큰 상황이다. 임차한 상인들은 영업이익에 따라 일정 부분 현금보상이라도 받을 수 있지만, 건물주들은 임대료 보상을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에 따르면 상가 보상은 직접 장사를 하는 상인을 대상으로 이뤄진다.
이에 더해 고령층 원주민들이 가진 개발에 대한 거부감도 상당한 것으로 전해진다. 개발이 진행되는 동안 나가 살 곳이 마땅치 않은데다 임대로 생활자금을 충당해온 경우에는 대안이 없다는 등의 이유에서다. 미아역 관계자는 “이곳에는 40~50년 이상 살아오신 분들이 많다”며 “이분들은 현재 주거 환경에 만족해하시는데 주택 공급을 늘린다는 명목하에 ‘주거권’을 박탈당하게 되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공공개입 필요한 곳으로 후보지 신중하게 지정해야”
전문가들은 주민 반발로 후보지 지정·철회 등이 반복되면 오히려 공급 대책의 신뢰도가 떨어질 수 있는 만큼 앞으로 신중한 후보지 선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나아가 공공 개입이 필요할 정도로 주거 환경이 지나치게 열악하거나 민간 개발이 어려운 곳으로 한정해 후보지를 발표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고준석 동국대학교 법무대학원 겸임교수는 “입지가 좋거나 사업성이 있는 곳은 토지 소유주들의 동의를 받기가 힘들 것”이라며 “만약 역세권이더라도 공공 개입이 필요한 곳 위주로 신중하게 후보지를 골라야 한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부동산학과 교수는 “당초 지자체 추천만을 받아 후보지를 먼저 발표한 것부터가 실수”라며 “주민들의 의사를 확인하지 않고 구청과 정부가 후보지를 지정해 갈등을 키웠다”고 말했다.
김나리 (lord@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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